일주일간의 일본연수를 통해서 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느끼고 경험했다.

시각장애 1급인 사회복지사 두명

그리고 뇌성마비 세명 팔 하나를 잃은 두 남자

두다리를 잃은 여학생, 한다리를 잃은 선생님...

그리고 안면화상을 입은 나.

나머지 10명은 일반인으로 구성된 우리 팀...

나름대로 장애를 가지고서 사회복지 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의 마인드에는 철저한 사명감이 묻어나 있었다.

난 시각장애인과 우연히 친하게 되었다.

하상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시는 송선생님은

지금 나이가 32이다.

그는 15살 때 원인 모를 병으로 실명하고 말았다.

정말 미남인 송선생님의 단 한가지 소원이라면

자기가 써 놓은 글을 눈으로 읽어보는 것이라고 했다.

난 단 하루라도 온전한 얼굴로 당당하게 대중속에서 걸어보는게

소원인데...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자라고

했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 갈까?

선천적인 맹인보다 후천적인 맹인이 겪었을 좌절과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는 대구대를 다니면서 같은과 여대생과 교회를 함께 다녔다.

신실한 여자가 그의 아내가 되었다.

내 얼굴도 볼 수 없는 그.

그는 사람의 윤곽과 형체만을 볼 수 있고 불빛도 간신히 감지할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

맨 처음 그를 보았을 때 난 전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혼자서 잘 걸어 다녔기에...

그 사람이 비행기 좌석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 난 비로소

굉장히 심한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며칠 안되지만 난 그 사람의 눈이 되어 주었다.

평생 내가 그 형의 눈이 될 수 없지만 단 하루라도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되고 싶었다.

형은 안보이지만 소리를 정확히 감지해서 실수를 좀처럼 하지 않았다.

청각과 촉각이 자연스레 발달해버린 그 형의 미소는

항상 밝아보였다.

그리고 나의 커밍 아웃에 용기있는 행동에 뜨거운 격려를 보내주었다.

내 목소리와 내 이야기만 듣고 내 이미지를 상상해 보는 형.

그 형의 미래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결코 밝아보지 않았지만

내가 본 그는 시각장애라는 엄청난 핸디캡을 극복하고 점자를

익혀 글도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사상을 정말 또박 또박 표현해

나갔다. 일반인들 보다 사고의 폭도 넓었고 깊이도 있어 보였다.

어엿한 사회복지사로 수많은 시각장애인의 귀감인 형의 모습이

아른 거린다.

뇌성마비 수진 형은 32살이고 역시 결혼을 했다.

다리가 불편한 36살의 네 살 연상인 여자와 2년 전에 결혼해서

귀여운 딸이 있다.

말을 할 때면 부정확한 발음으로 침을 흘리며 파편을 뿌려가면서

몸이 뒤틀리고 만다.

유년시절 병신이라 놀림을 많이 받아서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 사람들에 비하면 내 장애는 견줄 수 없었다.

정말 지난 30년 동안 내 상처로 아파했다는 사실이

날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어리석은 날들...

되돌이킬 수 없는 날들이었다.

결혼을 포기해야했던 나.

내 핸디캡 앞에서 난 편한 길을 택하기위해

굴복을 선택했다.

하지만 나도 시각장애인처럼 뇌성마비 장애인처럼

넉넉하진 않지만 사랑하는 내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싶다.

나도 이제는 마음을 바꿔먹기로 결심했다.

내가 두 눈을 잃었다면 어떠 했을까?

내가 뇌성마비로 태어났다면 어떠 했을까?

귀가 녹았어도 아직은 들을만 하고

눈이 잘 안감겨도 아직은 볼만하다.

입이 잘 안벌려져도 치아 치료가 불가능해도 아직은

말하는데 크게 지장은 없다.

이 세상에 모든 장애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평범한 인간들일 뿐이다.

내 입장에서 바라볼 때 이상하다는 느낌.

그게 바로 편견의 시작이다.

장애인이 1에서 출발하고 일반인이 10에서 출발한다고 했을 때

편견을 없애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서로가 5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이 10에서 3정도 까지를 바라본다면 그건 편견을

극복하는 차원을 넘어서 동정에 가깝다.

지나치지 않고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입장에서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장애인을 배려해주고 약자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 주는게

우리의 잘못된 사회 구조를 붕괴시키는 기초 작업이 아닐까?

김광욱씨는 현재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비상근간사로 일하고 있다. 1살때 연탄구덩이에 떨어진 장난감을 주으려다 구덩이에 머리부터 빠지는 바람에 화상장애인이 됐다. 그는 조선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학원강사 등으로 취업을 하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그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능력때문이 아니라 얼굴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해 정부과천청사앞에서 화상장애인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1인시위에 나서는 등 화상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해 세상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그는 또 지난해 5월부터 테스란 이름으로 취업전문 사이트 인크루트에 취업실패기를 연재한 적이 있다. 그 사이트에 올린 180여건의 경험담은 최근 '잃어버린 내 얼굴'이란 제목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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