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초등학교 4학년 1반 담임 선생님이었던 신인순 선생님.

그 분의 글짓기 지도 덕분에 나의 책 "잃어버린 내 얼굴" 이라는 책이 탄생될 수 있었다.

내 근처를 쳐다 볼 수 없었던 선생님.

얼굴에 화상을 입은 채 수업을 받으려고 하는 아이를 처음으로 대해야 했던 선생님.

어떻게 광욱이를 가르쳐야 할까?

신인순 선생님은 날 무척이나 걱정하셨다.

다른 아이들과 차별을 두어 편애를 할 수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무관심하기도 그러고...

혼자서 친구도 없이 말도 않고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았던 나.

언제나 남의 시선이 두려워 고개만 푹 숙이고 다녔던 나.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벙어리처럼 있다가 그냥 혼자 어디로인지 사라져버렸던 나.

그런 나를 위해 선생님은 결심하셨다고 한다.

저 아이에게 사랑을 심어줘야겠다.

항상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선생님.

우리 광욱이 머리결 참 곱구나. 샴푸 향이 참 좋다.

종례가 끝나면 집으로 가기위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녀석들.

선생님은 우리 반전체 아이들의 머리를 만져주시면서 길 조심하면서 집에 잘 가라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셨다.

난 선생님의 손길을 느끼기 위해 가장 뒷줄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선생님은 내 흉한 볼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져 주셨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선생님의 사랑의 손길을 경험하는 순간 난 하늘을 날듯이 기뻤던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관심의 대상이고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던가보다.

어느 날,

운동장에서 운동도 안하던 광욱이가 친구들과 함께 공을 차던 것이었다.

광욱이는 달리기도 제일 잘했다. 공을 한 번 몰고 가면 광욱이 공을 빼앗으려고 녀석들이 뒤를 따르곤 했다.

글도 예쁘게 잘 쓰고 공부도 잘하고 산수도 잘하고 글짓기도 잘하고 공도 잘 차고 성실하게 하루 빠짐없이 일기를 썼던 광욱이.

친구들이 갑자기 많이 생기는 바람에 글씨도 대충 쓰고 일기도 대충 쓰고...

그러나 선생님은 한편으로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광욱이가 대견스럽기도 했던 것이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유리창너머로 날 언제나 바라보셨던 선생님.

일기장에다 항상 평을 써 주셨던 선생님.

내 일기장에도 역시 "광욱아 글 참 잘 쓰구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선생님은 뒤에서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하셨다고 한다.

일기장 검사 후 모두 가방속에, 책상속에 넣어버리고 한번도 안보는데 광욱이는 선생님의 칭찬에 얼굴이 불그스레한 채 쉬는 시간마다 여러 번 펴 보았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정든 교정을 떠난 뒤 선생님은 늘 날 그리며 생각에 잠기곤 하셨다고 한다.

우리 광욱이 중학교 생활은 잘 하는지.

우리 광욱이 고등학교는 잘 다니는지.

우리 광욱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잊어버렸어도 가슴 속깊이 내 이릉을 새겨놓고 계셨던 모양이다.

저 김광욱입니다.기억하시겠어요?

19년만에 전화를 드렸을 때 광욱이.우리 광욱이....흐느끼면서 우셨던 신인순 선생님.

선생님은 어머니처럼 천사처럼 날 아껴주셨다.

난 엄마의 사랑보다 초등학교 여선생님들의 뜨겁고 따스한 사랑을 받고 살았다.

글짓기로 최우수상, 대상 등등 각종 상을 휩쓸었던 나.

집에 상장이 100장 정도 되었고 상품은 학용품으로 내 방에 쌓여 있었다.

"내 얼굴" 이라는 제목의 글을 내가 직접 방송실에서 낭독을 했던 시절,

듣고 있던 전교생이 모두 울었고 선생님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울음 바다가 되어버린 대성초등학교...

우리 광욱이가 글도 너무나 잘 써요.

여선생님 그리고 교장, 교감 선생님이 날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난 그 덕에 목에 힘주고 언제나 당당할 수 있었다

내 자신을 드러낸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4학년 때 글짓기 내용중에서

버스를 타면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차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린다.

그 시선이 불편하다.

빨리 차에서 내리고 싶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왠지 불안하다.

자신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게 진정한 용기라고

격려하셨었는데...

나에게 어려운 일을 해냈다면서 선생님은 어린 시절의 나에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선생님과의 19년만에 눈물겨운 상봉.

내 지난날의 부끄러움이 날라가는 순간이었고

난 어느덧 어엿한 30살의 중년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난 세월의 매를 맞으며 여기까지 왔다.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유는 진실하기 때문이고 거짓된 연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줄 수 없다고 선생님께서 내게 충고를 해 주셨다.

그리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쉽게 살지 않아서이고 남보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했고 많은것들을 경험했기에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겐 크나큰 교훈으로 다가왔고 그 분과의 만남이 힘들 때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강한 버팀목이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굵은 주름이 이마에 새겨져 버린 선생님.

하지만 아이들과 여전히 학교에서 호흡하고 생활하실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기만 합니다.

선생님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저도 선생님 가르침 잊지 않고 선생님께 받은 사랑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며 살아가겠습니다.

김광욱씨는 현재 한국빈곤문제연구소 비상근간사로 일하고 있다. 1살때 연탄구덩이에 떨어진 장난감을 주으려다 구덩이에 머리부터 빠지는 바람에 화상장애인이 됐다. 그는 조선대 영어과를 졸업하고 학원강사 등으로 취업을 하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그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능력때문이 아니라 얼굴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해 정부과천청사앞에서 화상장애인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1인시위에 나서는 등 화상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해 세상과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그는 또 지난해 5월부터 테스란 이름으로 취업전문 사이트 인크루트에 취업실패기를 연재한 적이 있다. 그 사이트에 올린 180여건의 경험담은 최근 '잃어버린 내 얼굴'이란 제목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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