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참사 관련 글들이 올라온 한 인터넷 게시판의 글목록.

“우리 애가 뇌성마비 장애아동이라 복지관으로 물리치료를 받으러 데리고 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대구사건 이후에는 주위 사람들의 눈총이 따가워서 다니기가 힘들어요.”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이 지난 2월 20일, 한 장애인단체에 걸려온 상담전화 내용이다. 이 단체에는 요즘 이와 비슷한 장애인들의 하소연을 담은 전화가 자주 오고 있다는 상담관계자의 말이다. 한편 장애인 단체들의 홈페이지에는 장애인을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는데,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이 심한 욕설을 퍼붓는 경우도 있어서 게시판 관리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장애인, 개XX들, 니들도 타죽어봐야 한다. 밤길에 뒤통수 조심해라!”

이러한 분위기는 장애인단체뿐만 아니라 네티즌들의 글이 많이 올라오는 인터넷게시판들에서도 많이 느낄 수 있다. 다음은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의 제목이다.

‘장애인이라고 봐주지 말자! 처벌 확실히’(김0호)

‘장애인들을 너무 나무라서는 안 됩니다...’(StATaC Mania)

이러한 논쟁들을 보면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을 저지른 사람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장애인을 비난한다는 것은 논리학에서 얘기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방화범은 모두 장애인인가’, 또 ‘장애인은 모두 방화범인가’하는 자문을 해보면, 장애인은 방화범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나이트클럽에서 종업원이 불친절하다며 시비를 걸던 술취한 손님이 불을 지르려다 발각되어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다. 만약 불행하게도 방화사건으로 연결되었더라면, 그 사람을 보고 모든 나이트클럽의 손님들을 비난할 것인가?

미국 LA 흑인폭동 이후, LA에 사는 한국인을 비롯한 중남미계 유색인종들에게 가해진 각종 유무형의 폭력들이나, 재일교포들이 격고 있는 차별 등도 결국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과 함께 그 생각 저변에는 장애인에 대한, 유색인종에 대한, 또 한국인에 대한 편견들이 깔려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을 저지른 사람은 ‘장애인’이란 영역에 포함되는 사람이었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류를 범했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본다면, 그 사람은 ‘남자’란 영역에도 포함되고, ‘한국인’, ‘성인’, ‘가장’ 등 여러 영역에 포함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범인의 행위를 놓고, ‘남자’, ‘한국인’, ‘성인’, ‘가장’등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들과는 달리 ‘장애인’에 대해서만 부정적인 편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티즌의 의견들 중에, ‘장애인이라고 봐주지 말자’라고 하는 생각 저변에는, 장애인에 대한 각종 혜택들이 장애인들의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봐주기 위한 것’이란 잘못된 인식이 깔려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불쌍하다고 도와줬는데, 장애인이 그럴 수 있냐’라고 하는 생각 밑에는 장애인을 돕는 일이, 대부분 개인의 잘못과는 무관하게 사회적요인으로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에 대해, 사회가 당연히 가져야 할 의무가 아니라, ‘불쌍해서 선심을 쓰는 것’이란 생각이 감춰져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참사는 있을 수 없는 비극이며, 이 땅의 어느 장애인 하나 가슴 아파하지 않을 사람 없을 것이다. 또 그 방화범은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며, 어떤 형벌로도 그 죄를 다 갚지 못할 것임에 모든 장애인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을 접하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편을 갈라서 적개심을 쌓아가는 사람들의 편견이 안타까울 뿐이다.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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