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항공사의 기내 서비스 홍보용 사진.

자립(독립)생활을 알리기 위해 강연을 다닐 때마다, 강연을 듣고 난 장애인들이 묻는 가장 흔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우리는 언제쯤이나 자립(독립)생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죠?”하는 것이다. 그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그에 대한 답은 당신이 갖고 계십니다.”

자립(독립)생활 서비스라는 것은, 재활패러다임에 젖어있는 사회와 정부,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한,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하여 얻어지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가만 앉아서 기다리기만 한다면, 10년, 아니 100년이 가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곤 한다.

그러한 질문들은, 그동안 (정부로부터의)일방적인 복지시책과 혜택에 장애인들이 얼마나 길들여져 왔었나를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가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음을 암시하는 듯 하다.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는 2003년도 기획사업으로 ‘중증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기반조성 사업’을 공모하였다. 이것은 특히 소규모의 자립(독립)생활 자조단체들에게는 정말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그동안은 법인이나 기관이 아닌 이상, 그러한 사업공모는 남의 이야기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었고, 더구나 인건비를 지원한다는 것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활동보조인 파견서비스, 자립생활훈련 프로그램, 동료상담, 주택개조 서비스 등 2개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번 사업공모의 신청자격을 보면, 출발점부터 뭔가 접근 방법이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자립생활을 하려면 몇 가지 필수적인 서비스들이 바탕이 되어야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법과 제도적인 차원에서 보장해줘야 할 것들이지, 민간 배분기관이나 일선의 자립생활센터 차원에서 실시하는 정도로 접근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차라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같은 민간 배분기관에서는 자립(독립)생활 이념의 보급, 자립(독립)생활 자조단체나 운동가들의 역량강화(empowerment) 프로그램, 자립(독립)생활 정착을 위한 연구사업, 권익옹호 활동 지원 등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 자립(독립)생활을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를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자립(독립)생활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를 떠올리는 듯 하다. 우리가 그동안 장애인복지 문제에 있어서 흔히 택해왔던 접근방식으로 보면, 이러한 생각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자립(독립)생활을 정착시키고자 한다면 우선은 그러한 고정관념에서부터 탈피해야만 한다.

자립(독립)생활운동은 자립(독립)생활 서비스에 대한 수급권을 얻고자하는 운동이기 이전에, 그동안 사회에 빼앗기고 살아왔던 장애인의 소중한 권리들(자기결정권과 선택권 등)을 되찾고자하는 거룩한 인권운동이다. 그러한 운동을 통해서, 인권을 되찾게 되었을 때의 결과물로 서비스에 대한 수급권이 딸려 오는 것이지, 우리가 그러한 수급권이나 얻고자 자립(독립)생활운동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니란 것을 명심해야한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선은 자립(독립)생활은 무엇이고, 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장애인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 그 다음에 그것을 알게 된 장애인들이 그들의 권리를 사회에 요구해야한다. 이에 사회와 정부는 그 당연한 요구를 받아들이고, 그에 상응하는 법과 제도들을 내놓아야하며, 자립(독립)생활센터와 같은 자조 단체들이 그 법과 제도에 의한 서비스들을 동료(peer)의 입장에서 제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자립(독립)생활을 향한 불타는 의욕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장애인 운동가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자립(독립)생활을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립(독립)생활 서비스에 앞서서 우리의 소중한 인권을 요구해야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여기서 자립(독립)생활 서비스라고 하는 것은 활동보조서비스(PAS : Personal Assistance Service), 교통서비스, 주택개조서비스 등과 같은 자립생활센터의 서비스를 말한다.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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