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등도 이용 가능한 일본의 저상버스

피그미(pygmy) 종족 중의 하나인, 아프리카 자이르 동부 앨버트호(湖) 서안(西岸)에 사는 밤부티족의 경우, 구진데 박사가 계측(計測)해 본 결과, 남자의 평균신장은 144cm, 여자는 137cm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이용할 버스를 만든다고 하면,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버스처럼 천정이 높고, 손잡이가 위에 달려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때문에 밤부티족이 사용하기 적당한, 천정과 손잡이가 낮은 버스를 만들거나 수입해야 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만약에 그곳의 대중교통수단으로 사용할 버스를 제작할 때, 신장 170cm 정도의 사람에게 적당한 버스로 만들어서 운행한다면, ‘사람에게 버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버스에 사람을 맞추려 한다’며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게 될 지도 모르겠다.

버스의 벽과 천정이 없고, 바닥에서 봉 하나만 덩그렇게 올라와 있는 버스가 있다고 치자, 이런 버스를 사고 안 당하고 이용할 수 있는 승객은 몇 명이나 될까?

영화 속의 람보나 성룡과 같이, ‘날고 기는’ 사람들이 아니고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행 중에 떨어져 죽을 것이다. 이러한 버스를 운행하면서, 떨어져 죽을 가능성이 높은 일반 시민들(람보나 성룡이 아닌 사람들)은 ‘각서를 쓰고’ 타라면 어떨까?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는 일반 대중을 기준으로 하여 제작되어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장애인도 일반 대중에 포함됨 또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당연한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다.

대구지하철참사 이후, 지하철 운행이 중단된 구간에서는 지하철을 이용하던 시민들을 위해,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지하철을 이용하던 장애인들 역시, 이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런 장애인들이 황당한 일들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셔틀버스를 탈 때, (버스를 탄 장애인이) 다쳐도 보험처리가 안되므로 사고를 당해도 버스기사의 책임이 아니라는 각서를 쓰라고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버스를 타지 말라는 어이없는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식을 접하고, 나 역시 같은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끓어오르는 흥분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대구 셔틀버스 운전기사의 관점을 놓고 얘기 해보자.

먼저 대구의 셔틀버스 기사는 비장애인 버스 승객보다도 장애인 승객의 사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정말 장애인 버스 승객의 사고 가능성이 비장애인보다 높은 것일까?(이 질문에 ‘물론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특히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버스 승객의 사고 가능성은 그 승객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어떤 버스인가에 초점을 맞춰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면, 버스가 안전벨트 등의 안전장치가 있는 버스인가, 브레이크 등의 장치들이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가, 차량 출고 연도가 언제인가, 운전기사의 운전실력은 어느 정도이고 피로한 상태는 아닌가 하는 등등의 문제를 갖고 사고의 가능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승객이 장애인인가 아닌가는 사고 가능성과 관련이 없는 문제이다. 장애인 승객도 안전하게 타고 다닐 수 있는 고정장치 등의 안전장비가 되어 있다면,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안전한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장애인이 더 안전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장애인 승객의 안전장치를 고려하여 제작되지 못한 버스가 문제가 있는 것이지, 승객인 장애인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비장애인에게만 안전하고, 장애인에게는 안전하지 못하게 설계된 버스에, 장애인을 ‘각서 쓰고’ 태우는 것으로는 장애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애인에게도 안전한 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문제의 원인이 장애인 내부에 있다는 착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문제의 원인은 장애인 내부가 아니라, 장애인이 살고 있는 사회와 환경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것이 바로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의 관점이다. 우리는 현재, 그동안 우리가 가져왔던 잘못된 패러다임을 깨뜨려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Paradigm shift)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버스에 사람을 맞출 것인가?, 사람에 버스를 맞출 것인가?

사회에 사람을 맞출 것인가?, 사람에 사회를 맞출 것인가?

우리가 이러한 문제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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