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열매 오디/이승규의 야생화 앨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뻐꾹 뻐꾹 뻑뻐꾹 뻐꾹"

뻐국새 소리가 들렸습니다. 뻐꾹새 소리는 참으로 구슬펐습니다.

"저 새는 무신 서럼으로 저리 설피 울어 샀노."

심학규는 뻐꾹새 소리를 듣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산기가 죽은기가"

목을 만져보니 새끼줄이 그대로 목을 조르고 있었고 새끼줄을 당겨보니 소나무가지도 그대로 묶여 있었습니다.

"이래 에빗는데도 내가 그리 무거벗나. 솔가지가 뿌사지다이."

지난겨울 내내 방안에서 끙끙 앓고 있어서 피골이 상접한데 소나무 가지가 부러지다니 심학규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고 다시 소나무 가지를 더듬어 보니 솔잎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키 솔가지가 산긴가 죽은긴가도 모리는 뱅신이 살믄 머할끼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새끼줄을 챙기자 어디를 어떻게 굴렀는지 전신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뻐꾹 뻐꾹 뻑뻐꾹 뻐꾹 뻐꾹"

망연자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니 뻐꾹새는 더욱 슬피 우는 것 같았습니다.

"눈은 뱅신이 돼도 귀는 아즉 살아 있어서 저 소리도 들을 수 있구나"

뻐꾹새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산들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혔습니다.

"이기 무신 냄새고"

바람이 실어 온 향기는 달콤하고 감미로웠습니다.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의 출처를 밝히려고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가마이 있자 오늘이 메칠이제?"

지난가을 이후 그 동안 시간이 가는지 계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도통 몰랐던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오늘이 며칠인지 아니 지금이 가을인지 봄인지 조차도 기억에 없었습니다.

"내 꼬라지가 이기 머꼬?"

심학규는 지난가을 어디쯤에선가부터 멈추어버린 기억의 가닥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래, 그 때가 가실이었제."

그리고 길고 긴 겨울이었습니다. 영원처럼 멈추어 버린 암울한 겨울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매캐하고 쓰디쓴 약 달이는 냄새에 찌들은 깜깜한 절망의 겨울이었습니다.

"산딸을 따러 간다 켔던가"

아침나절에 곽씨 부인이 산딸기를 따러 간다는 소리까지 더듬어 왔습니다.

"산딸이라..."

산딸기가 언제 나더라. 그야말로 골방 샌님으로 살아 온 심학규인지라 꽃이 피는지 새가 우는지 눈을 감지 않았을 때도 잘 몰랐던 것입니다. 달콤한 냄새는 계속해서 코끝을 간지럽혔습니다.

"산딸이라... 오라 오디 냄새구마"

냄새를 출처를 겨우 확인한 심학규는 자신의 이마를 쳤습니다. 그것은 이제 막 익어가는 1)오디 냄새였던 것입니다. 달콤한 오디를 생각하자 입안에 군침이 고였습니다. 어린 시절 새까만 오디를 따먹느라 손이 까맣게 물들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그라믄 복사꽃은 이미 지실끼고."

아, 2)복사꽃! 이 산등성이 어디쯤인가를 온통 붉고 때로는 희게 물들이며 장관으로 펼쳐지던 그 복숭아꽃의 향연이 어느새 지나가 버렸다니. 도화동의 봄은 온통 꽃으로 시작되고 있었는데 심학규는 까맣게 그 봄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꽃은 저절로 피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꽃은 제 나름대로 그 계절 그 시간에 맞춰 피우려고 그 긴 시간들은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다가 때를 맞춰 피우는 것입니다.

엄동설한 찬바람 잔설 속에서 매화가 피고 지고 산수유가 피고 지고 진달래만 해도 연분홍 진달래가 피고 질 때쯤이면 진한 빛깔의 진달래가 핍니다. 하얀 목련이 조종을 울릴 때 쯤이면 자목련이 고개를 내밀고 벚꽃이 피고 지고 복숭아꽃이 피고 지고.

꽃은 다 제가 꽃을 피워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제가 꽃을 피워야 할 때 꽃을 피우는 꽃들이 모여서 이 나라를 금수강산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향기로운 꽃냄새, 달작지근한 오디 냄새, 뻐꾸기 소리, 산들바람, 천지에 생명이 용솟음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아름다운 그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 하더라도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빰에 스치는 산들바람을 느끼며. 생명이 살아 있음을 느꼈던 것입니다.

"3)상전벽해라.. 그러키 시상이 밴하는거는 하늘 뜻이거늘... 그래 임자 말마따나 눈 몬 본다꼬 몬 살겠나, 아즉 냄새도 맡을 수 있고 소리도 들을 수 있서이 아즉은 죽을 때가 아인 모양이다"

심학규는 지난 온 세월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았습니다. 학문을 읽혀 벼슬을 한 사람을 선비라 하였는데 선비는 학문도 많이 익히고 거기에서 얻은 자기의 신념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다. 선비란 '백성이 하늘이다' 라고 배우는데 그 학문으로 벼슬을 하는 사람은 선비의 탈을 쓰고 온갖 권모 술수로 자기의 영달이나 일삼고 있는데 그런 벼슬을 하자고 몇년을 허송세월하면서 이제 이꼴이라니. 그러기에 부인 곽씨는 눈감은 것이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심학규 자신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더라면 4)선비정신으로 '백성이 하늘이다'라며 민을 사랑하며 우둔한 중생들을 올바르게,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 이녁 말대로 차라리 눈 감은 기 잘 된 일이지도 모리제."

심학규는 수십번도 더 자신의 눈에 대해서 부정에 부정 그리고 다시 긍정에 긍정으로 자신의 마음속을 다지며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아즉은 목심이 붙어 있서이 살다 보믄 내가 할 일도 있겄제."

심학규는 그 산에서 그렇게 한나절을 보내고 더듬더듬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데 갔덩기요? 앞도 몬 보는 양반이 무신 일 낫나 싶어 한참 찾았다 안기요"

곽씨 부인이 달려나오며 반갑게 맞았습니다.

"퍼뜩 방으로 들어 가이소. 딸을 마이 따서예. 재 넘어가이 산딸이 천지빼까리라예. 그라고 오디도 한창이데예."

아! 그 오디, 잘 익은 산딸기 그리고 오디는 달콤 새콤 너무나 부드러워서 입안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낼부텀은 일찌감치 딸을 따다 놓고 낮에는 읍내에 나가 볼낍니더."

"읍내는 또 머할라꼬."

"인자부터 일을 해야지예. 내일 지패이 하나 맹글어 줄테이 인자 살살 걸어 보이소."

*****

1)오디 : 뽕나무 열매로 4월~5월에 꽃이 피고 6월~7월에 결실함. 뽕나무는 뿌리껍질, 잎, 열매, 나뭇가지를 모두 약재로 쓴다. 심지어 뽕잎을 먹고 자라는 누에와 말라죽은 누에, 죽은 누에에서 나오는 버섯까지도 다 한약재다. 뽕나무는 무엇 하나라도 버릴 것이 없다고 한다. 뽕나무 열매 오디는 노화방지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2)복사꽃 : 경북 영덕, 강원도 원주 치악산에서는 해마다 복사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3)상전벽해(桑田碧海) : 뽕나무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된다는 말로 세상 일의 변천이 심하여 사물이 바뀜을 비유하는 말이다.

상전벽해에 관한 고사 =

낙양성 동쪽의 복숭아꽃 오얏꽃

이리저리 휘날려 뉘 집에 떨어지나,

낙양의 어린 소녀 고운 얼굴 만지며

떨어지는 꽃 바라보며 한숨 짓는다.

꽃이 지면 그 얼굴엔 나이 또 들어

내년에 피는 꽃은 누가 보아주나

옛말에 뽕나무 밭이 바다된다는 건 옳은 말인 것을(景聞桑田變成海).

4)선비정신 : 선비는 조선의 신분 사회에서 지배층, 즉 양반들의 도의적 규범이다. 선비는 원한다고 아무나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인간상이 아니었다. 선비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양반이라는 신분에 국한되었으며, 상민(常民)은 아무리 인격과 학식을 겸비해도 선비가 될 수 없었다. 따라서 선비는 철저하게 비민중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훌륭한 선비는 민중 앞에 초연해야 했으며 민중이란 '따르게 하고 알려서는 안 될 중우(衆愚)'에 지나지 않았다.

선비는 또 철저하게 비세속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손에 돈을 쥐는 법이 없고 쌀값을 물어보는 법이 없다.'는 것이 선비 생활의 이상이라고 했다. 세속적인 문제는 일체 알려고도 않고 알지도 못하며 오로지 대의(大義)를 논하는 것이 선비의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라고 했다.

선비란 이처럼 전시대적 성격이 짙기는 했으나 한편 오늘의 시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이 없지도 않다. 비민중적이며 세속에 어둡고 공리 공론(公理空論)을 일삼는 관념적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때로 그들은 지금의 사람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용기를 대의를 위해 발휘하기도 했다. 직언(直言)을 하면 왕의 노여움을 사 목이 달아나는 것이 뻔한데도 죽음을 무릅쓰고 태연히 간언(諫言)을 서슴지 않기도 했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관군(官軍)이 무색하게 의병을 일으켜 외적과 싸우는 등 충의를 위해서 생명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옳은 일을 위해선 서거정(徐居正)의 말대로 "벼락이 떨어지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서슴지 않는" 대쪽같은 절개를 보이기도 했다. 조선의 사대부라면 '사색 당쟁(四色黨爭)'이란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옛 선비에 변절이란 도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들 손자 대까지 그들은 일편 단심 변할 줄을 몰랐던 것이다.

현대의 선비정신이란 자기의 본분과 책임을 완수하고, 나아가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 자신의 일과 전체의 질서를 조화시켜 나가는 것이 곧 선비 정신의 구현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조상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나라를 첫째로, 남을 둘째로, 나를 끝으로 생각하는 꿋꿋한 선비 정신으로 삶의 보람을 키우고, 특히 정치가는 '백성이 곧 하늘'임을 명심해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복남 원장은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이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원장은 또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마음 밭을 가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일성은 이 원장이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면서 장애인이 받고 있는 불이익을 현장에서 몸으로 뛰며 실천하면서 얻은 교훈이다. 이복남 원장은 현재 장애인 상담넷 하늘사랑가족<하사가>를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 홈페이지: http://www.988-7373.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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