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 장애를 가진 한 여학생이 대학과의 투쟁 끝에 승소했다. 그 내용은 당당하게 입학한 대학에서 동일한 등록금을 내고 마땅히 배워야 할 권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이 여학생의 투쟁은 장애를 가진 자신 만을 위해서 투쟁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전에도 이와 같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불이익을 당했던 선배도 있을 것이고, 앞으로 그러한 후배들이 묵묵히 고통과 손해를 감내해야 하는 이 불편부당한 현실을 마감해야겠다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긴 투쟁을 했고, 마침내 승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승리의 내용과 메세지 그리고 파급효과는 무엇인가?

개인이 아니라 장애인 전체의 권익, 그리고 장애인을 자녀로 둔 가족의 미래, 나아가 장애인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는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일구어낸 승리였지만, 이러한 승리는 단지 한 개인의 승리로 끝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같는 이유는 무엇일까?

1996년 이후로 장애인 학생 특례입학 제도를 대학에서 실시했다. 한국재활복지대학과 나사렛대학 등 몇몇 대학에서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대학으로 편의시설 뿐 아니라 장애학생들의 학업을 지지하는 도우미제도를 통해서 인적자원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고, 거대한 지원금도 챙겼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효과 역시 이 땅의 수많은 대학을 이끄는 대학당국자들에게는 여전히 요원한 메아리로 들릴 뿐 어떠한 움직임도 보여지지 않고 있다.

대학이라 함은 한국사회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지성을 길러내는 상아탑이다. 그 지성(Intelligence)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력(Leadership)을 말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을 앞서서 이끌어 가고, 바람직한 사회를 경험하게 할 뿐 아니라 그러한 사회를 만들도록 지도하는 곳이 대학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과는 어울리지 않게 편의시설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장애인의 마땅한 권리 주장에 대항해서 재판을 걸고 게다가 패소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오늘의 대학의 자화상이다. 이러한 재판의 판결이 나와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편의시설 없는 대학을 자랑스럽게 방치(?)하는 것이 오늘의 대학이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이 장애를 가진 한국학생 한 사람 때문에 장애인이 다닐 수 있도록 모든 배려를 하였다는 기사 거리도 그들에게는 우이독경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것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을 포함한 일류대와 국립대도 마찬가지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것인가? 세태와 시류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편의시설을 설치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를 이끌어가는 시대정신을 가지고 몸소 본을 보일 것인가?

복지마인드! 복지 수준! 아직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의지 역시 박약하다면 이제 대학이란 간판을 내리자. 그저 대학이 아니라 학원이란 이름으로 그 간판을 바꾸자. 세계화(Globalization),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는 시장경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끌어가는 대학 캠퍼스에서 시작돼야 한다. 나는 꿈을 꾼다(I have a dream.).

단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백인과 흑인이 함께 하는 세상을 꿈을 꾼다면 나는 장애인과 일반인이 한 캠퍼스에서 자유롭게 지성을 가지고 논하는 아름다운 캠퍼스를 꿈꾼다. 단지 대학을 만들어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되고, 능력이 있어도 대학 문밖에서 장애인을 서성거리게 만드는 무지함이 아니라 국가를 이끌고, 시대를 창조하고, 나아가 세계 일류의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장애인과 함께 하는 지성의 장을 만드는 우리의 대학이길 바란다.

숭실대 사태 이후! 잠잠하기 보다는 대학 내에 장애인과 함께하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나기를 바라며.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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