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Inclusion, Integration)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통합의 소리도 다양해지고 소리의 크기도 커졌다. 그러나 그 소리를 외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러한 소리가 들려지는 것 자체가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든가. 죽기 살기로 우기면 승리한다든가 혹은 돈있고 빽 좋으면 만사가 오케이라는 식의 운동은 위험하다. 어떤 정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항상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반대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찬성과 반대 사이에 수많은 다양한 의견을 소유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세상은 토론이 없는 주장만 존재하고, 결국에는 억지주장이 비현실적인 정책을 만들어내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합에 관한 정책도 이와 같은 과정을 밟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약도 그 약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필요한 때에 복용해야 한다. 좋은 약을 아무 때나, 아무나 마구 복용하면 결국에는 약을 남용하거나 오용하게 된다.

"통합" 이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대세이다. 그리고 반드시 성취해 내야 한다. 통합의 대상은 단지 장애인과 비장애인만이 아니다.

지방색을 중심으로 한 분리주의를 털어내야 한다. 학력을 중심으로한 자기우월주의도 벗어버려야 한다. 성(Gender)을 중심으로 한 패배주의 역시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빈부의 격차 줄이고, 빈부로 인한 차별 없애야 한다.

우리 사회는 참으로 많은 기준을 가지고 사회를 파편화시켰다. 그리고 그 책임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 있을 뿐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치인들의 지방색을 기초로 한 이기주의는 비판하면서, 그렇게 투표하는 자신은 정당하다고 믿는 양가감정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악의 요소이다.

"통합" 이는 해 내야 한다. 그러나 "통합"이 무엇인가를 잘 알아야 한다. 통합은 단순히 말하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 즉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 통합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 자체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쟁취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도 님비현상에 의하여 장애인 관련 기관들이 일반인들에 의하여 배척당하고 있다. 앞으로 행정자치부에서는 "주민자치투표"로 결정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통합" 이는 가능해 질 것인가?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과 섞어 사는 것과는 다르다. 단지 섞어 넣은 것은 통합이 아니라 혼합이다. 우리사회는 통합과 혼합을 혼동하는 경향이 많다. 동시에 영유아기-청소년기에 이르기 까지 완전통합이 최고인 것처럼 생각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여전히 장애인들에게는 장애의 정도와 상태에 따라 독특한 욕구가 있고, 거기에 따른 특별한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유아기-청소년기는 성인기에 이르러서 완전 통합된 사회를 건설하고, 통시에 그러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훈련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어떤 사람은 이미 통합된 세상에 들어가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장애인과 함께 하는 공간에서 열심히 훈련과정을 거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훈련과 통합된 공간을 오고가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통합을 완성하기 위하여 이러한 시기에 필요한 것은 특수교육이나 통합교육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통합은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은 이러한 통합을 완성하기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즉 특수교사들의 일반교육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고, 일반교사들의 특수교육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 동시에 이들의 통합교육에 대한 합의, 함의 그리고 이를 완성하기 위한 동반자적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부모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고, 이러한 노력들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한 사회적인 계몽도 있어야 한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이기적인 관점에서 통합을 이해하려는 노력, 환상을 꿈꾸는 관점에서 통합을 만들려는 시도들은 일시 중지해야 한다.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누구도 배척함 없이 누구도 함께 안고 살겠다는 철학 위에서 이러한 노력들이 진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통합을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 복지적 관점 그리고 장기적인 전망 가운데에서 단계적인 노력들이 있어야 한다. 단순한 투쟁이 아니라 진정 통합된 사회를 이룩하려는 통합적인 사고 위에서 이룩해야 한다. 장애인, 비장애인을 통합하려고 하면서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분리시킨다면 이는 또 다른 사회적 분리를 조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사이 우리 사회는 전보다 더 빠르게 더 과격하게 더 급하게 움직이는 것 같다. 함께 나아가기 보다는 혼자 앞서려는 경향이 짙다. 외국의 선례에서도 급하게 하려다가 아름다운 이상 자체를 포기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타산지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나 대신에 누군가가 총대를 매고 자폭하는 길을 걷게 하기보다는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세상이 중요하지 않을까?

이 땅에 수많은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있다. 그들의 욕구는 다양하다. 단지 이것이 좋다고 해서 그 쪽을 모든 사람의 욕구를 일원화하거나 몰아서는 안 된다. 다양한 욕구를 수렴해 내기 위한 다양한 노력과 포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장애인 복지를 올바르게 시작한 지가 이제 15년 밖에 되지 않는다. 보다 점진적인 그러나 모든 것은 실현해내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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