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에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아파트에는 내가 부탁해서 만들어놓은 장애인 주차장이 2자리가 확보되어 있다. 나는 늘 고정된 자리에 주차를 하곤 하였다.

당연히 그곳은 내 자리였다. 그런데 밤 11시에 들어온 그 날, 웬 차가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밤 하늘을 더욱 캄캄해 보였다. 왜 하늘엔 별이 아니 달도 없는 거지! 누가 달과 별을 훔쳐갔어! 나는 관리하시는 아저씨를 불렀다.

"아저씨 이 차 빼세요!"

그러자 아저씨는 주저했다.

"이 밤에 방송을 하면 주민들이 싫어합니다."

"무슨 소리예요. 빨리 빼세요."

"주민들이... 에이 무식한 것들이 이 자리에 주차하고 그래.."

아저씨는 주차된 차를 향해 한마디 하고는 관리실로 들어갔다. 20분 뒤, 한 사람이 기지개를 펴면서 차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 봐요 사과도 안합니까?"

그는 퉁명스러운 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는지 다시금 나를 보았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보이는 모습이야 뻔하지 않은가?

"이것 보세요 당신같은 사람들 때문에 민주화가 안되요."

그러자 그는 조용히 뇌까렸다.

"아니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주차 정도 한 것 가지고 민주화까지 들먹거리세요?"

그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반문하였다. 조용히. 아니 독백이었나?

"이봐요 민주화가 무엇인지 아나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기 자기 할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민주화요. 당신 때문에 내가 이 밤 늦게 방송해야지, 추운데 당신 기다려야지. 당신이 내 생명같은 시간 담보맡았어? 그리고 내 차에서 소모되는 연료비 낼꺼야? 여기 다른차는 자기 몫을 잘 하고 있는데 당신 때문에 이렇게 민주화가 안되고 있잖아? 국회의원 문제가 아니야?"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차를 뺐다. 끝내 그는 사과하지 않았다. 주차 문제로 민주화같은 거국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나 자신도 대단히 웃기는 존재였다. 하지만 내가 틀린 이야기를 했는가?

종종 외국의 장애인 전용주차구역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진국가의 장애인 복지의 현실을 부러워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이 미국인과 한국인의 근본적인 도덕성의 차이는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 사람들도 장애인 주차구역, 소방차 주차구역에 차를 대고 싶어 한다. 급할 때는 잠시(잠시가 종종 3-4시간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쥐도 새도 모르게 끌고가는 견인차와 경찰의 단속 때문이다.

결국 모든 국민의 마음은 똑같다. 그러나 경찰은 다르다. 단속형태가 다르다.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하면 어느 새 그 차는 견인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은 장애인을 위해서 비어 있다. 견인된 차를 찾아가려면 견인비용과 500달러 정도의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 한다. 미국인들은 이 벌금과 단속을 무서워하는 것이다.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민주화가 우리 보다 앞서 있는 것이다.

민주화, 선진국가에의 진입, 이는 장애인 주차구역을 제대로 지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계윤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졸업과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한국밀알선교단과 세계밀알연합회에서 장애인선교현장경험을 가졌고 장애아전담보육시설 혜림어린이집 원장과 전국장애아보육시설협의회장으로 장애아보육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예수와 장애인, 장애인선교의 이론과 실제, 이삭에서 헨델까지, 재활복지실천의 이론과 실제, 재활복지실천프로그램의 실제, 장애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를 펴내어 재활복지실천으로 통한 선교에 이론적 작업을 확충해 나가고 있다. 이 칼럼난을 통하여 재활복지선교와 장애아 보육 그리고 장애인가족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독자와 함께 세상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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