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에 자기계발 교육 회사에서 교육 마케팅과 동기부여가, 스피치 강사, 교육 강사로 일을 했다. 그때 자기계발서를 상당히 많이 읽게 되었다. 데일카네기, 브라이언트레이시, 스티븐코비 등의 자기계발서뿐 아니라 국내 강사들의 자기계발서도 꽤 읽었다.

많은 내용들 중, 특히 나는 당시에 매사에 감사하라, 감사할 거리를 찾으면 모든 순간에 있다는 말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불의의 사고로 중증장애인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감사하며 사는 것이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될 수 있으면 소소하지만 감사한 일을 찾으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감사하게 여겼던 많은 부분이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냐면 타인보다 이런 부분은 내가 나으니까 위안 삼고, 스스로에게 감사하자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서이다. 절대 내가 타인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나는 소소하지만 감사한 일을 찾으려고 애썼다. ⓒUnsplash

척수장애는 목부터 꼬리뼈까지 척추의 어느 부분을 다치느냐에 따라 마비 상태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목을 다치면 경추 손상으로 대부분 목 아래로 사지마비 상태가 온다. 나처럼 등 부위를 다치면, 다친 부위 아래쪽으로 마비가 나타난다.

그러면 꼬리뼈 다치는 게 제일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각자 다치고 손상된 부위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꼭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통 경추 손상이 하반신 마비는 물론 손까지 마비가 오는 경우가 많아서 제일 힘든 건 사실이다.

아는 척수장애인들 중 경추손상의 경우 같은 척수장애일지라도 나처럼 흉추손상으로 손을 쓰는 것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요추손상으로 조금이라도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반대로 나는 손을 쓰지 못하는 경추손상 장애인을 보고, 내가 손이라도 멀쩡한 것에 감사한다. 경추손상 장애인들은 자기보다 더 힘든 장애인을 보고 감사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감사하는 것이 진정 올바른 것일까? 나는 뭔가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척수장애는 다친 부위에 따라 장애 정도가 다르다. ⓒUnsplash

예전에 여성장애인연대에서 진행하는 모임에 우연한 기회로 처음 간 적이 있다. 거기에는 정신, 지적, 신장 장애뿐만 아니라 나 같은 지체 장애인 등 다양한 장애 여성들이 많이 있었다.

그곳에서 다치고 20년째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나와 비슷한 장애를 가진 여자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의 손상으로 언어장애까지 있었다. 나보다 조금 어린 그녀의 어머니가 나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그 어머니는 자기 딸이 대학을 다니는 중에 다쳐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의 상태와 상황을 엄청나게 부러워하셨다. 자기 딸과는 다르게 말하고 있는 것 자체를 부러워했다. 결혼해서 아이가 둘이라는 것도, 직장에 다니고 있는 것도 모두 다 부러워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그나마 낫다, 정말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하셨다.

한 여성장애인을 통해 느끼는 찝찝한 감사에 불편했다. ⓒUnsplash

굳이 그런 말을 듣지 않아도 그 모임 안에서 나 스스로도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며 위안 삼고 감사해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물론 나를 보고 자신이 더 나은 상황이라며 스스로 위안 삼고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크게 상관이 없다.

하지만, 내가 나보다 힘든 사람을 보고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굳이 그런 비교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찝찝한 감사에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보다 나은 좋은 조건이나 상황에 있는 사람이 마냥 부럽기도 하면서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경우가 있다. 내가 초라해지거나 자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얼른 그 생각을 걷어내야 한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나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엄친아 A씨는 정말 있는 그대로 감사하고, 정말 멋지게 산다. ⓒUnsplash

내가 아는 엄친아 A씨가 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다쳤지만, 앞에서 말한 경추 손상을 입었다. 나보다 훨씬 상태도 안 좋고, 목 아래로 마비라서 팔은 겨우 들지만, 손가락을 거의 잘 움직일 수가 없다.

처음에 나는 손을 쓰는 것만으로 훨씬 내가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A씨를 보고 나는 정말 다행이라 감사했다. 찝찝한 감사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그 A씨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내 생각이 틀렸음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A씨를 보고 위안 삼으며 감사하던 나보다 훨씬 더 멋지게 사는 거다! 다치고 더 힘든 상황에서도 다시 일류 대학교를 입학해서 졸업한 뒤, 현재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 사람이 일류 대학, 대기업에 들어가서 대단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이지만, 좌절하지 않고 얼마나 더 노력했을지 내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물론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만 너무나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존경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남과 비교하지 않고 그 자신만의 삶을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에 내가 오히려 부끄러웠다.

죽기 전에 '온전히 나라서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Unsplash

상대적인 비교를 하며 감사함을 느끼는 건 삶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아닌 것 같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이어서 감사한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감사라 생각한다.

다치고 내가 잃은 것들보다 내게 남겨진 많은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 남들과 비교하며 못 가진 것에 우울해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누리며 행복하면 된다. 나는 그냥 나답게 나대로 살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내 삶이 될 것이다.

나는 그래서 죽기 전에 '온전히 나 자신이어서, 나답게, 나대로 살아서 감사하고 행복했다'라는 말을 꼭!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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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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