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개최된 2·3차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 최종견해 결과보고회 전경. ⓒUN CRPD NGO연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 2·3차 병합국가보고서 심의가 끝나고, 9월 9일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최종권고가 내려진 지 1달 만인 지난 5일 UN CRPD NGO연대가 위원회 권고 결과보고회를 가졌다.

국가심의에 참석했던 민간대표단은 민간보고서 내용과 정부대표단 답변, 그리고 위원회 권고사항을 비교하고 앞으로의 방향 또는 이번 심의에 대한 의견, 평가 등을 나눴다.

한 토론자는 장애인권리협약 외에도 아동권리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등에도 장애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장애아동, 장애여성 등과 연관 있기에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과 관련한 위원회 우려사항 및 권고와 당사자로서 느꼈던 것을 얘기했고, 마지막으로 이번 심의 대응 연대를 이끌었던 연대 위원장은 NGO연대의 심의 참관 활동 일정 및 개요를 간단히 정리한 후 1차와 2·3차 때의 장애인권리위원회 권고를 비교해 설명했다. 1차 때의 권고를 다시 반복한 우려와 최종권고들, 새로운 권고들, 깊은 우려와 강력한 권고 등으로 나눠 설명했다.

다시 반복한 우려와 최종권고엔 ▲아직도 의료적 모델에 얽매인 장애등급판정제도, ▲“의사능력”없는 장애인의 생명보험계약 제한 ▲건물규모, 수용능력, 건축시기에 관계없는 모든 건축물, 구조물의 접근성 보장 권고 ▲장애인차별 소송부담 감면 및 면제방안 마련 등이 있었다.

깊은 우려와 강력한 권고에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성년후견제도에 대한 우려와 지원의사결정제도로 전환하라는 권고 ▲정신장애인 등에게 약물사용 및 신체억압 지속에 대한 우려 등이 있었다. 새로운 권고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 ▲국가의 접근성 전략 채택 ▲정치권과 소셜미디어의 장애비하, 모독 등과 관련한 권고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따른 실종예방정책 수립 등이 있었다.

그러면서 위원장은 "같은 용어를 정부 측과 민간 측에서 영어로 번역할 때 서로 달라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것 같다"며, "국가보고서 작성 시 장애인단체의 참여는 물론, 정부와 장애인단체, 시민단체, 장애인 당사자 간 소통이 필요함을 말했다. 모든 장애인 정책에 통합 등 CRPD의 원칙이 중심에 자리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민간대표단 발표가 끝난 이후 NGO연대 간사단체에서 연대의 해산을 알린 후 기념사진을 찍으며, UN CRPD NGO연대의 활동은 모두 종료됐다.

필자는 이번 국가심의 참관 및 보고서 활동을 하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일단 이번 심의에 농인, 시청각 장애인 등이 참석하지 못한 등, 이번 심의에 참관한 장애인 당사자의 장애 유형 수가 1차 심의 때에 비해 감소한 느낌이 든다. 대표적으로 농인과 시청각 장애인 당사자는 단 한 사람도 이번 심의에 참관하지 않았다.

지난 8월 2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와의 비공개 면담 이후 대응전략을 수립 중인 한국 장애계 모습.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한국정부심의 대응 장애계 연대

여기에는 정부심의와 관련해 장애인 당사자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게 없었던 것도 한 요인을 차지한다고 본다. 사실 간사단체에서 정부심의 참관과 관련해 지원을 받으려고 재단 등 지원처를 찾아가 문의를 했다고 하는데, 재단의 이사진들이 ‘인권 관련해서 성과 없지 않냐?’ ‘이거 여행 가는 거 아니에요?’라는 식의 의구심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으며 아직도 성과주의에 얽매이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좀 답답했다. 물론 성과가 있거나 많으면 좋겠지만 인권이라는 건, 성과 그 이상의 고귀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인권이라는 건 협력은 물론 때로는 투쟁도 있어야 하기에 이사진에서 말하는 성과를 많이 내는 건 애당초 쉽지 않다.

장애인식이 천박한 우리 사회라 인권증진 성과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장애인 당사자들과 장애인단체들이 장애인의 권리 증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 정신장애인 배제하는 장애인복지법 15조 폐지 등은 물론 권리협약 25조 (마)호 유보도 철회해 ‘선택의정서’비준이 목전에 와있다. 다만 정부의 ‘선택의정서’ 비준 의지 부족이 문제지만 말이다.

또한, 장애인들은 대체적으로 비장애인에 비해 소득이 낮고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이 많이 든다. 그리고 국가심의 참관을 통해 비공개브리핑 등과 같이 장애인 당사자들이 생생한 목소리를 내기 위한 기회의 장이 마련되기도 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국가심의에 참관하는 장애인 당사자 활동비 지원은 필요하다.

그래서 ‘선택의정서’ 비준을 위한 기반 마련, 입법활동 등을 간사단체에서 강력히 어필했다면, 지원처에서 지원금을 줬을 거고, 이 지원금으로 더 많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권리협약 정부심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우리 자조모임과 신경다양성 지지모임에서도 경제적 지원만 있었다면 갈 수 있었다고 말했던 걸 보면 정말 아쉽다.

또한, 연대 보고서 작성에 동참하고 심의 끝난 후, 보고서 활동에 대해 잠깐 장애인단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서비스나 예산 부족, 조사대상 누락 등을 중점적으로 얘기하는 등 백화점식 나열 보고서이고, 권리협약의 원칙과 정신에 어긋나는 부분을 주로 강조하는 것에는 조금 소홀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나도 그 부분에 공감한다. 물론 서비스 부족이나 제도 개혁 등을 권리협약 국가심의를 통해 위원들에게 로비하며 언급하는 것도 좋으나, 권리협약 원칙을 강조하고 사회에 흐르는 장애 모델과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 더욱 중요하다. 서비스 부족이나 제도 개혁 등은 권리협약의 원칙 등을 강조하며 장애 패러다임을 전환하면 해결될 수 있는 부차적인 문제기 때문이다.

따라서 권리협약 국가심의 참관활동 등의 인권 관련 활동 등을 지원할 때, 지원처가 민간이든 간에 성과주의에 얽매인 지원 방향에서 탈피했으면 한다. 또한, 앞으로 권리협약 국가보고서에 대응하는 민간보고서를 작성할 때 어떤 이슈가 있으면 이슈와 관련한 권리협약 조항 및 원칙을 주로 강조하는 방향으로 작성했으면 한다.

UN CRPD NGO연대에서 제작한 2·3차 장애인권리협약 민간보고서 영문판 중 일부. ⓒUN CRPD NGO연대

이외에도, 정부심의 참관하기 며칠 전, 장애인의 인권 현실에 대해 알리는 비공개브리핑 3분 발표 시 효율적인 브리핑 진행을 위해 나보고 발표하지 말라고 하는 전화를 위원장으로부터 받았을 당시 상당히 화가 많이 나 ‘나를 배제하려고 이러는 거냐?’고 성토의 목소리를 낸 기억이 난다.

보통 비공개브리핑 때는 주로 장애인 당사자들이 장애인의 인권 현실을 간단하게 알리고, 그 전에 미리 발표 리허설을 하는 게 보통이다. 그게 장애인권리협약의 정신인 ‘Nothing about us, without us’를 상징하는 일환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공개브리핑에 대해 잘 모르시나 하는 느낌에, 비장애인이 발표한다고 한 말까지 겹쳐 좀 화가 났다.

얼마 후, 발표할지 말지를 얘기하라고 할 때, 효율성을 위해서 그러는 건 이해가 간다 쳐도, 너무 효율성 중시하면 인권이 침해될 수 있고, 비공개브리핑 자리는 당사자들의 발표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나는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위원장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제네바로 가서 실제 발표를 했지만 말이다.

한편, 연대 활동을 통해 모르던 사람들을 알며 관계 구축을 하는 건 필자로선 영광이자 행운이다. 1차 때보단 덜 했지만, 그래도 연대 활동을 통해, 법조계, 장애인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알게 되고, 이들과 장애 이슈를 말하며,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게 좋다. 사회에서 함께 어울릴 기반이 하나 더 마련되기에, 나한텐 신선한 자극제이기도 하다.

이제 권고도 내려졌고, 2031년 1월 11일까지 4·5·6차 병합국가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장애인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명령했다. 그러면 빨라야 2032년에 차기 심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향후 10년 동안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권고가 내려진 만큼 권고를 바탕으로 장애인권리협약을 이행할 행동 계획을 국가, 지자체 차원에서 수립해야 한다. 이 계획을 바탕으로, 장애인권리협약의 원칙과 정신에 부합되게 장애인 정책과 제도, 법적인 토대를 꾸준히 하나하나 만들고, 원칙, 정신과 부합되지 않는 정책, 제도와 법 등이 있다면 협약에 부합될 수 있게 바꾸는 게 필요하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에 대해 (국가, 시설 등과) 독립적이고 체계적인 모니터링 체계 구축에 대해서도 지금부터라도 논의하고 이를 차근차근 실행하는데도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한 예로 아직도 장애인 시설에서 사망하거나 폭력이 발생하는 인권침해 사안 등에서 독립적인 모니터링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사망 원인 규명 및 적절치 못한 시설 내 처우 발생 시 제대로 된 즉각적 조치를 이루기 사실상 어렵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장애인의 인권침해를 두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게끔, 그리고 인권증진의 길로 가기 위해 독립적이고 체계적인 메커니즘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장애인이 정책·사회에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고 이를 정책 등에 반영할 공식통로를 마련하는 것에도, 힘을 써야 한다. 얼마 전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와 신경다양인 당사자들은 논의 자리에 초청되지 않았다. 우리가 능력 없고 의견을 잘 내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장애인정책연구센터 오욱찬 연구위원이 지난 9월 7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주최한 ’제2차 장애인리더스포럼‘에서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수립방안 연구 추진 경과 및 계획을 밝히는 모습.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하지만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와 신경다양인에게도 맥락에 따르거나 알기 쉬운 정보 등을 제공하면,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자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고려도 우리 사회에선 잘 안 한다.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를 독려하는 권리협약 일반논평 7호를 지키지 않으니 지적·자폐성 장애인 정책은 제공자 중심일 수밖에.

따라서 장애인의 권리 증진을 통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기반을 마련하려면, 장애인 당사자의 정책·사회 참여는 반드시 필수다. 권리협약 1~4조 관련 권고에도 이런 내용들이 나와 있으니, 정부는 이 권고를 바탕으로 장애인 당사자들이 정책 등에 참여할 수 있는 공식통로를 수립, 권리협약 이행의 길로 한 발짝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기결정권과 선택권 증진을 위해 장애인의 자율성과 의지 및 선호를 중시하는 지원 의사결정 제도로의 전환을 위해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단체, 정부 간 논의가 중장기적으로 반드시 필요함을 말하고 싶다.

위치추적장치와 관련해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및 신경다양인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이들의 동의하에 장치를 발부하라는 권고를 예로 들어보자. 지금과 같이 대체의사 결정제도가 팽배한 판에선, 권리협약의 원칙인 장애인의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란 원칙 대신 부모와 종사자 등에 의한 강제된 동의에 의한 장치 발부의 여지가 농후하다.

그렇게 되면, 장애의 인권적 모델은 물론 장애인권리협약의 원칙에 부합되지 않게 되어, 인권침해의 한 형태가 된다. 따라서 지원 의사결정 제도로 자기결정권과 선택권 증진해 장애인권리협약을 이행, 장애인의 권리 증진으로 가도록 장애인 당사자, 장애인단체, 정부 간에 논의를 통해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하지 않을 경우, 10년 후 차기 심의 때도 장애인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하면서, 2, 3차 당시에 내렸던 권고를 다시 반복하는 등 악순환을 맞이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상황이 재발되지 않게,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행동계획 수립 ▲협약 이행을 위한 독립적 모니터링 체계 구축 ▲장애인 당사자의 사회·정책 등의 참여를 위한 공식통로 마련 등에 대해 치열하고 논의하고 실행하길 바란다.

이제 연대 활동은 종료됐으니, 장애인단체들은 권고를 기반으로, 정부와 지자체 등이 장애인 권리를 잘 지키는지 각자 역할을 갖고 감시할 것이다. 4~5년 동안의 연대 활동을 마친 필자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권고사항을 정부, 지자체가 잘 지키는지 동료들과 함께 차기 심의 때까지 열심히 주시하고 활동하며 의견을 내도록 노력해보겠다.

마지막으로 연대 활동에 참여했던 여러분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장애인의 인권증진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건배!

지난 5일 결과보고회 종료 후 연대 측 구성원들과 다 함께. ⓒUN CRPD NGO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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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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