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우여곡절 끝에 독립할 집이 정해졌다. 가족을 떠나 독립하겠다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털어놓은 후 3년 만에 허락된 공간이었다.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 시선 속에 집 안에서 사용할 것들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가족들과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부모님 댁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비용을 줄이기 원했지만, 당사자인 나는 스스로의 안전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것들로 새로 구입하는 것을 주장했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식구들이 외출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누군가가 항상 집 안에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미끄러짐이나 음식 조리 중 뜨거운 냄비를 놓쳐 화상이나 다른 상처를 입는 등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도와줄 사람이 있었지만, 따로 나가 거주하는 순간부터 도와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야 했기에 혹시나 모를 위험조차도 차단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수납장과 신발장 등에 너무 높은 곳에 물건을 올려 놓았다가 이것들을 꺼내기 위해 팔을 뻗어 물건을 꺼내게 되면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넘어질 수 있기에 적은 수납장들을 별도로 구매해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했다.

냄비를 양손에 들고 이동이 불가능한 몸 상태를 감안해 한 손으로 운반할 수 있도록 손잡이가 긴 제품이 필요했다. 또한 식용유와 간장 혹은 세재 등도 물건을 들어 올리다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기억하고 대용량 제품보다는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안전사고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구입했다.

세면 등으로 화장실을 이용할 때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발매트를 별도로 설치하고 받침대도 구입해 화장실에서 넘어지는 일을 방지하고자 했다. 아울러 수건걸이 및 세면대 등을 확인하여 흔들리는 부분이 없는지 살펴 갑작스럽게 중심을 잃고 그것들을 잡았을 때 세면대가 수건걸이나 함께 파손될 수 있는 위험성도 줄이고자 했다.

이렇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독립해 나간다는 마음에 들떠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달라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지만,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을 이해시키는 것도 당사자의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장애인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모든 사람과 상황을 평가하기에는 각자가 처한 상황도 모두 다르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독립을 생각한다는 것은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수십년에 걸쳐 장애인으로 지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무엇이 왜 필요한지는 누구보다 당사자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임은 물론이다.

장애인이 독립을 준비한다고 하면 “집 안에서도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해서 비장애인들도 힘들어 하는데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혼자 지내려고 하느냐”고 말린다는 얘기를 어렵지 않게 듣게 된다. 장애인에게 독립이란 비장애인과 똑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아닌 개개인의 신체적 특성과 기타 여러 가지 상황에 맞춰 장애를 갖고 있음에도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장애인활동지원을 받으며 가족을 떠나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게 여러 갈등과 오해가 마무리되고, 내 집에 나만의 살림살이들이 모두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독립에 대한 모든 과정이 마무리된 순간 인생의 큰 숙제 하나를 해결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군 재대 후가 전부가 아니듯 독립했다 해서 전부가 아니었다. 오늘 이후부터는 그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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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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