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룩 미디어 총서 25번째로 출간된 ‘장애와 텔레비전 문화’ 표지. ⓒ컬처룩

UN 장애인권리협약에 방송과 미디어에 대한 조항이 있을까? 우리가 많은 장애인권리 중에서 놓치기 쉬운 것이 방송과 미디어다. 제8조 ‘인식제고’에서 권리협약 목적에 합치되는 방식으로 장애인을 묘사하도록 당사국은 언론기관에 권장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리고 21조 ‘정보접근성’에서 인터넷을 포함한 언론매체의 서비스가 장애인에게 접근 가능하도록 장려하도록 하고 있다.

장애에 대한 재현(묘사)이 장애를 올바르게 인식하도록 할 것과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하는 것 두 가지가 규정되어 있다. 협약의 목적에 합치된다는 것은 제1조의 목적인 동등한 향유와 존중을 말한다고 해석된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제3조의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비차별, 다양성 인정, 차이의 존중, 완전한 참여와 통합, 기회균등, 접근성 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언론이나 방송이란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제5조 평등과 비차별, 제9조의 접근성에서의 정보와 의사소통 서비스와도 연관 된다.

텔레비전은 인터넷이나 디지털의 발전으로 쇠퇴하리라는 예견과는 달리, 방송이 디지털과 인터넷을 수용하면서 더욱 위상을 크게 하였고, 방송과 미디어에서의 장애인의 부정적 묘사는 통합과 리더라는 언론의 역할에 역행하게 된다.

‘장애와 텔레비전 문화’라는 책의 저자는 장애인 당사자이며 장애학자이고 언론학자인 호주 커틴 대학교 케이티 엘리스 교수이다. 이 저서를 번역한 하종원 교수와 박기성 교수는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들이다.

미국이나 영국 이야기가 아닌 호주의 이야기를 번역한 이유로, 호주는 영국의 관습법과 미극의 성문법을 절충한 국가이고, 호주의 특징은 제도 도입은 성숙할 때까지 기다리고 일단 채택이 되면 추진력이 대단한 나라이므로, 신중함에서 축적된 자료와 과감한 이행력을 연구할 가치가 높다는 점을 들고 있다. 호주는 늦게 1965년에야 텔레비전이 도입되었고, 2013년에야 디지털 방송이 도입되었다. 방송 접근성에도 상당히 더딘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우리와 유사하여 오히려 참고할 사항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12월 ‘장애인 방송 접근권’ 고시를 제정하였으며, 2021년 10월 ‘소외계층을 위한 미디어포용 종합계획’을 발표하여 5년간 추진할 계획으로 있다. 하지만 장애인을 복지 수혜자로 간주하는 시혜적 정책 방향, 접근 서비스의 제공을 부수적인 비용이 드는 부차적인 업무라고 여기는 방송사업자의 상업적 시각 그리고 정상적인 우리와는 다른 비정상적인 존재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등이 사라지지 않는 한 ‘미디어 격차 없는 행복한 포용국가의 실현’은 공허한 구호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애의 재현과 접근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서론부분에 해당하는 제1장 ‘디지털 텔레비전은 장애인의 인권을 확장하는가’라는 제목에서 대부분 장애인을 감화의 틀로 재현함을 지적한다. 접근성에서는 호주는 현재 모든 프로그램에 자막이 제공되고 있음을 말하고, 방송 연구에서는 방송의 영향력에 대한 연구, 사업적 측면에서 이용자 중심 연구로, 그리고 다양한 접근법에 대한 연구로 이동하고 있다고 연구 동향을 소개한다.

저자는 미디어 문화연구에 폴 두 게이가 주창한 문화 회로 개념을 사용한다. 즉 제현, 정체성, 제작, 소비, 규제라는 틀에서 방송을 분석한다. UN 장애인권리협약의 재현과 접근성을 언급하고 나서, 재현의 방식의 단계를 말하였는데, 부정, 조롱, 규제, 존중이 그것이다.

제1부 ‘재현’에서는 장애의 스테레오타입(정형화된 통속성)과 낙인을 지적하며, 미디어 기업에 장애인의 참여 재현에서의 참여 보장과 접근성 보장이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재현은 재활과 의료모델에서의 반스의 11가지 유형 즉, 불쌍한 존재, 폭력의 대상, 사악한 존재,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초능력을 가진 존재, 조롱의 대상, 혐오와 분노에 가득찬 한을 가진 존재, 부담되는 존재, 성적으로 불완전한 존재, 공동체에 충분한 참여가 결여된 존재, 평범한 존재를 소개하고, 모니터링과 협업과 참여가 아니면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장애인구는 20%이나 장애 캐릭터 등장은 2%에 불과하고, 호주는 18%의 장애인 인구에 장애인 캐릭터 등장은 4%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장애인의 협업과 참여는 일종의 ‘포용특약’을 적용해야 하는데, 이는 일종의 할당제와 유사하다.

드라마 5편과 영화 1편을 반스의 유형 분석으로 연구하였는데, ‘캐칭 밀라’에서는 공허한 삶으로, ‘낫 더 보이 넥스트 도어’에서는 죽는 편이 더 나은 존재와 초능력적 존재, 분노를 가진 존재와 피해자로 재현되었다고 하였다. ‘하우스 오버 핸콕’에서는 부적응성, 부수적 존재, 초능력자, 피해자, 부적응자 등으로, ‘닥터 브레이크 미스터리’, ‘원터’, ‘어 플레이스 투 콜 홈’, ‘워터 디바이너’에서도 유사하다고 하였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모델과 이를 넘어서는 복합적 재화 이론도 소개하고 있다.

다양성을 위해 제작된 스크린 오스트레일리아의 재정 지원 프로그램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넷플릭스, TED 토크, 웹 시리즈에서의 장애 문제를 다룬다. 해나 개즈비의 ‘나의 이야기’는 폭발적 인기로 장애를 화두로 이끌어냈다.

디지털화는 드라마 몰아보기와 기기의 개인화가 이루어진 점을 특징으로 들면서, ‘나는 여러분께 감화를 주는 존재가 아니예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의 절름발이 인생’이란 사례연구를 통해 텔레비전의 공유성이 확장되었다고 평하였다.

‘나의 이야기’는 자기 비화에서 출발하여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을 나타내는 코미디이고 TED 토크는 감화 프로노를 넘어 퍼뜨려야 할 가치가 있는 생각을 만들어냈다. 웹 시리즈 역시 발달장애인의 당찬 모습을 보여주는 자신의 이야기로 감화에 대한 비판을 확장시켰다.

레비의 집단 지성 이론은 ‘디지털화는 지적 공동체의 구축을 촉진한다’는 이론으로, 능동적인 수용자는 창의적 수용자가 되어 집단 지성에 관여하고 지식 공간을 창출한다고 하였다. 그 사례로 조지 마틴의 판타지 소설을 드라마화한 ‘왕좌의 게임’은 권력, 낙인, 사회적 장벽의 제거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한다.

파스칼 메시와 로린 메이어는 ‘왕좌의 게임’이 전형적인 장애 클리세를 해체하고, 장애인 차별주의자의 이데올로기를 탐색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장애인과 분리시키는 장벽을 구축하도록 몰아세우는 도덕성과 취약성의 공포를 밝혀냈다고 평하였다. 이 드라마에서 티리온은 저신장 장애인으로, 호도르는 인지장애인으로 등장한다.

제2부 ‘접근’에서는 오늘날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비추어 볼 때, 당연히 장애문제는 다양성으로 다루어져야 하며,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호주에서는 2018년 상원 청문회에서 화면해설이 다루어졌으나 OECD 영어권 중 유일하게 법적 의무화를 하지 못한 나라가 호주이다.

소크라테스는 ‘예술의 한 형태를 사용하여 다른 예술의 속성을 조명하거나 강조하는 것을 에크프라시스라고 하였다. 이 개념은 접근성을 위한 서비스에도 적용될 수 있다. 미국에서 1929년 ’불도그 드러먼드‘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성영화의 시초라고 소개하였다. 그리고 정기적인 화면해설 서비스는 1940년 스페인 국영 방송 라디오 나치오날 데 에스파냐 진행자가 영화를 해설한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 형태의 화면해설은 미국 교육부 장관 칫 에버리가 교육 매체의 화면해설에 대한 지원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72년에는 센프란시스코주립대학교 그레고리 프레지아 교수가 오디오비전연구소를 설립하여 접근성 제고방안을 연구하였고, 70년대에 마거릿 판스티얼 박사가 리딩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1988년 TNN과 PPS/WGBH사가 화면해설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서비스를 하였는데, 이 공로로 에미상을 수상하였다. 미국의 FCC(방통위)는 1990년 화면해설을 의무화하였고, 2018년 현재 분기당 87.5시간을 의무적으로 화면해설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2014년 시각장애인 로버트 킹게트에 의해 억세서블 넷플릭스 프로젝트를 설립하여 화면해설이 추진되었다. 호주에서는 2012년 ABC 방송사에서 시범으로 화면해설을 하였으나, 지금은 주로 DVD를 통해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장애인 중 80%가 자막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하면서 무성 영화 시절 청각장애인의 공동체 접근성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교육자들에 의해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국 방송에서는 WBGH사가 개방형 자막방송을 하다가 80년대에 와서 폐쇄형 자막 서비스를 하고 있다. 1979년에 미국 국립 자막연구소가 설립되었다.

호주에서는 80년대 SBS가 외국어 번역을 위한 자막으로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1992년 방송사업법이 개정되면서 오후 6시에서 10시 반과 모든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이 자막이 의무화되었고, 2010년 의무 비율이 강화되고 2016년 방송 서비스 기준을 제정하면서 가독성, 정확성, 이해도를 검증하도록 품질 기준이 마련되었다.

한국에서도 내년부터 품질 모니터링과 검증을 의무활 것으로 보이는데, 제작사가 아닌 별도의 독립된 기관에서 검수를 하도록 하여 화면해설과 자막의 품질을 담보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호주에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농인인 켄 하렌스티엔에 의해 자동화 자막 기능이 개발되었다.

장애인에게 편하면 모든 사람에게 편함을 준다는 것을 저자는 기술이 해석의 유연성을 준다고 표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의 방송접근성은 UN 장애인권리협약의 이행 차원과 장애인의 방송 참여와 향유를 위하여 접근성 의무화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이론을 뒷받침해 줄 것이다.

텔레비전은 현재 지배적이고 거대하고 막강한 힘을 가진 또 하나의 사회다. 그러니 당연히 장애인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접근성의 참여만이 아니라, 올바른 재현과 인식개선에 기여하는 제작이 필요하고, 장애인 당사자의 제작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은 당사자의 참여가 장애학적 관점에서 당연함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최근 당사자의 출연은 당연한 방향이며, 반드시 지켜져야 할 기준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비장애인의 장애인역은 마치 노인이 아역을 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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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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