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내가 8개월 정도 있었던 미국, 캐나다를 남편과 아이들과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다. 언젠가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까지 꼭 가고 싶다는 소망이 늘 있어 왔다. 그래서 1년 짜리 적금을 하나 들어 놨었다.

그게 만기되는 시점인 2017년 9월의 어느 날, 마침 우리 첫째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이기도 했다. 여러 핑계와 조건을 맞춰서 여행에 미쳐있던 나는 늘 하듯이 비행기표 부터 끊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여행 일정은 될 수 있으면 길게 하고 싶었으나, 암만 그래도 남편의 일을 몇 달씩 뺄 수는 없으니 한 달 조금 넘게 잡았다. 그냥 내 맘대로 37일로 일정을 잡고, 친정 아부지께 통보(?)와 허락을 받았다. 손녀 사랑이 끔찍한 아부지는 마음에 안 들어하는 눈치이긴 했지만, 마지못해 허락을 해 주셨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가고 싶었다. ⓒ Pixabay

먼저 비행기표를 끊기 전에,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가고 싶은 곳을 쭉 나열해 보았다.

* 미국- LA,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뉴욕, 워싱턴DC, 마이애미

* 캐나다- 밴쿠버, 토론토

* 멕시코- 칸쿤

이렇게 갈 곳을 적어 놓고 보니, 도시 별로 이동하는 것 자체도 무리인데다 어쩌면 우리 가족 네 명이 적금 천 만원을 하늘에 뿌려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와 마이애미는 과감히 빼고, 나머지 도시들을 어떤 경로로 움직여야 경제적이면서 단거리로 갈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우선 출발하는 날과 도착하는 날의 비행기표를 부산-LA-----------칸쿤-부산 이렇게 다구간으로 끊었다. 그런 다음, LA-밴쿠버-토론토까지 편도로 끊고, 토론토-뉴욕-칸쿤을 편도로 각각 끊었다. LA와 샌디에이고는 렌트카로 둘러볼 생각이었고, 워싱턴DC도 렌트카를 이용해서 여행을 하기로 했다.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지만, 경제적으로 항공권을 끊었다. ⓒ Unsplash

비행기값은 4명 총 632만원으로 부산-LA--------칸쿤-부산 370만원, LA-밴쿠버-토론토 130만원, 토론토-뉴욕 57만원, 뉴욕-칸쿤 75만원이었다.

이렇게 끊은 비행 여정은 하늘에 600만원 넘게 뿌린다 생각하니 손이 좀 떨리기도 하고 후덜덜 했지만, 그나마 11월 비수기에 가서 저렴한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성수기 때 한국에서 미국의 어느 도시에 왕복으로 4명이 가는 것보다 싸다고 생각하니 결코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다. 그렇게 비행기값도 합리화를 하고 나니, 완전 설레기 시작했다. 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여행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할 뿐이다.

그렇게 드디어 비행기표를 다 끊고 각 도시별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American Airlines) 부산 -> 도쿄 경유 -> LA 도착

렌트카로 샌디에이고,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LA (10일간)

(Air Canada) LA -> 밴쿠버 (7일간) -> 토론토 (7일간)

(Delta Airlines) 토론토 -> 뉴욕 (내 동생이 기다리는 뉴욕에서 8일간)

그 중 1박 2일은 렌트카를 이용해서 워싱턴DC 고모댁을 갔다 오고, 나머지는 모두 뉴욕에서 여행

(American Airlines) 뉴욕 -> 멕시코 칸쿤 (7일간)

우리 가족 모두가 기다리는 멕시코 칸쿤에서 멋지게 휴양

(American Airlines) 멕시코 칸쿤 -> 미국 댈러스 경유 -> 도쿄 경유 -> 부산

렌트카, 숙소, 교통패스를 챙기고 짐을 쌓면서 너무 설렜다. ⓒUnsplash

비행기표와 일정을 정했으니, 이제 차근차근 렌트카와 숙소, 각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체험이나 관람 예약도 미리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한다. 교통 패스나 관광지 할인권을 꼼꼼히 챙기는 것도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그나마 조금 덜 힘든 것은 미국과 캐나다는 휠체어가 대부분 갈 수 있게 시설이 되어 있어서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좀 쉬운 편이었다. 그래서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아주 저렴한 숙소들로 대부분 예약을 했다.

우리 가족이 37일 동안 여행하는 예상 경비가 2천만원 남짓인데, 벌써 632만원을 비행기 값으로 지출했기 때문이다. 식사도 점심 한끼만 밖에서 먹고, 아침과 저녁은 숙소에서 햇반과 김치, 김, 밑반찬 등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마지막 멕시코 칸쿤은 럭셔리는 아니지만, 올인클루시브(모든 게 다 포함된) 호텔에서 먹고 놀고 쉬면서 멋진 마무리를 할 생각이다.

준비를 하면서 우리 가족이 잘 해낼 수 있을까, 재밌게 잘 여행하고 돌아올 수 있을까, 아이들이 아프거나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등 걱정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물론 내가 너무 좋아서 하는 거긴 하지만, 남편과 애들은 딱 몸만 따라오는 거라서 모든 예약과 준비는 내 몫이다. 처음엔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준비하나 싶어 걱정도 많이 되었다. 설렘, 기대, 두려움, 걱정 등등 온갖 생각이 가기 전까지 머릿속에 가득했다.

출발하는 날,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박혜정

드디어 출발하는 날, 두리발(장애인 콜택시)을 타고 공항으로 가고 있다.​

출발하는 날 생각해보니, 다 예약해 놓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여행 준비 과정이었다. 가기 일주일 전에, 엉덩이에 욕창을 두 군데나 발견해서 정말 큰 손해를 보더라도 다 취소할까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래서 머뭇거리다 짐도 부랴부랴 겨우 싸고, 갑자기 며칠째 머리도 지끈지끈 넘 아파서 왜 이러나 싶어 걱정도 많이 되었다. 또 당시에 라스베이거스에 한 호텔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진 직후라 신경이 엄청 많이 쓰이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그래도 떠났다! 우리 가족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싸우지 말고 즐겁고 행복하게 여행하게 해 달라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37일 간의 우리 가족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계속>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37일 간의 우리 가족여행이 시작되었다. ⓒ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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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정 칼럼니스트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 현혜(필명), 박혜정입니다. 1994년 고등학교 등굣길에 건물에서 간판이 떨어지는 사고로 척수 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9년 동안 중증장애인으로 그래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독립해서 살았습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혼자, 가족, 친구들과 우리나라, 해외를 누비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또, 여성 중증 장애를 가지고도 수많은 일을 하며 좌충우돌 씩씩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교육공무원으로 재직했고, <시련은 축복이었습니다>를 출간한 베스트셀러 작가, 강연가, 글 쓰는 휠체어 여행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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