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나는 공무원 9급 일반행정 공개채용시험에 응시하기로 마음먹었다. 공무원 시험은 필기와 면접이 있는데, 필기시험은 국어, 영어, 한국사, 선택과목(현재는 행정 관련 과목으로 통일됨)을 풀어야 했다.

과목이 다양하고 난이도가 높아 필기시험에 합격하려면 독학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학원 수강을 위한 비용이 필요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조금 망설이셨지만 학원 수강료를 신용카드 할부로 결제하는 것을 허락해주셔서 본격적으로 수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국어, 영어, 한국사 한 시간씩 총 세 시간을 공부했다. 인터넷 강의를 한 강씩 들으면 남은 시간에는 사자성어와 영단어를 외웠다. 태블릿을 펼쳐놓고 공부하니 부모님이 대견하게 생각하고 간식을 내어주곤 했다. 시간이 점점 늘어서 하루 공부 시간이 다섯 시간이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잘 되고 있다고 믿었다.

11월 들어서 슬럼프가 왔다. 수업을 듣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무기력을 견디기 어려웠다. 12월 하순에는 크리스마스와 휴일을 핑계로 어떠한 공부도 하지 않는 2주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사이에 내 진도가 다른 이들에 비해 많이 뒤쳐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개념에 기본심화 과정까지 2회독을 완료하였는데, 나는 필수과목 1회독을 겨우 했으며, 전공과목은 1회독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4월이었다.

2021년 4월에는 국가직 9급 필기시험이 있었다. 부랴부랴 행정법 개념을 외워갔다. 그리고 국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서 처참한 점수를 받게 되었다. 전공으로 택했고 시험 준비 기간에 울면서 기출문제를 풀었던 국어 과목의 점수는 90점이 나왔다.

내가 국가직 시험을 망친 것은 정신장애 때문이었지만, 조금씩 천천히만 하면 될 거라 믿고 안이하게 행동한 내 잘못 역시 컸다. 정신장애 탓으로 돌리기엔 나는 너무 많이 커버렸다.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내가 공부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였다.

6월 시험이라도 잘 봐야 한다는 마음에 벼락치기를 시작했다. 국가직 시험 점수가 높았던 국어는 제쳐두고 행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회독이라도 해야만 했다. 오로지 행정학에만 집중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행정학 1회독을 끝마칠 수 있었다.

6월이 되고 지방직 필기시험을 쳤다. 국어는 역시나 90점이 나왔고, 행정학은 85점을 받았다. 벼락치기가 효과가 있었지만 나머지 과목 성적이 좋지 않아 탈락했다고 생각하고 지냈다.

그러나 6월 말에 나는 지방직 필기시험에 아슬아슬하게 붙었다(특별전형의 힘이었다). 그리고 당장 면접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는 미션이 내게 주어졌다. 나는 면접 경험이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직 면접은 쉽다는 말과, 면접 강의를 결제한 사실로 안심하며 준비를 설렁설렁 했다.

면접 날 나는 면접관으로부터 적성검사 결과가 왜 이렇냐는 질문을 들었다. 그리고 면접관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이상한 제스처를 사용했으며, 어색한 태도로 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미흡 등급을 줬을 것 같은 면접이었다. 면접을 망쳤다고 생각했고, 진짜로 망쳐서 재면접 통보를 받게 되었다.

재면접 통보를 받았을 때 한참을 울면서 공무원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재면접을 잘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없었다. 울면서 다른 이에게 하소연을 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당장 노량진으로 달려가서 다른 수강생들이 면접 연습을 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심기일전하여 면접 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나는 첫 면접 당시 준비한 답변을 무작정 외워갔는데, 그러지 않고 개념 위주로 외워서 어떤 질문이 나와도 그것과 연결해서 대답할 수 있도록 습득했다. 그리고 지역에 관한 뉴스를 검색하여 나오는 내용을 숙지해 예상 질문과 연결했다. 사회 경험 역시 시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에 맞춰서 가다듬었다.

면접 강사를 다시 찾아가 내가 실수했던 점들을 복기하고 새롭게 만든 시나리오로 연습한 것을 보여주었더니, 자신의 문제를 잘 알고 대처하여 한층 나아졌다는 평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면접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피드백을 들은 이후에는 눈을 감고 예상답변을 끊임없이 외웠다. 스터디원과 함께 모의면접도 여러 번 진행하였다. 효과가 좋아서 대부분의 답변을 막힘없이 욀 수 있었다.

재면접의 날이 밝아왔고 마지막 순서를 배정받았지만 전혀 떨리지 않았다. 우리 시가 잘한 정책과 못한 정책 세 가지를 들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답변을 적게 준비해서 조금 당황했지만, 준비했던 답변과 다른 질문에서 준비했던 답변, 연고자로서 느낀 점을 섞어서 말했더니 준비를 잘했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정신적 장애인 단체 <세바다>에서 일했던 사회 경험 역시 좋은 평을 들었다.

재면접을 최선을 다해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필기시험 성적이 낮아 결국 최종 불합격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정신장애인인 나에게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직 면접까지 완주했다는 경험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로 인해 나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오늘도 많은 정신장애인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며 울고 웃는다. 정신장애인에게 공직의 길이 꼭 맞다고 볼 순 없다. 공무원 시험 준비뿐만 아니라 임용 후에도 많은 과제와 시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운 과제를 스스로 목표와 계획을 세워서 완수하는 경험이 주는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정신장애인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고, 일종의 능력 개발이 되며, 끈기와 집중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시험에서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시험 준비 이전의 자신과 이후의 자신은 분명 다를 것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는 정신장애인 인생의 스승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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