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변 소리에 민감한 편이다. 살며시 열린 방문 틈 사이로도 부모님께서 나지막이 이야기하시는 소리까지도 잘만 들린다. 특히 내 이야기를 하고 계실 때 캐치를 잘하는 편이다. 내가 "왜에" 하며 거실로 나오면 "그 소리가 거기까지 들렸어?" 하시며 유난히 밝은 귀에 놀라신다.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2001년에도 방문 너머로 누군가와 긴밀하게 통화하시는 엄마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다른 대화는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 말만은 또럿하다.

"장애등급이 나오지 않길 바랬는데, 만일 그렇게 되면 나중에 더 힘들어질 거라고 하네요."

대화 내용으로 추론해 보니 아마도 내게 장애인복지카드가 생긴 직후였던 모양이다.'내가 어른이 되면 힘들어질 거니? 아니 왜? 난 지금이 더 힘든데? ' 자초지종을 묻고 싶었지만 당시 나에겐 6년 후의 멀게만 느껴지는 미래보단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중학교 첫 중간고사 준비가 더 시급했다.

국어 점수 90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밤을 새워 코피를 흘려가면서까지 열심히 준비한 결과물이다. 아쉽게도 중학교 1학기 기말고사부터 점수가 점점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고3 때까지 한 번호만 찍기의 신공을 펼치는 나를 발견했다. 예나 지금이나 타인이 쓴 긴 글 읽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초등학교 때와 달리 예문이 길어진 국어 수업을 더는 따라갈 수 없었다. 수학과 영어는 초등학생 고학년 일 때부터 어러워졌다.

친구들은 자신보다 높은 국어 점수에 "이제부터 유리는 제 라이벌이에요." 하며 제 일인 양 기뻐해 주었다. 초등학생 때 왕따를 경험했던 것과 달리 중학교에 진학해선 몇몇 친구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었다. 두세 명의 친구들과 학교 앞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를 사 먹고 노래방이나 비디오 대여점에 들리는 일은 나에겐 꿈과 같은 일상이었다.

어눌한 말투와 느리고 어리바리한 행동을 하는 학생! 비교적 쉽게 나온다는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도 국어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은 바닥을 기는 점수를 받은 머리 나쁜 학생!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누가 봐도 나는 '이상한 아이', '반 평균점수를 깎아먹는 골칫덩어리', '꼴통', '문제아'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관심과 특수학급 선생님의 권유로 장애등록을 하지 못했다면 말이다. 자녀의 장애가 경하면 성인이 되면 나아지겠지 하며 등록을 하지 않는 사례도 많다고 들었다. 내 장애를 일찍 받아들이고 사회의 일원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께 무한 감사를 표한다.

만일 당시 진단을 받지 않았다면 어떤 학창 시절로 기억되었을까? 장애판정을 받지 못해도 중학교 3년은 특수학급과 원반을 오가며 평탄한 학교생활을 했을 것이라 예상한다.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도 학습도움실이라는 이름의 특수학급을 이용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특수학급은 중학교와 달리 발달장애등록이 되어 있는 학생을 우선으로 받았던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비극 결말을 맞는 영화 시나리오를 한 편 짜 본다면 나는 아마도 특수학급이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3년의 시간을 한줄기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암울한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장애등록증이 나오지 않았다면 부모님께서는 일단 내가 장애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하셨을 테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서 더 힘들어질 거라는 학교 선생님의 말에 부랴부랴 나를 다시 병원으로 데러 가시지 않으셨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재진단을 받게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적장애판정을 받으려면 웩슬러 지능검사 기준으로 아이큐 지수 70 이하가 나와야 한다. 71 이상 84 이하는 경계선 지능으로 본다. 만일 아이큐 지수 71이 나왔다면 경계선 지능으로 판정받는다. 지적장애인도 아니고 비장애인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선 이들을 어리숙하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본다.

지적장애인과 달리 경계선 지능인은 여전히 복지사각지대에 있다. 국가에서 아무런 지원을 해 주지 않는다. 경계선 지능인은 특별한 도움 없이도 충분히 자립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지적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학습을 비롯해 운동, 언어, 대인관계 등 일상에서 다양한 불편함을 겪는데도 장애인이 아니니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다. 장애인 복지기관 이용도 쉽지 않다. 여기에는 복지예산 부족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75까지 장애인으로 보는 국가도 있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는 장애인 고용공단이나 복지관을 통해서 교육도 받고 취업에 성공했는데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고 있으나 장애 범주에 들지 못하는 이들은 사회의 도움 없이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단기 아르바이트만 전전하며 어떠한 네트워크에 속하지 못한 채 집에만 머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사람 모두가 어두운 삶 속에서 지내는 것은 아니다. 가족과 주변의 관심으로 느리지만 사회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시는 분들도 많으시다. 이점은 지적장애 판정을 받은 나와 같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기개발 서적을 출판한 저자로써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인터넷 방송을 통해 접했다.(나를 지키는 뻔뻔한 감정의 기술 저자 최민정 님) 유명 포털사이트 이모티콘 그림 작가로 활동하시는 분도 계셨다.(네이버 스티커 작가로 데뷔하신 최원재 님) 경계선 지능 자녀를 둔 부모와 청년 당사자의 자조모임이 운영되고 있다는 블로그 글도 눈에 종종 띈다.

이 같이 밝은 사례는 극히 일부인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검색창을 열심히 두드렸지만 더는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사회에 나온 경계선 지능인이 복지사각지대에 있어 각종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는 어두운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많은 수의 경계선 지능인들은 학생일 때는 학교폭력, 방치 등을 겪고 문제아 취급을 받으며 살아간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다. 남자일 경우는 군대 문제가 걸린다. 이들은 관심병사 취급을 받으며 동기와 선임의 폭력에 시달린다.

우리나라 경계선 지능인 수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모양이다. 인터넷 정보를 찾아봐도 전체 인구수의 13%에서 14%라는 죄다 다른 추정치를 내놓는다.

희망적인 사실은 근래 들어서 경계선 지능인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몇 년 전부터인가 경계선상에 있는 사람들을 '느린 학습자' 라 부르며 그들의 어려운 삶을 조명하고 있다. 턱없이 부족하지만 경계선 지능을 가진 학생들을 위한 학교도 생겨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경계선 지능인, 느린 학습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느린 학습자에게 더욱 많은 관심을 쏟아부어 자립을 위한 제도를 마련.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김유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다. 꼬꼬마시절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사람들을 증오하기 위해 글을 썼다. 지금은 그런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발달장애 당사자로 살아가는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