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다양인 옹호 활동을 하다보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신경다양인’ 집단의 구성원이 모든 같은 입장에서 같은 곳을 지향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더불어 신경다양인 개인 간의 계급적·사회적 배경의 차이도 간과되곤 한다. 이러한 인지 오류 속에서 신경다양인 집단이 하나의 균일한 집단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된다.

예시를 들어보자. 나는 정신장애인 정체성을 나의 가장 밀접한 정체성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그러나 나의 입장은 정신장애인 모두를 대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진단명인 ‘조현형 성격장애’는 정신장애계에서 흔한 진단이 아니며, 특성(증상)도 다른 정신장애 당사자에 비해 경미한 편이다. 더군다나 나는 장애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으로서의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법외장애인이다.

대부분 조현병 혹은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고 입원을 수 차례, 수십 차례 반복하며, 증상이 심하고 잦게 나타나는 당사자가 대부분인 정신장애인 집단에서 나는 이질적인 존재이다.

그런 당사자들 대부분은 법적으로 정신장애인 등록을 하였으며, 장애수당이나 장애인 일자리 취업을 경험하기도 한다. 법적 정신장애인 딱지를 붙인 이들이 받는 직접적인 낙인을 법외장애인인 내가 전부 이해할 순 없다.

반대로 정신장애계 주류의 의견이 나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해주리라는 보장도 없다. 정신장애계 주류가 처한 입장은 법외정신장애인인 내가 처한 입장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정신장애계의 관심에서 완전히 벗어난 ‘성격장애’ 당사자이다. 성격장애 당사자와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정신장애인 단체까지 생겼다. 나는 속으로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장애계에는 나 같은 당사자들이 상당히 많다. ADHD 등 정신장애계에서 비주류인 진단을 받거나, 정신장애 등급을 받지 못하거나, 정신장애 특성이 다른 정신장애인보다 심하지는 않지만 정신장애인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당사자들이 많다. 또한 어떤 정신장애인은 자신의 장애를 당당하게 드러내고 정신장애 옹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어떤 정신장애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숨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정신장애인과 비정신장애인으로만 나누어지지 않는다. 나는 여성 장애인으로서 겪는 성범죄 등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지만, 남성 장애인은 병역 문제로 인한 차별과 낙인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저소득층이라는 나의 위치는, 저소득층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어린 나이에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어떤 다른 장애인과 다르다. 한편 의료급여 혜택으로 인해 의료비 지원 혜택을 받은 나는 의료급여 비수급 빈곤층 장애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여기에 인종, 문화적 배경, 성소수자, 노동자 등의 다양한 정체성이 개입하게 되면 그야말로 세상에 똑같은 정신장애인은 아무도 없게 되는 것이다.

정신장애인만 해도 이렇게 다른데, 하물며 정신장애, 자폐성 장애, 지적장애, 법외장애 당사자들이 한데 모인 신경다양인 집단은 매우 이질적인 집단이 될 수밖에 없다. 네 집단의 이해관계와 입장도 다르다.

발달장애만 해도 ‘발달장애인’ 정책이나 지원 등에서 고인지 자폐 당사자는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같은 ‘발달장애인’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주도 집단이나 수혜 집단의 구성이 자폐성 장애 혹은 지적장애에 편중된다면 나머지 집단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 ‘스펙트럼(범주)’의 개념까지 덧붙이면 자신을 ‘장애인’으로 정의하지 않는 신경다양인까지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배경 및 입장 차이가 신경다양인 집단의 단합을 깨트리고 분열시키기 때문에 옳지 않다는 생각은 틀렸다. 우리는 이 운동 및 정체성에 붙어 있는 ‘다양(성)’이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신경다양성 운동이 무엇인지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신경다양성 운동은 뇌 신경(발달)의 여러 모습들을 ‘다양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운동이다. 그렇다. 젠더 다양성, 성적 지향의 다양성, 인종 다양성, 문화 다양성 등 사회에서 존중해야 할 수많은 ‘다양성’ 중에 ‘신경다양성’ 개념을 추가하도록 요구하는 운동이다. 그리고 신경다양인 집단의 이질성은 다시 말해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양성’이다.

신경다양성은 애당초 다양성에 기반을 둔 운동이다. 신경다양성 이전에 수많은 소수자들의 다양성 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신경다양성이 생겨날 수 있었다. 신경다양성 운동을 존재하게 해준 고마운 개념을 단합을 깨트린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신경다양성 운동은 어떤 지점을 향해야 하는가? 신경다양인 집단의 이질성, 아니 다양성을 억지로 통일시키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보다는 신경다양인 집단 내부의 다른 다양성을 포용하고 서로의 다른 입장에 함께 연대해야 한다. 신경다양인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존중할 때, 신경다양성은 그 가치를 이룩할 수 있다.

신경회로가 비장애인과 다른 신경다양인들은 어떻게 살까? 불행히도 등록장애인은 '발달장애인' 딱지에 가려져서, 미등록장애인은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비장애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신경다양인이 사는 신경다양한 세계를 더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고 함께할 수 있도록 당사자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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