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대학을 함께 다녔던 친구 녀석이 결혼 소식을 알리며 청첩장도 줄 겸 만나자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약속 장소에 나가 서로의 근황 이야기를 나눈 후 친구의 얼굴을 보니 설레임 보다는 뭔가 고민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결혼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의 표정이 영 어두워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

친구는 이 말을 듣고 이런 애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듯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독촉보다는 기다려 줘야 하는 시간인 것 같았다. 카페에서 틀어놓은 음악이 두 곡 정도 바꾸었을 때, 친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결혼할 여자친구 동생이 장애가 있는데 상태는 너와 비슷한 것 같아. 지금은 시설에 가 있다는데, 우리가 결혼하게 되면 처제가 있는 시설에 장인 장모님 모시고 일년에 서너번 정도 찾아가고 두 분이 돌아가시면 나랑 와이프가 처제를 돌봐 달라는 거야. 힘들면 계속 시설에 머무리게 해도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네..”

당시의 나는 보조기구 없이 단독 보행이 가능했다. 나와 비슷한 유형의 장애라면 친구 배우자의 동생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시설에 있어야만 할까?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장모님 말씀으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고 마냥 어린애 같다는 거야 버스 노선을 제대로 탈 줄 모르고 지하철 이용도 혼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지.. 나이가 이십대 후반인데도 이 정도면 나중에 나이 먹으면 어떻게 될지 뻔하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너를 보면 장모님 말씀이 틀린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건 아니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참 고민이다. 그런데 장모님이 결혼식에서 너 좀 따로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시던데 괜찮겠어?”

평범한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결혼식장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을 따로 만나기를 원하는 그 분의 심정도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장애인시설에서 지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직업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표본 자체가 주변에는 없었을 터였다. 장애인활동지원, 그룹홈, 혹은 취업, 독립생활에 대한 이야기 중 하나라도 들은 부분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자녀를 시설에 보내고 걱정할 가능성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결혼식장에는 마음으로만 축하하겠다는 말과 함께 봉투를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사람의 삶이 아닌 나 하나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참고서는 될 수 있겠으나 다른 사람의 삶을 좀 더 살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군대를 다녀왔던 이들은, 제대 후 사회에서 적응기를 가질 때, 자신의 모습을 “어리버리”로 표현한다. 사회를 떠나 정해진 일과 속에서 정해진 규칙만을 따르며 한정된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정작 제대 후 사회에 나와서는 한동안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20대 중반이 되도록 대중교통을 익숙하게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장애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장애를 이유로 그러한 방법조차 알려주지 못한 주변의 인식 때문일까?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만 되어도 버스 정류장에서 부모님의 손을 잡고 버스를 기다릴 때 “버스를 갈아 탈 때는 번호를 잘 보고, 차를 갈아탈 때는 내리기 전에 카드를 꼭 찍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장애인은 왜 그러한 부분에서 논외의 대상이 되어야 했는지 의문이었다. 그렇게 시설에 살면 평생 “어리버리”로 지내는 것이 더 걱정스러운 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장애와 인지능력은 상관이 없어. 지금이야 매년 명절마다 처재 찾아간다지만 나중에 아이라도 생기면 그때부터는 쉽지 않을 거야. 부모와 형제자매는 다른 거 아니겠어? 너희 장모님 말씀대로라면 나도 시설에 있어야지 나는 왜 여기 있냐?”

친구는 고맙게도 내 입장을 이해했고, 다시 이 문제를 상의해보겠다고 했다. 친구 부부가 마음을 굳게 먹는다면 동생을 돌봐주는 조건으로 받은 금액을 시설이 아닌 처제가 될 사람의 미래에 대해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부모에게서 난 자녀가 결혼을 하고 부모님 곁을 떠나게 될 때, 장애가 있는 가족 구성원으로 인해 모두가 고민하는 시간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어느 한쪽이 가정을 가진 상태에서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봐야 한다면 선의가 아니라 부담이 될 것이다. 은퇴와 노후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장애가 있는 자녀의 독립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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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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