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구직 단계이지 직장에 다니는 중이 아니므로 지금은 자유롭게 말할 수 있습니다만, 제 월급 수준은 같은 연배의 비장애인에 비해서 대단히 얄팍한 수준의 월급이라는 점이 마음에 자주 걸립니다.

벌써 300만 원대의 월급을 받는 30대 초반의 일반적인 직장인과 달리, 저는 세전 200만 원의 월급도 받아본 적이 없었을 정도이기에 그렇습니다.

문제는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어 200만 원을 준다고 최저임금에서 단돈 10만 원도 차이가 안 난다는 점입니다.

필자가 사상 첫 실수령 월급 150만원을 달성한 시점인 2018년 7월의 월급명세서. ⓒ장지용

제가 역대로 받아본 월급에서 월급 200만 원이 찍혀나온 사례는 사실상 없다시피랍니다. 그것도 세전 200만 원을 기준으로 말했음에도 그러한 수준입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세후 150만 원의 월급을 받은 것이 직장생활 시작 5년만인 2018년에야 가능했었을 정도이니 앞으로 세전 200만 원은 어림도 없는 형편입니다.

물론 잦은 이직에 따른 문제도 월급이 적게 나오는 원인 중 하나이지만, 이러한 경력이 충분히 쌓였음에도 경력을 반영한 월급 산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정도 연배나 경력 문제에서는 이론상 저는 세전 200만 원을 넘어 세후 200만 원도 가능했어야 했습니다.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에 대한 아이러니한 사실은 월급의 최고액이 사실상 법적 최저임금에 갇혀있다는 지적은 장애 노동권 문제에서 자주 지적되는 문제입니다. 오죽하면 장애인고용공단 직원들도 자주 한탄할 정도로 열악한 장애인 월급 수준입니다.

발달장애계의 삼성이라는 애칭이 있는 베어베터조차 월급 수준은 법정 최저임금에 연동되는 구조라고 하니, 발달장애인의 월급 ‘후려치기’는 구조적인 악습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작 ‘후려쳐야’ 할 비용인 비효율적인 비용, 특히 이른바 정치 헌금, 즉 기업이 정치권에 아부하려고 쓰는 비용을 부담하게 끔 하는 것은 없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요즘에도 기업이 정치 헌금, 즉 정치권에 아부하는 비용이 상당히 많았던 점을 지난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에서 똑똑히 지켜봤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보면 발달장애인이 받는 월급, 이른바 보호작업장 등의 급여체계는 말도 아닐 정도의 월급 ‘후려치기’를 단행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호’를 한다는데 사실상 ‘노동’을 하라고 하면 이것은 ‘노동’에 준하는 체계로 월급을 지급해야 옳습니다.

아주 열악한 수준의 급여를 기준으로 말하면,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들이 받는 한 달 최대 원고료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받는다고 해도 제가 가끔 큰 곳에 불려가서 강연하고 오면 받는 ‘강연료’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큰 곳에서 강연하고 오면 한 10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의 ‘강연료’를 받는데, 그 돈은 어쩌다가 그런 일이 생긴다는 한계는 있지만, 딱 한 번 해주고 받는 비용인데 반면 그 ‘급여’는 한 달을 그렇게 해야 받는 돈이니 ‘후려치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보호작업장 등의 수당 체계에서 ‘기부금’ ‘점심값’ 등의 명분으로 그 비용 내부에서 지출을 강요하고 있으니 ‘줬다 뺏는’ 구조도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호작업장의 유일한 장점이라고는 장애인끼리만 모여있기에 장애 때문에 눈치 보이지 않는다는 점 말고는 딱히 장점을 꼽을만한 것은 없다는 것이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장애인 일자리의 탈시설화’도 장기적으로 과제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장애계에서 주장하는 ‘탈시설화’는 대부분 거주공간에 있어서만 그러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일자리 문제에서도 ‘탈시설화’를 가속해야 하는 문제점이 앞으로 장애계가 다음번으로 짚고 넘어가서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냉정히 월급 200만 원이 최저임금선 가까이에 와 있게 되었는데도, 장애인 노동자, 특히 발달장애인 노동자가 아무리 주5일, 8시간 노동, 즉 상용직으로 일해도 월급 200만 원을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직도 최저임금에 연동되는 구조이거나, 최저임금을 간신히 피하는 수준의 월급 책정 구조입니다. 이제는 세전 월 200만 원이 법정 최저임금에 단돈 10만 원도 차이 나지 않는 구조로 전락했음에도 말입니다.

아직 출판 직전의 자서전이지만, 원고 일부 중에 사전 원고 공개 당시 큰 주목을 받은 원고가 있었습니다. 의외지만, 결론은 “나는 솔직히 정규직, 직급 대리에 실수령 200만 원을 직장생활에서 받아보고 싶다”라는 너무 소소한 이야기였는데, 포털 메인에 소개될 정도에 조회 수도 무려 5만 건 넘는 기록을 달성한 제가 확인할 수 있는 역대 최대의 조회 수를 기록한 글이 있었습니다. 제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달성하지 못했던 기록이었거든요.

그 글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다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강조를 한 발달장애인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개탄 때문에 그런 조회 수를 기록한 것인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만, 의외로 이런 절규가 가능한 것은 한국 발달장애계의 처참한 현실입니다.

저는 다음 직장에 가면 솔직히 세전 200만 원 이상의 월급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구직을 할 때도 먼저 검토하는 것 중 하나가 월급 문제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의미의 최저임금인 월 200만 원과 법적 최저임금과의 차이가 이제 10만 원도 차이 나지 않는 현실에서, 발달장애인, 더 나아가 장애인 월급 ‘후려치기’는 이번 대선과 그 이후 정책으로 과연 근절될까요? 이번 대선의 장애인 노동 관련 정책 대결 지점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연, 어느 후보가 이 문제의 주도권을 쥐게 될까요? 이제 장애인 월급 ‘후려치기’는 그만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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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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