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 별표1. ⓒ배융호

장애인, 특히 휠체어 사용자에게 장애인용 화장실(법적 용어는 장애인등의 이용이 가능한 화장실)은 반드시 필요한 곳이다. 아무리 많은 화장실이 있어도 장애인용 화장실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건축 관점에서 볼 때 장애인용 화장실은 그 중요성에 비해 상당히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 건축 관점에서 볼 때 장애인용 화장실은 소수가 이용하는 화장실이고, 건축물에서 볼 때도 아주 작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현재 장애인용 화장실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설치 위치이다.

대부분의 장애인용 화장실은 1층 홀에 설치된다. 이것은 장애인등편의법의 기준에 따른 것이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 별표 1(편의시설의 구조·재질 등에 관한 세부기준)의 13. 장애인등의 이용이 가능한 화장실의 가. 일반사항 중 (1) 설치장소에 따르면 “(가) 장애인등의 이용이 가능한 화장실은 장애인등의 접근이 가능한 통로에 연결하여 설치하여야한다”라고 되어 있다.

건축물 공간 측면에서 볼 때, 접근이 가장 편리하고 쉬운 통로는 복도, 그 중에서도 1층 홀이다. 건축에서 홀은 외부와 연결되는 곳이며, 공간이 넓고 외부로 열기와 냉기가 빠져나가 냉방과 난방을 하게 되면 에너지 낭비가 심한 공간이다.

따라서 홀은 대부분 냉·난방을 하지 않는다. 장애인용 화장실은 1층 홀과 연결된 통로에 설치된다. 물론 그곳에는 장애인용 화장실만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일반 화장실도 같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비장애인들은 홀에 있는 화장실이 아닌 다른 층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별표2. ⓒ배융호

문제는 장애인, 특히 휠체어 사용자의 경우 1층의 장애인용 화장실 밖에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건물에는 1층 홀 등 주출입구가 있는 층 1곳에만 장애인용 화장실을 설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장애인등편의법의 기준을 따른 것이다.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별표2(대상시설별 편의시설의 종류 및 설치기준)의 3.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 중 가. 일반사항의 (7) 장애인등의 이용이 가능한 화장실에 따르면 “장애인 등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구조, 바닥의 재질 및 마감과 부착물 등을 고려하여 설치하되, 장애인용 대변기는 남자용 및 여자용 각 1개 이상을 설치하여야 하며, 영유아용 거치대 등 임산부 및 영유아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구비하여 설치하여야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바로 위 내용 중 “남자용 및 여자용 각 1개 이상”이라는 규정 때문에 대부분이 건물에서는 남녀 각각 1개의 장애인용 화장실만을 설치하고 있으며, 그 1개의 화장실을 접근이 가능한 통로에 연결하여 설치하다보니 주로 1층 홀에 연결하여 설치하고 있는 것이다.

실내기온(왼쪽), 외부 기온(가운데), 장애인화장실 기온(오른쪽). ⓒ배융호

그런데 문제는 1층 홀은 냉·난방이 거의 안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필자가 장애인용 화장실의 실내 온도를 측정해 보니 1층 홀과 연결된 장애인용 화장실의 실내 온도는 일반 사무실 온도에 비해 매우 낮았다.

외부 기온이 영상 8도였던 지난 11월 하순에 온도를 측정한 결과 난방을 하는 사무실의 실내 온도는 영상 24도였으나, 1층 홀에 있는 장애인용 화장실의 실내 온도는 영상 12도로서 사무실 온도와는 무려 12도나 차이가 났다. 외부 기온과 비교해도 4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반면에 필자가 근무하는 9층 복도에 위치한 일반 화장실의 실내 온도는 21.5도로서 사무실 실내 온도와 비슷하였다. 결국 장애인용 화장실이 1층 홀과 연결된 통로에 위치함으로써 겨울에는 각 층 복도에 설치된 일반 화장실에 비해 온도가 매우 낮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여름에는 외부 온도에 따라 장애인용 화장실의 실내 온도도 올라가 찜통이 된다. 필자는 장애인용 화장실에 갈 때마다 겨울에는 핫팩을 가지고 가고, 여름에는 휴대용 선풍기를 가지고 간다. 그래도 추위와 더위를 이길 수가 없다. 반면에 각층 복도에 위치한 일반 화장실은 더위와 추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장애인용 화장실만 심각한 더위와 추위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차별의 문제이며, 장애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장애인용 화장실을 2개 혹은 3개 층 이상에 분산 설치하되, 홀이 아닌 복도에 설치하여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설치해야 한다.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BF인증) 건축물 인증 기준에 따르면, 전체 건물 층수의 50% 이상의 층수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을 경우 최우수 등급, 30% 이상의 층수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을 경우 우수 등급, 1개 층에만 설치되어 있을 경우 일반 등급을 주고 있다. 장애인 화장실 설치 층수 비율로만 본다면 대부분의 건축물은 일반 등급 밖에 되지 않는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화장실이 있는 모든 층에 장애인용 화장실도 설치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BF인증 기준처럼 최소한 30% 이상의 층에 또는 50% 이상의 층에 설치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각 층 복도에 장애인용 화장실이 설치될 경우, 장애인용 화장실은 두 가지 형태로 설치될 수 있다. 첫 번째, 형태는 기존과 같이 남녀 장애인용 화장실을 일반 화장실과 별도로 설치하는 단독형 장애인용 화장실이며, 두 번째 형태는 일반 화장실 내에 설치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겸용 화장실이다.

단독형 화장실에는 대변기 출입문을 자동문으로 설치하고 대변기 칸의 유효바닥 면적도 폭 2.1m 이상, 깊이 2.1m 이상의 충분히 넓은 공간을 확보하여 전동휠체어 사용자를 포함한 모든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단독형 장애인용 화장실은 기존처럼 1층 홀 등 주출입층에 접근이 가능한 통로와 연계하여 설치할 수 있다.

반면에 장애인·비장애인 겸용 화장실은 각층 남녀 일반 화장실 내에 설치하므로 출입문은 미닫이문 또는 접이문(자바라 문 제외)으로 설치하고, 대변기 칸의 유효바닥면적을 최소화하여 대변기와 휠체어 회전공간만으로 구성하여 최대한 많은 공간에 설치한다. 이러한 겸용 장애인용 화장실의 경우 혼자서 이용이 가능한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1층 홀과 연결된 단독형 장애인용 화장실에는 라디에이터와 에어컨 등 냉·난방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중앙 냉난방 시설과 연결하여 설치한다면 에너지 절약이나 화재 등의 위험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용 화장실의 냉난방 설비는 편의의 차원이 아닌 인권의 차원이다. 그곳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이 추위에 떨고, 더위와 씨름하며 이용하지 않도록하기 위한 설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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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융호 칼럼니스트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총장,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서울시 명예부시장(장애)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사단법인 한국환경건축연구원에서 유니버설디자인과 장애물없는생활환경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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