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가 발생하는 등 긴급 피난이 필요한 때에 엘리베이터가 정전된다. 그러면 연기를 피할 수 있는 대기 공간에서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 구조가 빨리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별도의 안전한 공간이 없다면 휠체어 장애인은 다층 건물에서 탈출할 방법이 없었다.

이에 이지무브와 국립재활원은 계단으로도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피난할 수 있도록 피난용 휠체어를 별도로 개발했다. 휠체어 등받이 부분에 바퀴(레일)를 달거나 계단에 레일을 설치, 내려오도록 했다.

휠체어를 뒤로 눕히면 누군가 도움을 받아 계단에서 내려올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런 피난기를 이용할 경우 누군가 몸을 피난용 휠체어에 태워 고정시켜야 하고, 데리고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혼자 탈출할 수 없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아세아방재에서는 행정안전부 R&D(연구개발) 지원사업으로 휠체어 장애인용 피난승강기 개발을 2년간 진행했다. 이는 별도로 무동력으로 아래층으로 내려올 수 있는 하강식 피난기이다. 비장애인용 피난기는 이미 개발되어 있었으나 휠체어 사용 장애인은 공간이 협소하여 탑승을 할 수 없었고, 하강판과 바닥면의 높이차가 있어 하강판에 올라가거나 내려올 수 없었다.

휠체어 장애인용 승강식 피난기는 비상시에 엘리베이터처럼 탑승을 하여 좌우측의 레버 중 하나를 젖히고 손을 놓으면 무동력으로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 탑승할 수 있는 무게는 400킬로그램까지이고, 내려오는 속도는 초당 20에서 30센티미터로 한 층을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초 정도가 된다. 한 층을 내려오면 바로 옆의 다른 피난기를 갈아타고 다시 한 층을 내려오는 식으로 피난기는 지그재그 식으로 설치된다.

건물에 휠체어 장애인용 하강식 피난기를 설치할 수 있는 최대 높이는 7미터이므로 어떤 높이의 층고를 가진 건물에도 설치가 가능하다. 발판에 올라가는 입구의 통과폭은 1미터이므로 전동휠체어이든, 수동휠체어이든 가능하다. 피난기에서 내려선 다음 후진하여 발판에서 내려오게 되는데, 발판과 바닥면은 수평이며, 피난기 전면의 1.2미터는 수평면을 유지하도록 건축물 설계시 고려하여야 한다.

휠체어 장애인용 하강식 피난기의 첫 실험은 지난 10일 아세아방제 화성공장에서 관련 장애인단체가 참석한 가운데 실시되었는데,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매우 편안하게 피난할 수 있었다. 하강한 피난기는 장애인이 내리고 나면 바닥에 무게가 없어져 무동력으로 다시 자동으로 상승하게 되어 다음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보통 다시 상승할 경우 다른 업체에서는 공기압 스프링을 이용하는데, 공기는 시간이 지나면 빠져나가게 되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아세아방제에서 개발한 이 제품은 무게추를 이용하여 자동으로 상승하게 된다.

무동력으로 작동하여야 하기 때문에 각종 전자센서 등을 사용하지 못하는 개발의 한계가 있었으나, 하강하는 속도조절과 하강 후 바닥에 닿을 때의 충격, 레버를 작동하는 데 필요한 힘의 강도, 내려선 후 상승 이전의 장애인이 완전히 후진하여 상승하는 판과 충돌이 없도록 하는 방법 등이 잘 고려되어 매우 안전하게 제작된 것이 확인되었다. 조금의 문제라도 발생하면 자동으로 작동이 멈추는 기능도 갖추고 있었다.

이 피난기를 장애인이 자주 이용하는 노유자시설 방재구간이나 외벽 등에 설치하면 장애인들이 비상 대피에 큰 도움이 되어 안전한 삶을 보장받고 생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상반기에 상용화하여 제품이 보급되려면 기존 건축물이면 구조를 일부 변경하는 공사가 필요할 것이고, 신축 건물이라면 설계에 반영하면 된다.

화재시 피난기의 설치에 관한 안전기준이 있으나, 휠체어 장애인용 하강식 피난기의 안전기준이 아직 반영되어 있지 않아 소방청의 안전기준의 개정이 먼저 이루어져야 이 제품의 설치가 가능해질 것이다. 보통 5천 번의 시험을 통해 안전을 확인하게 된다.

10일 아세아방재 화성공장에서의 실험을 위해 설치한 휠체어 장애인용 하강식 피난기는 건물에 설치된 것이 아니므로, 가건물처럼 건축기둥을 만들어 틀이 건물의 구조에 해당한다. 그리고 측면의 회색 판은 하강 속도를 조절하는 각종 기기들이 들어 있는 알루미늄판이다. 녹이 쓸지 않도록 하고, 기기와 탑승자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칸막이 역할을 한다. 기기들은 면적을 차지하지 않도록 최대한 고려하여야 하므로, 벽면에 바짝 붙여서 설치된다.

하강을 위해 별도의 안전띠는 필요하지 않으나, 벽이 없을 경우 개방된 공간이라면 차단막이 있어야 장애인들은 더욱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현재 실험을 위해 설치된 파닌기를 탔을 때에 누드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천히 내려오는 기분이었다.

현재 지속적인 반복 사용을 통한 안전시험을 하고 있으며, 행정안전부 지원 연구비를 받아 개발한 연구과제는 올해 연말이면 종결된다. 이 제품은 서울유니버셜 디자인센터에 유디인증심의도 받을 계획이다.

하강을 하기 위해서는 최하 50킬로그램(휠체어 무게 포함) 이상 300킬로그램이 발판 위에 올라서서 레버를 움직이면 서서히 하강하도록 하는 등 안전기준을 소방청에 조속히 개정해 줄 것을 장애인단체들이 요청할 계획이고, 내년이면 장애인시설을 우선으로 하여 점차 휠체어 장애인용 하깅식 피난기가 설치될 전망이다.

장애인 스스로 혼자서도 탈출이 가능하고, 도움이 필요한 경우 보호자가 동승할 수 있는 이러한 피난기가 개발되기를 고대해 왔는데, 이제 빛을 보게 되어 매우 기쁘다. 이제 적극적으로 이 피난기를 많이 보급되도록 특히 노유자시설들에 우선 설치되도록 하여 장애인이 소방방재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되기를 바란다. 피난 문제로 횔체어 장애인은 임대아파트 1층 위주로 임대하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화재 등 비상시가 아닌 평소에도 엘리베이터 설치가 어렵거나 비용 절감을 위해 한 두 층만 수직 이동을 하면 되는 공간 등에는 장애인용 승강기로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전기식이 아니어서 비용이 매우 절약되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우선적으로 이용해야 하지만, 비장애인은 엘리베이터처럼 다수가 이용 가능하므로 다수용 피난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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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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