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장애단체 유럽장애포럼(European Disability Forum)에서 ‘Nothing about us, without us’ 피켓을 든 모습. ⓒEuropean Disability Forum

장애인권리협약의 기본 정신이자, 장애 인권 운동의 철학, 역사를 대표하는 다음의 말을 장애인 당사자 포함해 장애계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Nothing about us, without us’(우리를 빼고 우리에 대해 논하지 말라!)

장애인과 관련한 모든 사안을 결정ㆍ할 시, 장애인 당사자와 반드시 협의해 장애인의 관점을 갖고 결정해야 한다는 거다. 이게 되려면 장애인의 적극적 참여가 있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선 장애인권리협약 4조 3항과 33조 3항에 규정하고 있다.

4조 3항에선 장애인 관련 입법과 정책, 개발 및 이행 등에 장애인과의 협의 및 적극적인 장애인의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33조 3항에선 시민단체, 특히 장애인과 이들을 대표하는 단체들이 권리협약 이행과 관련한 감독 절차에 충분히 포함되고 참여한다는 내용이 있다.

4조 3항, 33조 3항과 관련해 자세히 서술한 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 제7호에선 권리협약 제정 과정에서의 장애인 단체를 통한 장애인의 참여 과정과 개입이 개인의 자율성, 완전하고 효과적인 참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의 좋은 예라고 소개한다. 장애인 관련 정책, 입법 등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적극적 참여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거다.

정책, 입법 등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장애인의 당당하고 인간다운 삶은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게 될 거다. 그런데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가로막는 물리적, 심리적 장벽, 또는 장애인을 위한 단체의 참여를 우선시하는 것 등으로, 장애인 당사자의 적극적인, 그리고 활발한 참여는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정신장애인 등은 그동안 장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정신능력(Mental Capacity) 부족을 이유로 법적 권한을 부정당해 사회참여, 정책 참여 등에 제약, 배제를 받아왔다. 이로 인해 정신적 장애인은 인권침해와 유린 등 장애인 차별‧혐오행위의 총알받이 역할로 전락 당하고 있다.

지난 3월 3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지적장애인의 11년 치료감호에 대한 국가배상청구 및 장애인차별구제 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밝혔다. ⓒ에이블뉴스 DB

3개월 전, 인권위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공동 주최로 ‘구금시설 장애인 수용자 인권실태와 개선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시청했는데, 발제자로 나온 한 변호사에게서 이런 얘기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집행 시작 후 6개월마다 치료감호심의위원회에서 심사해, 치료 감호 종료 및 계속 여부를 결정한단다. 그런데, 한 지적장애인은 징역 1년 6개월을 받고, 11년 이상을 치료감호소에 구금되었다고 한다, 치료감호소에서 모범적 생활을 했고, 죄를 반성했는데도 거기서 10년 이상 있었단다. 이 얘기를 들으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여기에 대해 변호사 이야기를 계속 들으며, 의문이 풀리게 됐다. 치료감호심의위원회에서 하루에 200건 넘게 심사하고, 더군다나 치료감호는 치료 필요성과 재범 위험성이 있을 때 하는 건데, 법무부가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단 거다. 200건 넘게 심사하면 솔직히 제대로 된 심사 될지 정말 의문이고, 또한, 지적장애나 자폐성 장애의 경우 치료가 될 수 없기에 치료 필요성이 없다.

여기에 치료감호심의위원회 구성에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나 관련 전문가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확실히 치료감호소에서 장기구금이 될 수밖에 없겠다는 것이 이해가 갔다. 만약 그 위원회에 많은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했다면 이 장애는 치료될 수 없으니 치료감호 종료하라는 당사자들 의견이 많았을 것이고, 이는 치료 감호 종료와 사회복귀로 이어질 것이란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정신장애인의 경우 입원심사와 관련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경우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하지 않아도 위원회 구성이 충족될 수 있게 법을 만들었기에 입원적합성 심사 결정과 관련, 정신장애인 배제의 우려를 안고 있다. 이는 정신장애인이 겪는 부당한 정신병원 장기입원을 막지는 못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3년 전,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서도 대책 마련을 위한 의견 시 고인지, 저인지 통틀어 자폐성 장애인을 배제했다. 그러니 자폐성 장애인을 오로지 권리의 객체, 돌봄 대상으로 보는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보완대체의사소통 대책, 당사자가 중심된 자조단체 지원대책 등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권리 주체로 보는 정책은 찾기 어려웠다. 결국,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시혜와 동정의 대상인 건 여전하며 이들의 삶의 질 증진에 대한 건 꿈꾸기도 어렵다.

장애인권리협약 대한민국 국가보고서 1차 심의 무렵, 필자가 지적장애인의 방송 및 정보접근성 열악한 현실에 대해 당시 장애인권리위원회 몬티안 분탄 위원에게 설명하고 있는 모습.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이 피성년후견인인 경우 선거권을 박탈한다는 공직선거법 조항을 폐지하지 않음은 이들의 사회참여와 정책 참여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물론 작년 서울시에서 피성년후견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고 했지만 말이다. 이외에도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선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당사자들이 위원에 포함되지 않았고 현재도 그렇다.

아까도 말했듯 사회참여, 정책 참여 등에서 지적‧자폐성 장애인 등의 정신적 장애인이 사실상 배제당하기에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다. 그러니 정책 결정 과정 시 정신적 장애인 등 장애인의 삶의 경험이 아닌 전문가들 시각을 중점으로 반영될 수밖에. 이로 인해 정신적 장애인 등 장애인의 삶의 질은 별반 나아지지 않거나 하락하고 있다.

그러기에,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당사자 등의 장애인들이 과반수 위원 구성이 돼야 한다. 정부가 민간차원에서 장애인 권리협약 이행을 감독하고 모니터링하려는 체계에 대해 지원하고, 여기에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 등의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적‧자폐성 장애인 관련 자조단체 지원과 관련해 구체적인 예산을 배정하고, 배정하더라도 단체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안을 국가는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 정신적 장애인 등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정책 참여가 적극적으로 되게 하고, 사적, 공적 의사결정 시 이들의 의견이 반영되게끔 해야 할 것이다.

정신적 장애인의 삶의 질 증진을 위한다면 전문가들 당신들의 시각만이 아닌 이들의 삶 경험을 최우선으로 진지하게 경청하고, 이들과 반드시 협의하며, 이들이 주체적으로 의사결정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가와 지자체 등의 우리 사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사회환경을 우리 사회는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 관련 사안 결정 시, 장애 당사자들의 삶의 경험보다 강력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정신적 장애인 등 장애인 관련 정책 등의 사안 결정 시 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 제7호에서 강조하고 있는 이 말을 새삼스럽고 당연하지만, 다시금 상기할 때다.

‘Nothing about us, without us’(우리를 빼고 우리에 대해 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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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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