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를 치는 모습. ⓒ kor.pngtree.com

현재 중복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피아노 교육을 진행 중이다. 뇌병변장애와 경계선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다. 장애의 여부와 관계없이 아이들은  피아노의 날것 그대로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피아노의 색깔, 소리, 모양, 구조등 아이들에게 피아노는 호기심 천국이다. 피아노의 구조를 알려주기 위해 그랜드 피아노 뚜껑을 오픈한 적이 있다.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피아노의 진짜  속 모습을 들여다보며 세상 신기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마주하는 아이는 이미 피아노에 홀릭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만큼 어려운 피아노

지적장애학생에게 숙제를 내줬다. 3박 4일의 짧고도 긴 여행을 간다기에 그냥 다녀오라 하기엔 기회가 아까워 2가지를.

먼저 베토벤(Beethoven)의 피아노 소나타 Op13. No. 8번 '비창'(Pathetique) 소나타를 피아니스트 리처드 구드(Richard goode)의 연주로 감상해 오라고 했다.

두 번째 숙제는 피아노는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오라고 했다. 나는 장애아이들에게도 생각하고 되돌아보는 훈련을 시킨다. 물론 생각의 깊이에 있어서 다르지만 이런 훈련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좋은 음악가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된다.

여행 후 만난 학생은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평소보다는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숙제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먼저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학생의 메모장에는 이렇게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혀있었다.

'1악장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 같다.'

'2악장은 많이 들어 본 곡이라 친숙하다.'

'3악장은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치고 싶다.'

학생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캐취해 내고 있었다.

워낙 음악을 듣지 않아 여유 있을 때라도 감상하라는 의미에서 내준 숙제인데, 아이의 고백(?)은 꽤나 진실했다.

두 번째 숙제는 ' 피아노는 00000다.' 문장을 완성시켜 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삐뚤빼뚤한 글씨로 그리고 쑥스럽게 적혀있었다.

'피아노는 나의 짝사랑이다.'

설마 '짝사랑'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줄이야. 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

"잘 치고 싶은데 잘 안돼서요."

학생의 표현은 27년을 피아노를 연주해온 내 가슴을 여과 없이 관통했다. 그렇게 솔직하고 진심스러울 수 없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식의 전투적인 마음이 아니었다. 학생은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느릴 뿐이지 다 느끼고 깨닫고 있었다.

학생에 대한 기준과 벽은 쓸데없다

레슨을 하다 보면 학생의 잠재력을 보기보단, 현재의 실력을 더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학생의 평가와 기준이 벽돌처럼 쌓아져 간다.

장애아동을 레슨 할 때는 특히 더 그러하다. 아이들과 만나고 함께하며 확실히 반성하는 것 중 하나가 그것이다. '교사로서 학생에 대한 기준과 벽을 만들지 말자'이다.

그러한 기준과 벽은 학생의 잠재력을 해할 수 있게 하며, 학생들이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이 점은 세상의 모든 학생들에게 적용된다. 학생이 음악성이 없거나 장애가 있거나 느리다고 여겨지는가?

그러고 싶은 욕구가 강할지라도 함부로 벽과 기준을 세우지 마라. 그건 학생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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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유 칼럼니스트 한국 최초 클리펠 파일 증후군 (Klippel-Feil syndrome) 피아니스트로 다년간 장애아동 및 장애청년을 대상으로 음악교육을 해왔다. 음악치유에 관심을 두어 현재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통합치유학과 겸임교수로 음악치유 강의를 진행 중이며, 한국인문예술치유연구소 대표이기도 하다. 음악의 거창함과 화려함, 치료적 접근 보다는 마음의 쉼과 힐링을 주는 역할로서 장애아동과 청년들이 어떻게 음악을 사유하고 즐길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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