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출입구 앞마당에서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요구하며 천막농성 중에 있는 가운데 지난 7월 14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탈시설을 반대한다는 청원을 시설 이용 장애인의 한 엄마가 올려 이틀 만에 동의자가 1만을 훌쩍 넘어선 상태다.

탈시설을 정부의 정책으로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주장에 대하여 그 동안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나 거주시설 운영자가 내심 반대하기는 했으나,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탈시설이 현실화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과 탈시설 후의 대안이 결여되어 장애인 당사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문제를 들어 반대 입장을 시설 이용자 부모가 나선 것이다.

그 동안 시설 운영자들의 탈시설에 대한 입장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탈시설 운동의 명분을 동의하면서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장애인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시설 운영자와 탈시설에 겉으로는 동의하는 것으로 하고 당장 현실이 탈시설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되지 못하니 시간이 지나가겠지 하고 무대응하는 것이다.

둘째는 언젠가는 탈시설이 오는 것을 어쩔 수 없겠으나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급한 소나기를 피하자는 태도다. 세 번째 태도는 탈시설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을 하지는 않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시설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탈시설 운동가 앞에서는 대화가 되지 않으니 묵비권을 행사하고, 하지만 말이 통할만한 이에게는 탈시설의 여러 가지 부작용을 들어 반대를 하는 것이다.

국민청원의 제목은 “시설퇴소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라고 되어 있다. 그 동안의 탈시설에 대한 반대 의견으로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다. 탈시설은 거주 장애인과 그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적고 있다. 퇴소하여 가족의 부양으로 되면 보호 서비스는 없어지고 오로지 가족의 부담이 되어 자살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노인 요양시설이 확충되어 가족의 부담을 해결하듯이 중증장애인은 시설이 필요하며, 장애 아동의 경우 무연고자는 성장기까지 시설이 필요할 수 있으나 어떻게 하면 시설의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시설을 운영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해 보았다.

필자에게 시설에 가야 할 형편인데 정원 축소로 입소하지 못하는 하소연을 해 온 전화가 자주 왔기 때문에 그러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는다는 전화 하소연 횟수보다는 시설을 퇴소하여 자립할만한 시설 이용자나 탈시설을 원하지만 주거나 직업 등 준비가 되지 않아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을 훨씬 더 자주 본다.

청원서에서도 필자에게 걸려온 전화와 같이 현재 탈시설 정책으로 인하여 시설 정원이 축소되어 갈 곳이 없는 장애인과 그 가족은 지금도 충분히 고통 속에 있다고 적고 있다.

탈시설 운동을 하는 입장도 무조건 시설을 없애버리자고 하는 것이 아니고, 법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예산을 확보할 수 없어 탈시설에 필요한 각종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하자고 한다.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와서 시설보다 더 좋은 환경을 누릴 수 있다면 누가 탈시설을 환영하지 않겠는가? 탈시설 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 시설의 비리를 앞세워 시설의 운영진을 퇴진시키고 새로이 구성된 이사진에 참여하여 탈시설을 추진하려 하여도 시설을 없애지 못하고 여전히 운영자로 남아 있으면서 정부에게 탈시설 지원 예산을 주면 탈시설 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탈시설의 진정성은 의심받고 있다. 이들은 탈시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운영자의 문제가 아니라 탈시설에 필요한 지역사회 정착금 등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지원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탈시설과 반탈시설로 의견이 나뉘어 지는 것은 탈시설 예산을 확충하려는 운동과 그런 환경이 마련되기 전까지 현재의 시설을 이용하려는 자와의 의견 차이이다. 이런 의견 차이가 현재의 시설도 필요하다와 시설을 없애는 대전제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장애인 현장에서의 현상으로 나타난다.

시설을 옹호하는 입장은 장애인은 서비스권이 있으며 서비스는 선택권이 있다. 다수가 탈시설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이 시설을 원한다면 강제로 탈시설시키는 것은 선택권과 복지권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탈시설을 주장하는 입장은 지역사회 생활권이나 자립권, 자유권 등의 권리를 내세운다.

필자는 탈시설 경험이 없어 두려워서 그렇지 탈시설을 하고 나면 잘 적응할 것이라는 긍정적 생각에 대해 그렇다면 일 년에 몇 달이라도 탈시설 경험을 할 수 있는 체험관이라도 운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탈시설 토론회에서 여러 차례 주장했다.

거주시설은 인권침해와 학대의 온상이라고 탈시설 운동가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감시와 처벌을 강화할 일이지 사명감을 가지고 사회가 무관심한 사각지대에 놓여 취약한 생활을 하고 있는 장애인을 위하여 희생정신으로 일하고 있는 모든 종사자를 도매금으로 인권침해의 가해자로 취급하는 것이 바로 인권침해라고 반탈시설 주장자들은 반박한다.

시설은 격리되어 있고, 개인 사생활 비밀이 보장되지 못한 집단생활을 하고 있으며, 주도적 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통제된 생활환경을 가지고 있고, 자기 선택권도 없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탈시설 이후 시설에서의 서비스 제공을 언제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으며,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안전하고 편리한 환경이 사전에 마련되어 있는가라고 반탈시설 옹호자들은 되묻는다. 의식주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참여가 보장되도록 지원체계가 탈시설지원법이 생긴다고 바로 완벽하게 작동되는가를 의심한다.

탈시설과 반탈시설의 차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이 지역사회 환경과 자립에서의 지원책 보장이 먼저냐, 시설 폐쇄가 먼저냐의 문제로 다툰다. 시설의 속성은 시설의 확장에 있어 시설이 존치되면 탈시설은 요원하다는 의견과 안전한 새로운 터전 없이 거주시설부터 없애면 어쩌란 말이냐는 의견의 차이이다.

탈시설 운동가나 반탈시설 주장자 모두가 동일하게 주장하는 것은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이다. 중간 단계로 시설의 소규모화나 민주적, 개방적 운영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탈시설 희망자는 자유의사에 의해 탈시설을 지원해야 한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탈시설 이전에 현재의 시설환경 그 이상의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 역시 모두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탈시설 운동가들은 정부가 탈시설 정책이 미비하고 추진력이 약하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정부의 탈시설에 대한 실천 의지를 의심한다. 그리고 반탈시설 옹호자들은 주로 시설 운영자나 이용자 가족으로서 왜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지느냐며 완전한 탈시설 정책이 마련되는 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시설이 존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모두가 탈시설 정책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어느 것이 먼저이냐의 차이인데, 탈시설과 반탈시설로 입장이 갈리는 것일까?

결국은 탈시설이 그러한 환경조성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것, 시설이 있는 한 탈시설은 그러한 환경 이전에 탈시설을 추구하는 것은 피해만 클 뿐이라는 차이가 있다. 전세를 사는 사람이 이사 갈 곳도 정하지 않고 살던 방을 뺄 수 없듯이 현재의 거주시설 운영은 대안이 없는 한 존속되어야 한다는 말도 일면 이해가 간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설에서 평생을 마감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역사회에서 사는 것 역시 종국적인 희망이다. 현재 시설 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철거민과 같은 위기 속에서 반탈시설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탈시설지원법에는 여러 가지 탈시설 후의 조치가 마련되겠지만, 시행에 있어 늘 문제투성이이거나 예산 부족과 시스템 부족, 지원 서비스 전달체계 미비 등으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던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는 탈시설법의 밀어붙이기식 통과는 위기라고 느끼는 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유아, 중증, 노인 장애 유형별 특성 등을 고려하여 일부 존치되어야 하는 시설도 있다는 주장과 요양 차원의 서비스도 필요하다는 주장, 그리고 탈시설 이전에 지역사회 환경과 각종 서비스와 탈시설 장애인을 위한 제도부터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주장 등이 장애인 자립생활 모델로 인한 탈시설 운동과 거세게 부딪혀 사회적 핫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탈시설 정책이 실현되더라도 이에 적응하지 못한 사각지대 장애인은 발생할 수 있으며,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달라진 것이 없다는 푸념처럼 일부의 운동이 역사를 변화시켰다는 평가와 왜 우리의 결정권을 박탈하고 오히려 시각지대로 만들었느냐는 반문이 일어날 것 같다.

이번 청원 운동을 단순히 시설 운영자들이 뒤에서 조정하는 국민청원이라고 가볍게 여길 것이 아니라 시각지대나 피해자 없는 충분한 고심과 조심스러운 접근은 탈시설정책에 필요할 것이다. 문제제기식 탈시설 주장보다 새로운 제도 도입을 주장한 선각자로서 책임을 지는 탈시설 운동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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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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