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학교 가는 길’ 포스터. ⓒ네이버 영화

2018년 당시 강서구 가양동 일대에 한방병원을 지으면, 특수학교를 설립한다며,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강서특수학교 설립반대 비대위 손동호 위원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간에 합의했던 일이 있었다.

장애인 교육권이란 거래할 수 없는 고귀한 것임에도, 한방병원과 거래대상으로 삼았기에 장애 자녀를 둔 부모는 물론 장애계가 공분했었다, 부모들은 투쟁했고, 그 결과 지금은 가양동 일대에 서진학교라는 특수학교가 들어섰다,

서진학교 설립 과정을 설명하면서 대한민국 장애인 교육 현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이 지난주 수요일 전국 극장가에 개봉됐다. 필자는 이 소식을 듣고, 영화관에 두 번 가며, 영화 내용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해하지 못한 내용도 생겼는데, 이와 관련해선 강서구 부모회 회장에게 문의하며, 궁금증을 해결했다.

서진학교 설립 과정과 관련해 영화에서 보여줬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당시 강서구에 교남학교라는 특수학교가 있었는데 거기는 한 학년에 한 반씩만 있고, 정원이 제한됐다. 강서구의 지적‧자폐성 장애 학생이 많지만, 교남학교는 이 학생들을 다 수용할 수 없기에, 학생들은 구로구에 있는 학교까지 통학해야 했다.

하지만 구로구까지 편도로만 통학시간이 1시간 반, 왕복으론 3시간 걸리고 전국의 특수학교는 포화 상태였다. 그래서 예전부터 전국장애인부모연대뿐만 아니라 강서구 장애아동 부모들 등으로부터 강서구 지역 특수학교 설립 요구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가양동 일대에 있는 공진초등학교(이하 공진초) 폐교로 인해 학교 부지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의 부모단체와 장애계,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그 부지에 특수학교를 설립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지역 주민들 가운데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애인 시설을 내 동네에 들이지 말라고 했기에, 장애인과 부모를 포함한 장애계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민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30년 전, 정부는 가양동 일대에 국내 최대 규모의 영구임대아파트를 건설했는데 그곳에는 기초생활수급자, 탈북민, 장애인과 그 가족 등 취약계층이 거주하게 됐고, 가양동 4, 5단지 주변에는 공진초가 세워졌다. 가양 4, 5단지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동과 그 주변 일반분양아파트에 거주하는 아동들은 공진초가 학군으로 되어 있었다.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2차 주민토론회'에서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고 있는 장애학부모. ⓒ에이블뉴스DB

그래서 이들이 함께 학교 다니게 됐는데, 다니다 보니 생활수준 등 여러 면에서 문제가 생겨, 일반분양아파트에 사는 분이 학군을 나눠달라는 민원이 있었다. 이에 교육부는 일반분양아파트에 사는 공진초 아동들을 다른 학교로 가게 하는 대책을 내놓는다.

결국, 공진초는 임대아파트 거주하는 가난한 학생들만 다니게 되면서 취약계층이 다니는 학교란 낙인을 받게 되었다. 낙인의 이미지로 인해 공진초에 다니던 학생들 수는 줄어들게 되고 시간이 흘러 폐교 수순을 밟게 되었다. 교육부 조치는 한 마디로 가난한 학생을 가난을 이유로 차별한 셈이었다.

게다가, 공진초 주변엔 2개의 장애인 복지관이 있었고, 교통편은 열악해 가양동 지역에 대한 낙인은 더욱 심화됐다. 그런 상황에서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부지가 생겼으니 특수학교를 짓자고 했는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게 설립 취지였단다.

이를 듣는 가양동 주민들의 입장에선 빈곤을 이유로 아동을 차별했는데 이제야 지역사회 통합을 이유로 학교를 세우자고 하니 교육청의 모순된 발언에 화가 치밀었을 게다. 가양동의 낙인찍힌 이미지에 장애인 특수학교까지 들어온다니, 장애에 대한 인식이 낙후된 우리 사회의 정황상 동네 이미지는 더욱 나빠질 것 같은 두려움에 주민들은 특수학교 설립을 강하게 반대한 것이다,

그런데 그 시점에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동의보감을 지었던 허준 선생의 일가가 가양동 지역이라는 점을 들어, 한방병원을 공진초 폐교부지에 짓자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렇게 되면, 가양동 일대에 병원이 세워지고 주변 관련 시설도 좋아지고, 교통편도 나아질 테니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주민들은 그의 공약에 귀가 솔깃했다.

그래서 특수학교 대신 한방병원을 짓자는 요구가 주민들 사이에서 일게 되었다.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여기에 질 수는 없다는 마음에,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무릎을 꿇어가며, 장애인 교육권을 지키겠다고 필사적으로 맞섰다.

여기에 허준 선생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며 동의보감을 지었다고 부모들이 타당하게 주장했고, 학교 부지는 교육청 소속의 땅이라, 애초에 한방병원을 짓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대하던 주민들은 결국엔 반대하지 않게 되었다.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에 탄력이 붙었고, 그 결과 서진학교가 설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기까지가 영화 속에 나온 서진학교 설립 과정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다.

오랜 투쟁 끝에 세워진 서울 서진학교 전경(좌측), 서진학교 마크(우측). ⓒ이원무

이 영화를 보며, 조금은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특수학교, 특수학급 증설을 주요 정책과제로 내세웠고, 서진학교 설립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인데, 사실은 통합교육 방향과는 거리가 먼 거다.

장애학생에게 알기 쉬운 자료로 바꾸는 교수수정을 하는 특수교사가 통합학급에 배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 학급에서 일반교사와 공동수업하는 제도적 장치도 없다. 개인별 교육 계획도 장애 학생 욕구를 예산에 맞추는 데다, 학생의 행동에 대한 인식 부족 등으로 인해 형식적이라, 부모들은 특수교육이나 특수학급 교육을 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통합과는 거리가 먼 것이기에 영화에서도 한 부모는 통합교육으로 가는 게 이상적이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또한, 입시 위주의 교육이라 통합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현실을 영화 속에서 토로하는 부모도 있었다. 한 부모의 토로를 듣는 순간 한 달 전 한국장애학회에서 온라인으로 개최했던 팬더믹 시대의 장애인 교육 세미나를 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한국에서 제대로 된 통합교육 하려면 입시제도 틀에 박힌 교육을 깨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한 학부모가 강력하게 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24조 교육과 관련된 일반논평에서 통합교육의 주요 특성 가운데는 장애, 인종, 종교, 성, 언어 등에 상관없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장애 등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학생을 점수 기계로만 키우는 입시교육은 대개 장애 학생이 따라가기 버겁고 자신이 존중받는단 생각이 들지 않게 돼 통합교육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 당시에는 호주의 통합교육 사례에 대한 발표도 있었다. 호주에선 처음에 분리교육이었지만 이것이 장애인, 비장애인에게 모두 좋은 방식이 아니었고 함께 어울리며 배워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배울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완전 통합으로 바뀌었다고 발표자는 언급했다. 참고로 호주에선 자폐인 교사 있고, 필요한 경우엔 공개한다.

장애인식 교육이 온라인 이수로 대신해도 될 정도로 형식적인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완전 통합교육이란 사회 인식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호주 빅토리아주의 자폐 교육전략(Autism Education Strategy) 쉬운 버전 자료 표지(좌측), 전략 시 선생님을 위한 도움이란 제목의 쉬운 설명 자료(우측). ⓒVictoria state government 홍보자료 캡처

그래서 장애인과 같이 어울리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학교‧학급 사정에 맞게 장애인식 강사가 장애 학생,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토론하는 식의 대면식 장애인식 교육을 정기적으로 자주 가져 형식적이란 지적에서 탈피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라 그게 조금은 쉽지만은 않지만 시국이 끝나면 자주 그렇게 했으면 한다. 학생이 어린 경우엔 놀이란 수단을 통해 교육하면 더 좋다고 본다.

또한, 호주 빅토리아주에서 최근 시작한 자폐 교육전략(Autism Education Strategy)과 관련해, 자폐성 장애인도 정책 입안‧실행하는 협상당사자로 인정한다고 언급했다. 이 교육전략은 호주 통합교육과도 연동된다. 생각하면 자폐성 장애인 의견을 존중하며 이를 통합교육 정책에 반영한다는 주정부 당국 의지가 묻어나오는 것이라 본다.

이는 장애인 의견이 교육 시스템 안에서 충분히 고려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일반논평 제7호 85항의 내용과 연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장애인 교육정책 시 자폐인뿐만 아니라 지적장애인의 의견을 잘 반영하지 않으며 이들이 발언할 기회를 가지는 것도 거의 드물다. 우리 사회에서 통합교육은 정말 먼 나라 얘기다.

이외에도 호주의 장애 교육에서는 수준별 교육을 하고 우리나라 입시교육처럼 문제풀이식 교육이 없다는 점, 교사들이 3개월 현장실습을 하고 다양한 일을 하는 등 전문성과 경험이 있어야 교사 취직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리고 IEP(개별화 교육 계획)도 우리나라처럼 예산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NDIS(국가장애보험)를 통해 장애 당사자의 욕구에 따라 개별적이고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욕구와 필요를 기록한 것을 가지고 예산 책정하고, 교육부에서도 학생 욕구‧필요를 보고 판단하며 예산을 준다고 한다. 이 모든 게, 다 통합교육을 모든 사람의 권리로 보는 호주 당국의 철학이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온라인 시대의 장애인 교육 세미나와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장애인을 사람으로 존중하며, 의견을 경청하는 문화를 형성하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이 있을 때만이 진정한 통합교육의 계기를 마련함을 새삼스레 다시 느낀다. 그렇지 않고선 제도, 법령을 바꾼들 우리 현실에 통합교육은 그림의 떡일 테니.

통합교육이 현실로 점점 가까이 가 있다는 걸 언제 정도면 체감할 수 있으려나? 장애인이 인간 대접을 받는 세상은 언제 오려나? 통합교육 주제에서 벗어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빈곤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조차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 언제 올까? 솔직히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답답하다.

하지만 나와 같이 생각하는 장애 학생, 장애인이 많을 거란 실낱같은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도 현실을 생각해보면 너무 순진하고 허무맹랑한 건가? 욕심인가? 그래도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아야겠단 생각에, 욕심 아닌 욕심으로 통합교육은 필수 불가결하다고 믿으며 오늘도 하루하루를 보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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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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