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on에 위치한 제네바 UN건물 입구. ⓒUnsplash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지 10여 년도 훨씬 지나갔다. 아직 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이란 과제가 남아 있지만 장애계가 힘을 합친다면 분명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줄 믿는다.

장애인권리협약을 보면 말이 추상적이고 어려워, 처음 보는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뜬구름 잡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인지에 어려움 있는 사람들은 대개 무슨 말인지 몰라, 지원자의 지원을 받으며 알기 쉽게 단어를 풀이한 다음, 자신들 삶의 경험을 종합해 쉽게 읽을 수 있는 권리협약 책을 만들게 된다. 필자도 이 작업에 참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렇게 했는데도, 그 조항의 깊은 뜻은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건지, 그리고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나온 조항인지, 아직도 잘 모르고 헷갈리는 경우가 생긴다. 심지어는 어떤 조항은 해석에 따라 쟁점 여지를 남길 수 있는 것이 있기도 하다.

정부도, 권리협약 이행 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건지 잘 모르거나 헷갈릴 때가 있고, 심지어 권리협약의 취지에 맞지 않게 조항을 해석할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장애인권리위원회는 권리협약에서 말하는 장애인 권리를 보호‧존중‧증진하기 위해 조항을 구체적으로 해석하고 당사국 조치에 대해 상세한 지침을 제공하는 일반논평을 발표하고 있다.

올해는 제27조 ‘근로와 고용(Work and Employment)’과 관련된 일반논평 초안을 위원회에서 논의한다고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 필자는 필자의 자조단체 회원과 같이 자폐인을 포함한 정신적 장애인의 근로와 고용 현실과 관련된 일반논평 서면의견서를 작성해 UN에 제출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2일에는 줌(Zoom)으로, 24일에는 유엔웹TV를 통해 장애인권리협약 제27조 일반논평 초안에 대한 세계 각국 정부와 시민단체, 장애인단체의 의견을 듣게 되었다. 코로나 시국이기에 비대면 화상 논의로 진행되었다.

장애인권리협약 제8호(27조) 일반논평 초안 논의 막바지에 장애인의무고용제의 한계에 대해 말하는 Business Disability International의 수잔 스캇 파커 CEO. ⓒUNWebtv 캡처

분리 고용을 부추기는 보호작업장을 폐지하자, 일반경쟁고용시장으로의 전이가 필요하다, 통합고용모델이 필요하다는 등 수많은 의견들이 오고 갔다. 너무도 많아 한꺼번에 다 다루기는 어려울 것 같고 몇 번에 걸쳐서 다뤄야 할 것 같다. 그중에서도, 이번엔 장애인의무고용제에 대해 필자를 설득시킨 의견 일부를 다뤄보려 한다.

일반논평 초안 논의 두 번째 날인 3월 24일에 논의는 2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시민단체, 정부, 장애인 단체 등의 의견을 다 들은 후 논의 막바지 총평 자리에서 Business Disability International이란 단체의 CEO이자 설립자인 수잔 스캇 파커(Sujan Scott Parker)여사는 장애인의무고용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냈다.

참고로 Business Disability International은 장애인과 비즈니스의 성공적, 통합적, 생산적 미래를 구축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글로벌 비즈니스 컨소시움 단체이며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다.

“25년 동안 장애인의무고용제에 대한 논의를 지켜봤고, 이런 논의에 매우 익숙해 있습니다. 장애인의무고용제를 실시하는 나라에 있는 고용주들이 장애인이라 이들을 고용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정당한 편의제공과 공정한 대우를 하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꾸고 열린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장애인들이 고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나라에서는 동등한 기회라는 메시지에 대해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강제로 고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그게 단 하나의 희망이라고, 마지막 수단이라고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에게 이 제도가 100년 이상 실패한 것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려 합니다. 잘 작동되지 않았고요. 이 제도가 21세기 제도로 업데이트될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의무고용제가 권리에 기반한 평등을 증진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서요. 평등이 우리가 펼칠 게임의 주제라면,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일반논평 초안 논의 시 Geneva UN 회의장과 수화통역사 모습. ⓒUNWebtv 캡처

이 제도는 현재 98개국에서 시행 중이라고 했고,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장애인을 일정비율 이상 고용하지 않으면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 벌금을 부과하는 등의 본질선 다름이 없다.

그런데 장애인이라 고용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정당한 편의제공 등을 하면 일할 수 있는 장애인을 고용한다는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라? 이 말을 들으면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잠깐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 하면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팽배해 있다. 또한, 안전문제, 편의시설 설치비용 등 장애인 고용 시 비용이 발생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고용주에게는 대개 장애인 고용을 권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돈이요, 하나의 시혜를 베푸는 것이란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2018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를 보면, 장애인에 관해 사회적 책임 이행 선호 방식 가운데 직접 장애인을 고용하는 방식을 선호한다는 의견은 36.9%에 불과하다. 고용주의 이런 인식이 이런 결과를 낳게 된 하나의 요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아도 고용부담금은 기껏해야 최저임금이 최대이니 장애인 고용을 시혜로 보는 인식까지 더해지면 장애인 고용 대신 벌금으로 때우게 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대기업일수록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본부 앞에 걸린 직장 내 장애인식개선교육 현수막. ⓒ이원무

또한, 고용에 관련된 정당한 편의는 장차법에선 시‧청각 장애의 경우엔 화면확대 프로그램, 수어통역자 배치 등 그나마 명시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지적, 자폐성 장애 등 정신적 장애의 경우엔 알기 쉬운 자료, 맥락에 따른 자료, 차분한 분위기 조성 등의 정당한 편의 제공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런 걸 보면 고용주들은 특히 정신적 장애인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30년 전 장애인의무고용제가 도입된 이래 장애인 고용 대신 벌금으로 때우고, 의무고용률 미달인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허다한 현실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뿌리 깊은 한 이런 현실은 앞으로도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러기에 일반논평 막바지에 스캇 파커 CEO가 한 발언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부정적인 장애인 고용 인식은 오랫동안 형성되었기에 쉽게 잘 바뀌지 않는다. 사람 가치관도 한 번 형성되고 나서 성인이 되고 나면, 바뀌는 게 정말 쉽지 않은 걸 생각하면, 사회의 이런 인식은 바꾸는 게 얼마나 어렵겠는가?

이런 현실을 뛰어넘어 장애인에 대한 인식 제고가 된다면, 고용주들은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을 더 이상 짐이나 의무로 생각하지 않고, 권리로 보게 될 것임엔 자명하다. 이러면 장애인 고용은 활발하게 될 거고, 국가는 장애인의무고용제를 통해 벌금 때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될 거다. 고용이 잘 되면 고용 목적으로 만든 장애인 직업재활기금이 줄어드는 모순된 구조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장애인의무고용제를 실시하는 기관인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원무

일하기 위해 필요한 정당한 편의제공은 개인, 장애 유형 등마다 다를 것이고, 이를 하기 위해 재정적으로 힘든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일정부분 국가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만약 대기업의 경우라면 특정한 경우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것을 빼놓고는 대개 사내유보금 등을 가지고 장애인 고용의 정당한 편의에 대한 것을 다루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래서, 여러 정황을 종합한 내 마음속에는 “우리가 왜 장애인을 고용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불현듯 떠오르게 된다. 고용주에게는 장애인의무고용제를 보며 이런 질문 하고 싶을 거다. 이 질문은 장애계 일각에서도 나오는 질문이며, 얼마 전 칼럼으로 나온 내용이기도 하다.

고용주들이 하고 싶은 이 질문에 그래도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는 설득력 있는 논리를 장애계와 장애인 당사자들은 깊게 고민하며, 기업, 공공기관 등의 상황을 고려해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교육 등의 기회를 통해 끊임없이 토론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 장애인 고용에 대한 사회 공감대는 형성되기 시작해 토대가 점점 굳건해질 테니까.

미국에서 차별받는 다운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의 운명을 뒤바꾼 C21 Project의 일부장면. 이 Project는 국회가 있는 워싱턴 DC에서 다운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이 레스토랑을 열면서 국회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WLDO Youtube 캡처

장애인 당사자들이 스스로 일 잘하는 사례들을 많이 볼 수 있도록, 체계적인 자기옹호 시스템을 국가적 차원에서 마련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전문가 의견을 대부분 반영하는 현실에서 장애인 당사자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장애인이라서 억지로 고용하는 게 아니라 장애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걷어내고 정당한 편의 제공 등의 덕에 장애인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당당하게 일할 기회가 주어지는 고용제도로의 변화를 앞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일자리가 보수도 좋은 등의 양질의 일자리여야 함은 물론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될 때 실질적 평등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길로 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애인 고용에 관해선 장애인의무고용제 대신 장애인 고용을 권리로 보는, 다시 말하면 21세기형 인권 기반 장애인 고용제도가 나오지 않겠는가? 그런 제도가 나오는 것이 지난한 과정이겠지만, 끊임없는 대화와 지혜를 모으는 과정을 꾸준히 거치다 보면 점점 구체적인 모습이 나올 거다. .

장애인의무고용제,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는 인권에 기반한 장애인 고용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며,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기 시작해야 할 때다.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니까. (다음 편에 계속)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