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뮤지컬 빨래 포스터. ⓒ김소리

최근 ‘빨래’라는 뮤지컬을 두 번째 보았다. 이 뮤지컬은 사회적 약자들이 서울에서 힘겹게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서점에서 일하는 지방에서 상경한 28세 여자와 외국인 노동자인 몽골 남자가 주인공으로 그 주변인인 돌아온 싱글 옆집여자, 폐지 주우며 40년 동안 딸을 돌보는 주인집 할머니, 그리고 그 딸의 이야기를 그린다.

뮤지컬을 처음 보았을 때는 서울에 갓 상경했을 때 보았던지라 지방에서 상경한 여자에게 크게 공감을 하였다. 지방에서 취업을 위해 서울로 와서 사회생활의 각박함과 혼자 살면서 아팠을 때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커다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평생 딸을 돌볼 수밖에 없는 주인집 할머니와 등장하지도 않는 그 딸 장애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장애인을 평생 보살펴야 되는 어머니의 마음에 대해 돌아보았다.

반면, 이번 두 번째로 뮤지컬을 보면서 사뭇 다른 감정과 객관적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장애인복지를 공부하고 장애인인권단체에서 사회복지 실습을 하면서 장애에 대한 시선은 매우 달라졌다.

장애인의 주체성과 정상화라는 개념을 배움으로써 사회적 약자로만 바라보는 미디어와 영웅적 요소로 그려지는 대중매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기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빨래’에서는 할머니의 딸이 등장하지도 않고 사회적 약자로써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졌다. ‘장애인’이라는 단어도 언급되지 않았으며, 기저귀와 알 수 없는 비명과 외침만 존재하였다.

하반신 지체장애인을 말도 못하는 장애로 그려졌으며, 지적능력이 떨어지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냄새나는 아픈 사람으로 그려졌다. 부모에 있어서 장애인 자식은 얽매여서 평생 책임져야하는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묘사로 인해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생각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존재로, 보호자가 꼭 필요하고 보호자에 있어 짐이 되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 뮤지컬을 본 관람객들은 모든 장애인은 기저귀를 하며 소통이 불가능하고 지적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

또한 장애인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될 수 있으며 동정의 대상이 된다. 최근에는 활동보조라는 제도가 있어서 부모의 도움 없이도 장애인의 자립하는데 용이하다.

현재는 장애인이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장애인의 자립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의사결정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행복과 불행 또한 느끼며 살아간다.

장애인은 무능력한 사람이 아니고 장애유형과 장애정도에 따라 비장애인과 다른 대상이다. 또한 장애인은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이다.

빨래라는 뮤지컬은 단순하게 볼 때에는 웃기고 슬픈 애잔한 뮤지컬로 보았지만 장애인의 인권적 의식을 가지고 보면 장애인을 너무 나약하고 무능한 존재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비판적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

장애를 단순히 사회적 약자의 대표로 구성하는데 있어 묘사하기에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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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리 칼럼니스트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고양이와 함께 살아간다. 뇌병변장애인의 입장에서 다른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만나 소통을 통하여 평범한 이야기를 그리고, 장애인의 시각으로 여러 미디어를 해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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