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 장애인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동료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장애아동을 키우시는 부모님들이‘나 때문에 아이가 장애인이 된 것은 아닐까?’하고 죄책감을 느끼시고 많이 괴로워 하시는 것을 보게되었다. 우리 부모님도 처음 내가 장애인이 되었을 때 이 고민으로 무척 힘들어 하셨다.

장애인 당사자는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수용하기가 어렵고,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님들은 자식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에게나 부모님에게나 장애인이 되어도 “인간의 본질과 존재성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애인이 된다고 해서 자신의 본질이나 존재성이 사라지는가?

아니다.

장애를 가졌음에도 나는 여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이며, 지성이 넘치는 존재이며, 창조성을 가진 존재이며, 기쁨이 충분한 존재이며, 강한 존재로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이다.

장애 초기 때 나 자신도 거울 앞에서 초라해진 내 모습을 보고서 큰 절망에 실의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앞으로 나에게 누군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다리가 없어지고, 하반신이 마비되어 대소변도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내 몸.나 자신조차도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진 내 몸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은 나를 지극 정성으로 간병해 주셨고, 내가 두 다리로 서기까지 내 옆에서 끊임없이 용기를 주시고 나를 응원해 주셨다. 사고 당시 내가 처참하게 다쳐서 병원에 있을 때 몰래 피눈물을 흘리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난 보았다. 그런데도 내가 보는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시지 않았던 부모님. 그 마음을 난 보았고, 나를 사랑해주시는 마음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응원해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세상에 단 한명은 있었다. 바로 부모님이었고 어린 두 동생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후에는 학교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들,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에게 나는 따뜻한 지지를 받으며 지금의 나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5년 전 설날에 모인 가족들. ⓒ주은미

그렇게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같이 마음을 나눌 수 있고, 꿈을 이야기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아무 조건없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부모님 덕분에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분명했던 나는 그 남자를 사랑 할 때도 당당할 수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몸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당당했던 나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아껴주었던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그 결실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물론 결혼의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외아들이었던 그 사람에게는 그를 무척 사랑하시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드리면서 오랫동안 기다렸다. 우리의 사랑을 이해받을 수 있도록 참 무던히도 애썼던 기억이 난다.

기다림 끝에 어렵게 얻은 결혼 승낙.. 그리고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웨딩마치.. 우리의 신혼은 가난했지만. 모든 것을 가진 듯이 행복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우리는 부모가 된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했다. 우리가 부모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너무나 부족한 신혼살림도 우리의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부모로서 마음은 우리의 아이가 커가면서 필요한 부분들을 모두 채워주고 싶었다.

“네가 어떤 아이이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우리의 사랑과 기대를 받으며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몇 년 후 둘째가 태어났을 때는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실직으로 한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힘든 시기에 가장 큰 위안을 주었던 것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였다. 덕분에 작은방에서 온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을 때도 아이들 덕분에 웃을 수 있었다.

결혼 초에 많이 들었던 주위의 걱정들이 있었다. “엄마가 장애가 있으면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는데 신체적,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아이를 낳기가 어렵다”그렇다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아이를 낳을 수도, 키울수도, 부모가 될 수도 없는 것일까? 심지어 우리 친정 부모님조차도 장애를 가진 나의 임신을 걱정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부모로서 그 아이를 사랑하고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마음이 있다면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역할은 누구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가정형편이 어렵든, 장애가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 부모로서 조금 부족해도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고 말해 드리고 싶다. 사랑의 수고는 돈의 가치로는 따질 수 없는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형편이 어려워서 원하는 것을 다 사주지 못해도, 엄마가 장애가 있어서 충분한 역할을 다해주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엄마에 대해 부끄러워하거나 크게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 그런지 아이들에게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대답은 내가 정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이었다. “아빠 엄마가 우리를 많이 사랑해 주니까 괜찮아요. 저녁을 먹으면서 웃을 수 있고, 매일 밤마다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너무 좋아요. 아빠 엄마는 100살까지 죽지 말고 내 옆에 꼭 있어야 되요!”라는 어린 아들의 말은 부모인 나에게 큰 힘이 되는 말이었고, 따듯한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다.

“당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 응원해 주는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명은 있다”라는 사실이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로서 어려움을 느낄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 어려울 때..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그런 따뜻한 선물이었다.

요즘같이 힘든 시대일수록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욱 그리울 때가 많다. “넌 그대로도 괜찮아!. 너 때문에 참 행복해!” 이렇게 따뜻한 말로 인해 마음에 용기를 얻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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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미 칼럼니스트 (사)한국교통장애인협회 교통사고예방상담센터장으로 재직중이며, 30년전 교통사고로 양하지 절단과 척수손상을 가진 장애인이 되었다. 재활학 박사 과정중이며 장애인동료상담사, 교통안전지도사, 직장내 장애인식개선교육 및 인권 강사, 발달장애인 성교육 강사로 장애인과 가족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장애인으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들의 고민과 솔직하고 당당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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