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어린시절 사진들. ⓒ장지용

지난 1일은 저의 31주년 생일이었습니다. 이미 자폐성장애인의 평균 사망연령을 훌쩍 뛰어넘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자폐성장애인의 평균 사망연령은 28.2세이기 때문이죠.

어찌 보면 자폐성장애인 치고는 장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제 자서전을 과감히 쓸 수 있게 된 명분이 자폐성장애인이 평균 사망연령을 훌쩍 뛰어넘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자폐성장애 당사자 친구들도 있지만, 비장애인 친구들도 꽤 있습니다. 개인적인 친구들도 있고, 교회 같은 공동체 활동을 같이하는 친구, 학교 동문도 있습니다. 그런 그들로부터 일제히 축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1일 업무를 하다가도 카카오톡 메시지가 계속 날라와서, 이것에 응대해주느라 업무 틈틈이 그래야 했습니다. 어쨌든 출근은 했기에 그렇습니다.

선물은 꽤 많이 받았습니다. 초코케이크, 모바일 문화상품권, 햄버거 세트 등을 선물 받았습니다. 초코케이크는 집에서 잘 나눠 먹었고, 햄버거 세트는 하필이면 제 주위에는 없는 맥도날드 브랜드로 왔기 때문에 일단 날을 잡아서 맥도날드에 좀 다녀와야 한다는 단점이 있고, 문화상품권은 어차피 살 거리가 있었던 책에다 쓰면 됩니다. 어쨌든 선물은 정산해서 쓸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선물은 어머니께서 주셨는데, 집에 돌아오니 봉투 하나가 있었고, “생일 축하, 아들”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현금 5만 원이 있었습니다. 가장 놀라운 선물이었습니다.

축하 메시지에서 축하뿐만 아니라, 요즘의 코로나19 창궐로 인해 코로나19에 유의해달라는 메시지도 아울러 전달되었습니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로 인해 이러한 불안정성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 이후도 볼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생일 1주일 뒤, 아는 비장애인 동생의 생일이었습니다. 그 동생은 대학 졸업반이라, 결국 ‘라떼’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라떼’가 되었다”라는 뜻으로 생일 선물을 아이스 카페 라떼 기프티콘을 보내줬습니다. 그 동생은 놀라워하면서, 감동했다고 좋아해 줬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선물을 준 것입니다.

그보다 조금 전이었지만, 2015년에 제 글에서 언급했던 미국인 친구 윈터 레이먼드씨도 제 생일과 비슷한 시점에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그녀는 이제 40대입니다. 페이스북에 “30대의 마지막을 보내면서”라고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미국인의 축하 속에서도 “내가 30대가 되었는데 너는 40대가 되었구나!”라고 영어로 댓글을 달아줬습니다. 어쨌든 읽었나 봅니다. 그녀가 대기업 소속 변호사였기 때문에 제 댓글을 읽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미국에 있으니 당연히 태평양을 마주 보고 있으므로 제가 얼굴 마주 볼 수 없으니 말입니다. 유일하게 변화한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이직했다는 것과 그녀는 결혼했다는 사실 빼고는 없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대면 식사등이 없어서 기념 식사나 친구들과의 회식은 불가능했습니다만, 어떻게든 축하 메시지를 오가게 하려는 사람들의 문화는 앞으로도 어떻게든 살아남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장애인 쪽에서도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았지만, 제 주위에 있는 비장애인 친구들도 많은 축하를 보내왔습니다. 물론 그들은 제가 자폐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고 축하를 보내왔습니다.

이제 장애인들도 장애를 이해해준다면야 비장애인과도 과감히 소통하고 친구할 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장애를 이해해준다면야, 얼마든지 자신의 삶을 나누고 행복을 즐길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장애는 그렇게 벽이 되기에는 좀 그런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들도 자신의 장애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만 있다면, 과감히 비장애인들과도 소통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그러한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이유는 그래야 작은 인식개선과 인지제고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드립니다.

작은 연결이 이어져서 큰 연결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장애인식개선은 거창하게 인식개선교육 그런 것도 필요하겠지만, 장애인 개개인도 이렇게 접촉면을 넓혀가면서 작게 그 틈을 벌려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소한 생일 축하 메시지는 당연히 있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장애 관련 논의를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게 할 수 있고, 그러한 접촉면이 넓어지면 다른 장애 관련 이슈를 그들에게도 가까이 할 수 있게 됩니다.

장애인 여러분들도 이제 과감히 비장애인과 소통하고 친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시도해봅시다. 그것이 작은 인식개선이고, 내 친구라는 개인적 인식을 넘어 그들이 장애를 옹호할 수 있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접촉면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작은 접촉면이 생기면 그 접촉면을 따라 더 넓어지는 것이 장애인식의 새로운 지평이기에 그렇습니다. 생일은 그 하루의 사례였을 뿐, 다른 장애-비장애간 소통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작은 연결이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 친구를, 비장애인은 장애인 친구를 사귀게 되면 그들에게서 엄청난 변화가 올 것입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 즉 광화문글판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현종님의 <방문객>에서 가져왔던, 그 글판에 적혔던 그 구절을 읽어드리며 정리하겠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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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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