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한국장애인연맹 지원을 받아 1회 UN CRPD NGO 모니터링에 참가한 모습. ⓒ스위스 제네바 UN본부

에이블뉴스를 통해 독자들에게 국내외 장애관련 기술에 대한 기사를 송고한 것이 12년전 일이다. 그리고 8년전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대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강의와 연구에 집중하느라 그동안 독자들과 마주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지난 세월 많은 재활 분야, 보조공학 분야 전공자들이 내가 쓴 글을 스크랩 해 가며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온라인 상의 교수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식 나눔으로 생각하고 나를 다시 에이블 뉴스 칼럼리스트로 이끌었다.

앞으로 에이블뉴스 칼럼을 통해 4차산업 혁명과 더불어 첨단기술이 가져올 장애인의 삶의 변화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고 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기술 개발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함께 소통하고자 한다.

우선 칼럼의 주제를 첨단기술과 장애학으로 정했다. 무엇보다 칼럼의 경우 단순한 정보 제공이 아닌 나의 생각과 철학을 글 속에 담아야 했기 때문에 장애학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첨단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정해 보았다.

장애학은 장애를 정의하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요인을 조사하고 이론화하는 학문 분야이다.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학자, 활동가 및 실무자들은 장애의 사회적 모델 및 의학적 모델 안에서 논쟁을 전개해 왔다.

장애의 의료적 모델

의료적 모델은 질병, 외상 또는 다른 건강 상태에 의해 직접적으로 야기되는 사람의 문제로 보는 장애로 제시되므로 전문가가 개별 치료의 형태로 제공하는 지속적인 의료가 필요하다고 본다. 의료적 모델에서 장애 관리는 개인의 자기조절과 행동 변화를 목표로 한다

의료적 모델에서 의료는 주요 쟁점으로 간주되며, 정치적 차원에서 주요 대응은 의료 정책을 수정하거나 개혁하는 것이다.

장애의 사회 모델

장애의 사회적 모델은 "장애"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창안 된 문제와 개인이 사회에 완전히 통합되는 문제로 본다.

이 모델에서 장애는 개인의 속성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환경에 의해 생성되는 복잡한 조건 으로 본다.

그러므로 문제의 관리는 사회적 행동을 필요로 하며 사회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들의 완전한 참여를 위해 필요한 환경의 변화를 이루기 위한 사회 전체가 가지는 공동 책임이라 여긴다.

이 문제는 문화적 이데올로기 적이며 개인, 공동체 및 대규모 사회 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한 평등한 접근은 인권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장애학은 여성학과 같이 소수자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기 위한 학문적인 이론, 의견, 방법론적인 토의를 토대로 만들어진 학문 분야로 간주되었다.

장애학은 장애인의 실제 경험과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장애학이란 분야와 장애학이란 용어가 일반인들에게 아직 생소하기만 하다.

결국 장애학이 추구하는 바는 장애인의 목소리와 의견을 바탕으로한 정책, 제도, 사회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중요한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함이다.

근대화시대에서는 이와 같은 장애학에서 주관적인 관점을 중요시 하였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개인의 존재는 개인이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고 만드는지에 달려있다는 주관적인 사상이 더욱 존중받게 되었다.

탈근대화 시대에 접어들어 우리는 장애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것이 한 개인의 질병적, 차별적 문제가 아닌 사회가 만들어낸 소수자에 대한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처우라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다. 개인은 더 이상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 가치보다는 주어진 환경과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성격에 따라 개인적 특성을 잃게 되고 집단화 되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과 산업화로 인간의 생산력과 노동력이 중요한 잣대가 되었고 상대적으로 신체적, 정신적 기능의 열약함으로 인해 그 값어치가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장애인은 사회적인 부담과 돌봐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위한 기술, 보조공학(Assistive Technology)은 장애인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개인의 일상생활 기능의 저하를 기술의 도움으로 보완하고 보조할 수 있게 되었고 장애인은 비장애인들과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학에서는 그동안 장애인의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장애인권 운동이나 주류 문화에 통합을 강조하는 측면으로 접근해 온 것이 사실이다.

장애인 개인의 당사자 주의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자기 결정력과 자기 강화 훈련이 이를 뒷받침 한다. 하지만 이와 달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장애인을 신체적, 생물학적 결손이나 몸이 불편한 손상(Impaired)된 상태의 사람들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촉각을 이용해 점자를 읽을 수 있고, 수화를 통해 또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기 보다는 그들은 다른 존재이고 다른수단을 이용하는 다른 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탈근대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수십년간 장애학 분야에서는 문헌상, 미디어상 장애에 대한 차별과 사회적 편견을 해결하기 위한 용어의 정비와 행동에 대하여 강조해 왔다. 이러한 문헌적, 문맥상의 장애인의 권리 찾기는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장애인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뒷받침 하였고 수많은 문헌들을 만들어 냈지만 실제 장애인들에게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장애에 대한 해석과 이론적 적립역시 기술의 개발과 발전에 있어서도 장애에 대한 관점과 이론이 중요시 되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기술개발과 제품개발에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이 역시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 목적을 달리 한다.

장애인을 질병을 가진 대상으로 인식을 할 때 사회는 치료를 위한 의학적 모델(Medical Model)에 기인한 의료기기의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을 질병을 가진 대상이 아닌 사회적 참여와 활동의 제한을 가진 소수자 고립된 상태로 여길 때 우리는 사회적 모델(Social Model)을 통한 기능적, 일상생활을 위한 기술개발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노화로 인해 기능의 저하를 가지게 된 노인을 장애인으로 볼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토의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에게 필요한 의료기기 역시 이것이 치유를 목적으로 한 것인지 일상생활을 돕기 위한 목적인 것인지 분명하지 않을 수가 있다.

장애인들이 끊임없이 병원을 찾고 의료기기를 사용하여 의료적 재활에 관심을 가질 때 장애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장애를 벗어 나기 위함일까? 그들은 끊임없이 장애의 상태에서 벗어나 다수의 비장애인들이 누리는 일반인들의 삶과 평범함을 원하는지 진정 사회 참여를 통한 장애 해방에 두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우리는 기술의 개발과 사용에 있어서도 Medical Model과 Social Model의 차이와 관점이 다름을 살펴 보았다. 하지만 이 각각의 모델이 장애인 또는 장애학에 있어서 주류 이론이나 유일한 이론적 모델이 될수 만은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탈근대화 모델이다. ‘Post-Modern Model’이란 매일의 일상속에서 개인의 독특한 삶과 개성을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복잡하고 하루하루 변화가 빠른 우리 사회에서 한가지의 모습이나 형평성을 강조할 수 많은 없다. 사람들이 변하고 있다. 자신의 개성을 더 중요시 하고 있다. 정해진 규칙과 제도를 벗어나서 보다 많은 자유를 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간의 독특한 개성의 강조가 장애학에 있어서 기술의 필요성 또한 잘 뒷받침 해 주고 있다.

장애인을 위한 보조공학이나 보조기술 개발에서 한가지의 기술이 장애인 모두에게 적용되기란 힘들다. 장애인 개개인의 삶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의 일상생활을 이해해야 하고 그들이 필요한 기능을 보조하기 위한 기술 및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장애인의 개성이 중요시 되고 있다.

이것을 현대에서는 맞춤식 기술 개발, 맞춤식 제품 디자인이라고 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와 같은 개인화된, 개별의 맞춤식 기술개발에는 더 많은 비용과 전문성이 요구되어 진다. 결국 사회적으로 자본의 형성과 직업활동에 많은 제약을 가지게 되는 장애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제품을 구입하고 필요로 하는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어려움과 경제적 빈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탈근대화를 근대화 시대에 중요시 되었던 ‘생산성’을 기술을 통한 ‘정보력’으로 뒷받침 할 것이라고 보았다.

근대화 시대에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었던 기준이 이제는 보다 다양한 시각의 장애인들만의 개성과 차이로 인식 할 것이다. 더 많은 생산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더 많은 정보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정보접근성의 확보이다. 많은 장애인들 중 시각, 청각 등 감각기관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들은 타 장애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의 접근성에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통신 보조기구가 만들어져 있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 9조와 21조에서도 이와 관련된 정보접근권에 대한 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감각장애인들의 정보접근권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신체적 기능의 향상과 관련된 다양한 기술로부터 장애인이 누릴 수 있는 능력과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강력하다.

장애인을 위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일반인들의 보편적인 기술로 사용되면서 이에 대한 장애인만의 독특한 기회를 빼앗기게 되는 또 다른 차별이 양상되고 있다.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기술은 제품의 가격을 낮추게 되어 장애인들의 사용자로서의 구매력을 보다 완화하게 된다. 하지만 장애인이 주로 사용했던 기술을 일반인들이 사용하게 된다면 결국에 장애인들에게 돌아가는 혜택과 편리함이 더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한정된 제원과 기회의 측면에서 언급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 있으나 이를 임산부가 같이 사용하게 될 때 장애인은 그만큼 주차에 대한 혜택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공항에서는 장애인을 위해 기다리지 않고 빠른 수속을 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이와 같은 장애인을 위한 혜택을 몸이 불편하다고 스스로 말하는 노인 또는 일반인 들에게까지 개방하게 되었고 공항에 휠체어를 미는 공학 직원의 긴 줄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혜택과 서비스가 남용되는 것처럼 장애인을 위한 기술과 제품 또한 그러하다.

캐나다의 장애학자 그레고 울브링(Gregor Wolbring)은 에이블리즘을 강조하였다. 장애가 더 이상 할수 없는 것에 초점을 두기 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두고 그것을 기술로 승화 시킬 때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더 원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비장애인 보다 더 빨리 이동 가능하고 비 장애인보다 더 큰 무게의 물건을 옮길 수 있게 되며 비장애인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저장 및 이동 가능하다.

이와 같은 에이블리즘적인 관점에서도 역시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고려해볼 만한 장애에 대한 개성 그리고 장애의 독특함을 더 중요시 할 수 있겠다.

결국 기술은 장애인의 삶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기술은 장애의 인식을 달리 할 것이다. 과거 힘없고 굶주리고 차별받던 장애인의 모습이 첨단 장비로 무장한 일반인 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갖춘 존재로 인식 된다면 로봇이 세상에 활용되기 이전에 장애인들이 보조기술과 보조기기를 활용해 사회 이곳 저곳에서 쓰임을 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장애학에서도 이러한 기술적 패러다임에 대한 인식과 의미에 대해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모색할 것이다. 그래서 연구자 및 공학자들 역시 이러한 장애학의 패러다음에 맞추어 이론적 또는 설계의 철학으로 활용될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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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근 칼럼니스트 현재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에 있으며 작업치료사, 보조공학사로서 장애인을 위한 기술을 개발, 연구하고 있다. 4차산업 혁명과 함께 앞으로 다가올 장애인의 일상생활 변화와 이와 연관된 첨단기술을 장애학 관점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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