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4월이면 많은 일들이 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고, 4월 16일은 세월호가 침몰되어 많은 아이들이 바다에 수장된 날이다.

장애인들은 장애인들대로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 슬픈 날이고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아이들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과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기도, 슬퍼하기도 하는 날이다. 4월은 슬프고 잔인한 달이다.

오래전 처음으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가 있다. 집 근처의 장애인 센터를 알게 되어 외부활동을 시작한 친구이다. 평범한 일상은 친구들도 만나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간다. 그 친구는 학교를 다니다 걷지 못하게 되어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줄곧 집에만 있었다고 한다. 센터에서 집으로 찾아갔었다. 전동휠체어가 있지만 마땅히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집에 세워만 두고 있었다. 센터에서는 자조모임 활동에 참여하였다. 이듬해에는 활동가로 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착실하게 일만 했다 할 수는 없다. 부모님과 집에 있는 동안 할 수 없었던 술을 배웠고, 마음에 두었던 사람에게 고백도 해보았다. 휠체어가 고장 나 길에 서 보기도 하고, 실연당했다고 울기도 했다.

부모님이나 여동생에게 장남으로, 오빠로의 역할을 하고 싶어 했다. 얼마 되지 않는 활동비로 적금도 들고, 부모님과 여동생 용돈을 줬다. 그래서 항상 늘 부족하고 가난했다. 그런데도 항상 좋아했다.

최중증장애인이었지만 가족이 있을 경우 활동지원 시간이 100시간을 넘지 못하던 시기였다. 비가 오는 날에도 외부 일정이 있으면 나오고 싶어 했다. 얼마 전 들은 이야기로는 가족들이 씻기거나 신변처리를 도울 때에는 한참을 기다리게 하거나 세면대에 조심스럽지 않게 머리를 쿵쿵 찌어 가며 씻겼다고 한다.

처음엔 감기였다고 했다. 기침을 하기에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였는데 좀 오래 가더라고 했다. 병원을 갔는데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입원을 하고 며칠... 중환자실로 옮긴다고 했다.

나를 돕던 활동지원사 분이 친구를 도와주셔서 가끔 연락을 줄 수 있었다. 괜찮을 거다. 살고 싶어 하는 의지가 있으니 살거다라고 했다.

“선생님... 무서워요.”

무섭다고 했다. 전에 같은 장애를 가진 활동가가 비슷한 경로로 입원하고 생각지도 못하게 돌아오지 못한 걸 봤다고. 그 이야기를 듣는데 아무 소리도 할 수가 없었다.

좀 더 자주 내려갔어야 했다. 후회가 되었다. 더 자주 전화하고, 더 자주 웃어 주고, 더 자주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그랬으면 이렇게 오랜 시간, 받지 않는 전화를 걸어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갔어. 내려온나.”

무섭다고 했었던 하루 뒤 보내온 문자였다. 쉽지 않은 삶을 친구는 그러고 가버린 것이다. 친구의 가는 길을 배웅해야 했다. 순천의 4월 햇살은 서울과는 달라 조금 더운 듯 했다. 햇살이 뜨거워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갔다.

친구는 남자다. 일 끝나면 종종 술을 마셨다. 활동지원 시간이 짧아 밤늦게까지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의 도움 없이 술을 마셨다. 행복했다. 아니,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누군가 우릴 불쌍해하는 것으로부터 무관심할 수 있었으니 불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지 않은 순간 함께였던 친구였다.

서울에 와서도 그 친구로부터 전화로, 문자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친구의 위로는 내게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돼주었다. ‘누나’로 시작한 시시한 말들이 이리도 그리워질 줄은 몰랐다.

친구는 나에게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늘 누군가에게 힘이 되길 바랬다. 적금 부은 돈으로 여동생 사고 친 걸 해결해 주기도 했다. 자기 하고 싶은 거 안하고 얼마 되지 않는 급여를 모았을 친구가 가여웠다.

“받았으니 주자.”

친구 SNS 대화명이다. 뭘 그리 많이 받은 건지, 다 주었다. 다 주고 갔다.

올해도 4월이 가고 있다. 다른 해보다 더더욱 느리고 힘들게 흐르는 시간 속에 친구가 그립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이들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람들 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고자 했던 친구는 이제 없다. 아직은 그리워 받지 않을 것을 알면서 전화를 걸어본다. 많은 사람들이 4. 20을 기억하고, 이제 4. 16을 기억할 것이다. 친구의 일과 함께 같이 아파하고 함께해 줄 것을 외친다.

2014년 4월 어느 날의 이야기를 사람들도 함께 기억해 주길 바란다. 받았으니 주자는 친구의 마음을 기억하고 모든 이의 남은 삶이 따스함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나 또한 받은 게 많으니 나눠 주고 살아야 함을 늘 떠올리며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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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주 칼럼니스트 현재 삼육대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 장애 전반, 발달장애 지원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 중이다. 장애인 당사자로 당사자 지원에서, 일상생활에서 장애로 인해 느꼈던 것들을 전반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체장애인으로 보여지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어 일상생활 자체가 글감이 될 수 있어 나는 좋은 칼럼니스트의 조건을 갖고 있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 거의 매일 쓰고 있다. 전동휠체어를 매개로 생각하고 지나다니다 본 것들에 대해, 들은 것, 경험한 것들에 대해 쓴다. 전동휠체어 위에서의 일상, 지체장애인으로의 삶에 대해 꿈틀꿈틀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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