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화장하고 머리를 손질하고 멋지게 옷을 코디하는 이유는 남에게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이러한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욕구가 달리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각장애로 인해 머리 손질이나 화장이 쉽지 않고 패션에 대한 감각도 없어서 대충 꾸밀 수밖에 없다는 편견이 존재한다.

2018년 여름 하상복지관과 함께 이러한 편견을 깨기 위해 7명의 시각장애인과 세븐윙즈(Seven Wings)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한창 꾸미길 좋아하는 청년들은 화장전문가와 상담 통해 ‘나에게 맞는 화장품과 화장법’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었고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뛰어난 손놀림으로 머리 손질을 해나갔다.

가족이 정해주는 옷을 살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은 전문 코디의 도움으로 다양한 옷을 입어보며 자기 스타일을 찾아갔다. 그리고 세븐윙즈 프로젝트의 마지막은 멋지게 꾸민 7명의 친구들에게 프로젝트 이름대로 날개를 달아주는 프로필 촬영이었다.

8년간의 장애인 사진 촬영 경험을 가진 사진가는 지적장애도 아니고 신체장애도 아닌 시각장애인 촬영은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고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은 촬영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무너져갔다.

선글라스를 쓴 첫 번째 친구와의 촬영은 예상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는 등 다양한 자세로 여러 컨셉의 프로필 촬영을 마쳤다. 두 번째 친구 역시 수줍음이 많아 웃는 표정을 자주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했다. 눈동자에 힘이 없었다. 시각 장애로 인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겼다.

시각장애인 프로필 촬영 모습. ⓒ나종민

문제는 세 번째 친구와의 촬영에서부터 생겼다. 카메라를 보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눈을 떠서 나를 봐요”라고 외쳐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알고 보니 카메라를 안 보는 것이 아니라 못 보는 것이었다. 예쁜 그녀의 얼굴과 따로 노는 눈동자를 그대로 촬영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눈의 움직임을 멈추려 노력했고 사진가는 눈동자가 가운데에 오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시각장애인 프로필 촬영 모습. ⓒ나종민

멋진 프로필 사진. ⓒ나종민

그리고 진짜 본선은 그 후부터였다.

두 눈동자가 따로 움직이는 친구,

요구하는 자세(팔짱, 의자에 앉아 다리 꼬기 등)가 불가능한 친구,

멋진 의상은 입었지만 높은 구두를 처음 신어 서 있기가 힘든 친구까지

자신감을 잃어가던 사진가는 결국 어쩔 수 없다고 자신과 타협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프로젝트의 의미가 떠올랐다. 멋진 시각장애인을 세상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보여주는 프로젝트이고 그 결과물이 사진인데 여기서 타협할 수는 없었다.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한 자세를 찾아내고 어색해하는 모델들에게 잘한다고 치켜세웠다. 사진가의 자신감 회복이 모델에게는 편안함으로 이어지며 순조롭게 촬영이 진행되었고 단체 사진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누구나 멋질 권리가 있다”

세븐윙즈 프로그램에 함께하며 의상 코디를 지원한 비영리 사단법인 열린 옷장의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이 시각장애인에게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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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민 칼럼니스트 외국계 지사장을 그만두고 취미로 사진을 찍다 장애아이 어머님의 한마디에 비영리 사단법인 바라봄 사진관을 설립하고 8년간 대표를 맡고 있는 착한 사진가. 지난 10년간 장애인분들을 위한 사진을 찍으며 만났던 사람들과 에피소드를 사진 중심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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