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쓴 사람과 바이러스. @pixabay

이름을 듣도 보도 못했던 감염병이 온 나라, 온 세계를 휘젓고 있다. 코로나19(COVID-19)는 인류를 미증유(未曾有)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일찍이 겪어왔던 산업사회와 정보사회는 내가 모르면 그만이고 내가 알고자 하지 않으면 그만인 사회였다. 그걸 모르고 지나간들 내 생명에는 큰 위협은 없었다. 다만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을 뿐.

그러나 지금의 코로나19의 세계적 이슈는 이전의 그 상황들과 양상이 매우 다르다 모르면 위험하고 주의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심각한 상황이란 것을 여러 매체로부터 접할 때마다 ‘내가 그 대상이 되면 어떡하지?’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발생 초기에는 일부지역 일부 특별한 종교를 가진 사람들만의 이야기라 생각했으나 점점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정신이 번쩍 뜨였다. 갑갑해도 외출 시 마스크를 챙기고 드나들며 알코올 손소독제와 손 씻기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사회적 거리두기’도 매우 열심히 실천 중이다.

나는 척수장애인 당사자로서 전문상담가이기도 하지만, 본래 직업은 목사다. 과거와 달리 목사라는 직업을 말하는 것이 ‘커밍아웃’ 수준으로 어려운 일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다. 사람이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는데 종교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인류를 사랑했던 그 마음으로 내담자를 만나려고 늘 노력한다. 사랑은 인류보편이니까.

여튼 내가 다니는 교회도 정부시책에 협조하며 사랑하는 교인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온라인(On-Line)예배로 전환한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교회는 ‘사회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로 느껴지지 않도록 조금 더 세심함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집에만 있을 그들을 위해 ‘필요한 읽을거리’와 ‘먹을거리’를 동봉하여 집으로 소포를 보내주기도 했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는 요즘에 인간적인 거리를 두지 않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하지만 누군가 이야기한 것처럼 ‘Out of sight Out of mind(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가 현실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앞서 간단히 밝힌 것처럼 물리적으로 할 일은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일말의 책임감이라는 배는 채웠지만 마음 한 구석은 늘 허기지다. 언제부터인가 SNS를 통한 사람들과의 일상의 안부도 영상으로 전해지는 응원의 이야기도 공허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즈음에 알았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와 우울한 기분을 나타내는 ‘블루(blue)’를 합성하여 만든 신조어다. 메디컬 투데이 박정은의 기고 글(“코로나 블루 우울감 호소하는 당신의 건강은?” /2020.04.07)에 따르면 원래는 정신의학에서 포스트파튬 블루(Postpartum Blue)라는 용어로 사용되었었는데 이는 산모들이 출산 이후 경험하는 우울감을 칭하는 말로서,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국민들이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원을 유추하고 있다.

처음 코로나19 시작 무렵에는 시시로 때때로 울리는 재난문자를 꼼꼼히 읽으며 이토록 친절한 대한민국 의료체계에 감사하고 필요한 활동지침을 지키며, 마스크 대란 앞에서는 마스크 한 개를 1주일간 쓰면서도 감사히 보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제는 휴대폰 맨 위에 빨간 스피커가 보여도 내 지역이 아니면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고, 날마다 오르내리는 숫자가 의미 없는 그래프로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 또한 ‘코로나 블루(corona blue)’.

왜 더 치밀하게 관계하고 치밀하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은데도 마음 한 구석의 허전함을 채울 수 없을까? 앞서 인용한 박정은의 글에 따르면, 이런 감정은 의학적인 질병이기보다는 사회현상에 따른 심리적 증상이라고 말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증상을 적지 않은 국민들이 가지고 있고 앞으로 이 시기가 지나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호소하게 될 심리적 증상 중 하나로 발전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나이든 어르신의 감염은 자녀 자손에게 못할 짓이라 여겨 힘들어 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회한이 남게 된다.

필자는 코로나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는 매일 오전 재활병원에서 상지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병행해 왔다. 사고 후, 근 10년의 시간 동안 해오던 평일 아침의 일상을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확진자로 인해 이 재활병원에서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외래환자의 출입을 전면 차단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벌써 한 달이 넘도록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지 못했다. 또한 필자는 4년째 매주 재활병원을 방문하여 장애발생초기 중도 척수손상장애인을 만남 상담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병원의 문을 열어주는 곳도 한 곳밖에 없다. 병원 방문을 허락지 않는 사유는 감염의 위험이다. 앞서 출입이 가능한 한 곳도 들어갈 때 체온 및 방문사유와 방문접견 장소도 정해져 있다.

장애인들에게 외부로부터 물리적 고립은 필연적으로 정서적 고립으로 이어진다. 또한 이처럼 물리적, 정서적 고립은 관계의 단절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 발표에 따르면 자칫하면 코로나19로 확진자 수가 9만 명까지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이 숫자에 얼마만큼의 장애인 숫자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거동이 가능하거나 의사소통이 가능한 비장애인 확진자와 거동이 자유롭지 못하거나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장애인이 확진이 되고 격리가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어쩌면 이미 발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기에 번뜩이는 것이 지혜라 했던가! 정서적으로 이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사람들은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체육공원 축구장을 빌려 자동차 극장을 열어주고, 공연 장비를 갖춘 이동차량이 마을과 아파트를 이동하며 ‘베란다 음악회’를 개최한다. 또 독거어르신들을 위해 ‘희망백신 콩나물 기르기 키트’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기사를 통해 접했다.

바야흐로 ‘코로나시대’를 살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어쩌면 눈물겨운 투쟁과도 같다. 그리고 이 투쟁의 시기는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지 않는다. 비장애인들의 삶처럼 장애인의 삶도 같은 욕구를 지니고 산다. 경향신문 반기웅 기자의 글(“한국사회 잠식한 코로나 블루”/2020.03.28.)에 따르면 국가적 재난에 가까운 감염병 상황하에서 ‘코로나 블루’는 지역사회 깊숙이 파고들었고 그 흐름은 장애인과 노인, 저임금노동자들과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에 더 빨리 스며들고 치명적으로 다가온다고 밝혔다.

또한 전준희 화성시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의 말은 인용하면서 “노인들은 정보에서 소외되다보니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조용히 사태를 넘겨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전했다.

어디 노인뿐이랴! 방역당국과 병원과 지역사회에서는 감염환자의 숫자를 줄이는 노력과 동시에 이제부터는 국민들 전반에 깔려있는 코로나 피로감과 우울감 회복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더불어 정서적 표현이 서툴거나 원활치 않은 장애인들의 상황까지 살피는 세심한 정책도 이어가기를 희망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로 느껴지지 않을 그런 일상으로 돌아갈 사람들 범위에는 장애인도 예외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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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구 칼럼니스트 한남대학교 내 한남장애인심리상담센터 부센터장으로 대학과 병원, 복지기관 등에서 강의, 집단 및 개인상담,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2009년 심장마비 후 척수경색으로 인해 척수손상 장애인이 되었으나 ‘비갠 뒤 푸르름은 그 의미를 더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오늘도 즐겁게 살고 있다. 교육학과 상담학 박사과정을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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