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쩌다 암살클럽 스틸컷. ⓒ네이버영화

초등학교 때 반공교육을 들으며 자랐다. 주기적으로 글짓기 표어 포스터대회를 열어 반공의식을 높였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공산당이 얼마나 나쁜지 설명해주며 좋은 작품이 나오길 독려해 주었다.

선생님 말씀을 새겨들은 아이는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당시의 아이에겐 전쟁이 아니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학교에서 반공교육을 받은 날은 쉽게 잠들지 못하고 고민으로 뒤척였다. 원수같은 공산당이 없어져야 맘 놓고 살 수 있을거 같았는데 이 원수들을 어떻게 없앨까?

부모님도 동생들도 전쟁으로 헤어질 순 없었다. 오랜 시간 고민하다 떠 오른 건 적의 대장을 없애는 거였다. 대장만 없으면 아래 사람들은 모두 항복하고 우리 국민이 될 것이다.

어떻게 처치하면 좋을까? 그때 생각한 건 투명 우주복이었다. 머리까지 헬멧이 달린 우주복을 입으면 보이지 않게 되는 옷이다.

그걸 입고 날아가서 적의 대장을 처리하는 식이었다. 그를 암살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고 소원이었다. 어떻게 처리할지 처리한 뒤엔 어떻게 빠져 나올지는 미완인채로 고민만 하다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밑도끝도 이유도 없이 원수로 여기던 어린 날의 원수의 나라는 그의 아들에 아들의 국가가 되었다. 그렇게 열렬히 누군가 지구 상에서 사라지기를 바란 적은 그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교육의 힘은 참으로 놀라웠다.

영화 어쩌다 암살클럽 포스터. ⓒ네이버영화

영화 '어쩌다 암살클럽'에서 졸리와 바바는 재활센터에서 같은 방을 쓰는 지체장애인이다.

졸리는 하반신 마비에 척추가 휘어 일정시간마다 누워 통증을 가라 앉히기 위해 휴식을 취해줘야 한다.

바바는 비틀걸음이지만 잘도 걷는다. 틈만 나면 겨드랑이에 방향 스프레이를 뿌린다. 언제 어디서 이상형의 여자를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졸리는 휘어진 척추를 바로 잡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장기 손상으로 2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엄청난 수술비 때문에 엄두를 못내고 있다.

두 사람은 만화를 그리며 언젠가 그들의 책이 출판 되길 꿈꾸고 있다. 그래도 청춘에게 재활센터의 일상이란 지루하다.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소화기를 뿌리며 노는 것도 그들에겐 재미있는 일이다.

한참을 하얀 연기에 휩싸여 키득대고 있을 때, 홀연히 나타난 한 남자가 느닷없이 두사람을 마구 때렸다. 누군가는 이 소화기가 없어 죽어갔다면서.

루퍼소브는 3년전에 소방관으로 일하다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단다. 애인도 떠나고 직장도 잃고 몸도 망가지고 그는 두려운 게 없었다. 내일도 없었다.

졸리와 바바는 강렬한 인상을 준 첫만남으로 루퍼소브를 두려워하면서도 알수 없는 매력에 이끌렸다.

그는 휠체어를 매단 채 턱걸이를 하는 괴력의 소유자였다. 일을 좀 도와달라는 부탁에 바바와 졸리가 운전해 간 곳에서 루퍼소브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는 킬러였다. 상대들은 수상한 거래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나올거라고는 짐작도 못했다가 허를 찔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일차 임무를 성공하자 계속 일이 이어졌다. 다음은 광장에서 상대를 처치해야 했다. 광장은 노출되어 있고 사람들도 많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바비가 낸 아이디어는 비둘기 모이 주는 사람들! 휠체어를 탄 세사람이 흩어져 한가롭게 비둘기 먹이를 주고 있다. 경계심 없는 비둘기는 루퍼소브의 무릎에 앉아 먹이를 쫀다. 아무도 그들을 수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다.

암살하기 좋은 순간이다. 비둘이 먹이 봉지로 가린 루퍼소브의 총은 정확하게 상대의 심장을 맞혔다.

탕!

넓은 광장을 뒤흔드는 총성. 아수라장의 광장에서 상대의 보디가드들은 우왕좌왕 댈 뿐 총알이 날아온 곳을 찿지 못했다. 현장에선 휠체어 세 대가 유유히 사라진다.

그날 밤 그들은 센터의 물리치료사 여선생들과 루퍼소브의 집에서 임무완성 축하파티를 열었다.

은은한 빛아래 스미는 음악, 휠체어 무릎에 파트너를 앉히고 바퀴를 이리저리 음악에 맞춰 굴린다.

멋진 부르스다.

영화 어쩌다 암살클럽 스틸컷. ⓒ네이버영화

얼떨결에 암살 일원이 된 졸리와 바바는 더 깊숙히 그 세계로 빠져드는데...

그들의 암살클럽은 보스의 배신으로 위기에 빠지게 된다. 루퍼소브는자신을 희생해 보스를 처치했다.

이상은 졸리와 바바의 만화였다.

"휠체어 암살자"

아마추어 만화대회에서 호평을 받으며 출간하기로 했다.

졸리는 어릴때 엄마와 이혼하고 재혼한 아빠를 원망해왔다. 장애아이라고 버린거라 생각해왔는데 아빠는 멀리서도 졸리에 대한 사랑은 여전했다. 졸리의 수술비를 대주었다.

원망속에서도 그리워 하고 사랑한 건 졸리도 마찬가지다. 만화 속의 루퍼소브는 아빠의 이름이었고 한 눈에도 알아보게 아빠를 닮은 얼굴이었다.

영화의 주인공 졸리와 바바역의두 배우, 졸탄 페니베시와 아담 페케테는 실제 장애인이다.

휠체어를 탄 청춘들의 엉뚱하고 발칙한 상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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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칼럼니스트 별빛영화관에서는 좀 다르게 사는 사람들,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 우리가 몰랐던 영화 일때도 있고, 이름을 떨쳤지만 비장애인의 눈으로 읽혔던 영화들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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