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 스틸컷. ⓒ네이버영화

미셀은 시각장애와 청각장애인 8살 여자아이다. 2살 때 시각과 청각을 잃었다. 깊은 어둠, 아무 소리도 없는 세상에 산다.

아이의 곁에선 무언가 부서지고 넘어지고 불이나고 깨졌다. 불안한 아이는 매 순간 어둠과 적막속에서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아이는 허리에 종을 매달고 있다. 위치와 움직임을 파악하려는 목적이다. 아이와 소통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부모는 미셀의 모든 행동을 방치한다.

한편으로는 불쌍하다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지쳐가고 있었다.

그때 특수학교 교사인 사하이를 소개받았다.

사하이가 보기에 미셀은 사방으로 날뛰는 작은 맹수 같았다. 사납고 거칠고 어느 것 하나 인간 세상에 길들여진 게 없는 야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식사시간에 돌아다니며 남의 음식도 마구 손으로 집어먹는 아이에게 예절부터 가르치겠다며 숟가락을 쥐어 주려는 선생님과 거세게 반항하는 아이.

아이는 지금껏 불쌍한 장애아이라는 이유로 모든게 허용되었다. 행동을 제지받아본 적이 없다.

자신을 억제하려는 선생님에게 미셀은 필사적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을 무작정 달려 넘어지고, 사정거리에 있는 게 느껴지면 때리고 옆에 잡히는 물건마다 던졌다.

괴성을 지르며 반항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미셀의 손을 잡고 수화를 하며 팔에 글자를 썼다. 입술의 움직임을 느끼도록 미셀의 손을 선생님의 입술에 대고 말하기도 한다.

별 진전이 없어 보이던 교육이 분수대에 흐르는 물을 손으로 느끼면서 성큼 나아갔다. 흉내내는 것이지만 단어와 사물의 이름을 일치시키며 뜻을 깨달았다.

"워..., 마..., 파..."

그리고

"티..."

워터 마더 파더 그리고 티처

영화 블랙 스틸컷. ⓒ네이버영화

한 번 넘어선 깨우침은 소통이라는 길을 알려 주었다. 팔에 써주는 글자를 배우고 잡은 손을 통해 손짓의 특징인 수화를 익히고 기계로 한점씩 눌러 찍은 점자를 배웠다.

그렇게 사람들 속에서 살며 20살이 되었다.

대학은 인문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왜 특수학교가 아니라 굳이 일반대학에 오려하느냐, 미셀을 위해 따로 특별하게 수업을 할수 없다 난색을 표하는 교수들을 설득했다.

모든 수업은 옆에서 선생님이 손을 잡고 수화로 번역을 해주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세계에서 선생님이 잡은 손끝은 멀고 깊은 지식의 세계로 인도하는 빛이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앎의 계단을 올랐다.

그러나 시험 칠 때 답을 알아도 점자치는 속도가 늦어 번번히 낙제였다.

선생님은 "거미는 수차례의 실패를 통해 집짓는걸 배운다"며 오히려 축하한다고 격려해주었다. 험난한 과정이지만 선생님과 함께하니 좌절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을 입학한지 이십년 만인 나이 사십에 졸업할 수 있었다.

어둠의 세계에서 혼신으로 끌어 올린 빛 보다 밝은 승리다.

지식을 알기 위한 수단인 보는 힘과 듣는 힘 없이 스승의 손짓으로만 느끼면서 알아간 세계.

그곳엔 시각장애 청각장애라는 험난한 중복장애를 딛고 진리를 알고자 지치지 않고 나아간 미셀과 혼신을 다해 이끌어준 스승이 있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는 장애인 곁에는 종종 훌륭한 스승이 있다. 뜻한 것을 이루기에 험하게 가로 막고 있는 장애를 헤치고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가르쳐주고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다.

영화 블랙 스틸컷. ⓒ네이버영화

사하이는 그런 스승이었다.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해 미셀에게 알려주었다. 깜깜한 블랙의 세상에 삶이라는 빛의 세계를 선물해 주었다.

사하이는 때로는 괴팍해보이고 꽉 막힌 고집불통에다가 어려운 길만 가게 하는 사람으로도 보였지만 누구보다 미셀을 깊이 사랑했다.

아이가 느끼는 무섭고 두려운 길을 지나서가면 앎이란 자기 긍정의 세계, 빛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거란 믿음이 있었다.

좋은 스승이 함께 한다는 건 자꾸 뒷걸음이 처지는 비탈진 자갈밭도, 가시덤불 우거진 길도, 짙은 안개에 휩싸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세상에 든든한 지원군이 있는 셈이다.

진흙탕 길은 손잡아 주고 가시덤불에선 업어주고 앞이 보이지 않는 곳에선 등불을 밝혀 길을 안내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

그런 스승을 만난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지금도 세상의 구석 구석엔 남을 위해 정성스런 구슬땀으로 이끌어 주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을 태워 길을 밝혀주는 사랑이 깊은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다.

그 힘은 세상의 한 끄트머리를 밝히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기운 찬 희망이 되고

기적이라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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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칼럼니스트 별빛영화관에서는 좀 다르게 사는 사람들,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 우리가 몰랐던 영화 일때도 있고, 이름을 떨쳤지만 비장애인의 눈으로 읽혔던 영화들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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