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텝 바이 스텝 포스터. ⓒ네이버영화

영화 ‘스텝 바이 스텝’은 여러 중도장애인들의 모습을 그렸다. 중도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지냈을 재활병원에서 만났던 병실 사람들 이야기 같기도 하다.

벤은 농구선수였는데 한밤중에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 척추가 부러졌다. 수술을 해서 목숨은 건졌지만 전신마비였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신경은 살아 있어 시간이 자나며 조금씩 움직임이 살아나는 중이다. 전신마비의 상태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긍정적인 성격이다.

회진하던 의사가 “지내긴 어떠냐”고 묻자 대답이 걸작이다.

“꿈이 다 이뤄졌어요. 행복해 죽겠어요.”

어깨와 팔을 움직이게 되자 상태에 맞는 전동휠체어를 탈수 있게 되었다.

병원 안내는 파리드가 자처했다.

파리드는 하반신 마비로 수동휠체어를 자유자재로 몰았다. 4살 때부터 휠체어를 탔다는 그는 장애경력( ? )답게 매사에 여유있다. 병원 여기저기를 안내해 주었다.

투생은 고아로 자라며 갖은 고생하며 살다 겨우 체육관 차리고 살만한가 싶을 때 교통사고가 났다. 졸음운전이다. 외톨이에 전신마비 환자가 됐다.

후에 친해진 뒤 그가 말했다.

“혼자 오줌누는 게 소원이야. 맞춤형 휠체어, 맞춤형 포크, 맞춤형 전화기는 있지만 맞춤형 희망은 없더군.”

사미르는 하반신마비에 뇌손상까지 있어 조금 전의 일도 기억을 못한다. 매일 복도 한켠에서 헤드폰을 끼고 밥 말리의 음악을 듣는다. 방금 전에 내 이름은 벤 - 이라고 인사를 했어도 반가워 줄리앵 - 이라고 답한다.

벤의 룸메이트 에릭은 모터사이클을 타다가 넘어져 척추가 망가졌지만 아직도 벽에 사이클 사진을 붙여놓고 몸이 나으면 다시 모터사이클을 탈 생각이란다.

스티브는 이제 막 사춘기를 벗어났을 거처럼 어려 보이는 청년으로 병으로 인해 마비환자가 됐다. 팔만 조금 움직이는데 수다 떠는 자리에는 함께 하면서도 언제나 투덜댄다.

남들과 대화에 늘 농담을 곁들이는 벤에게도 그래 봐야 쓸모없는 장애인일 뿐이라고 비꼰다. 그는 변화 없는 자신의 몸 때문에 모든 것에 비관적이다.

벤은 체육교사가 꿈이었다. 재활을 계속하면 그 꿈을 이룰 줄 알았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단 주치의 진단에 매사에 쾌활하던 벤도 울었다.

그러나 벤은 운동을 계속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변함없이 유쾌한 농담으로 주위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었다.

영화 스텝 바이 스텝 스틸컷. ⓒ네이버영화

영화가 끝날 즈음 벤은 퇴원을 하고 자신과 함께 농구를 하던 친구들을 응원하러 갔다. 목발을 집고 서툰 걸음으로. 이젠 선수가 아니라 관중석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장애는 영화 속의 벤처럼 재활로 나아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아지는 사람만 의지가 강해서 나아 지는게 아니고, 변화가 없는 사람이 노력을 안해서 나타난 결과도 아니다.

영화는 재활병동을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장애인의 재활이야기를 보여준다.

어제는 이대로 쭉 좋아질 것 같은 희망에 차 있다가, 오늘은 이대로 굳은 몸에 갇혀버릴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잘 담겨있다.

농담으로 이어지는 수다는, 장애인이 되었어도 이전처럼 유쾌하게 지낼 수 있는 걸 보여주고, 절망에 빠졌을 때도 함께 하니 우울하지만은 않다.

섣부르게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다’ 말하지 않았다.

영화 스텝 바이 스텝 스틸컷. ⓒ네이버영화

다양한 모습으로 살다가 느닷없이 맞게 되는 중도장애. 대개는 하루 아침에이거나 어느날 갑자기 사고나 병으로 장애인이 되었다.

어떤 날은 괜찮았다가 다음 날은 괜찮치 않은 무수한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 몇년이 지나도 꿈속에선 이전의 모습이어서 황망히 새벽잠을 설치기도 한다.

몸의 상태에 따라 남은 장애를 받아 들이며 사는 일 또한 마음의 재활이다.

중도장애인은 갑작스럽게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이 되며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낯설고 불편하지만 익숙해져야 한다.

그 세상에선 책, 종교, 일, 지식, 사람 사이의 관계 어느 것에서도 알 수 없었던 삶의 깊은 내면을 알게도 해준다.

장애인이 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지 못할 겸허 혹은 내려놓는 마음이다.

장애를 받아들이는 마음은 각자 다를 것이다.

어떤 상태에서도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날마다 억울하고 분노로 절망 중일 수도 있다.

남에게 좋은 일이 나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듯이 세상이 다 나쁜 일이라고 여기는 일도 다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장애인이 되었어도 매우 평온해 보인다. 어쩌면 장애를 겪으며 삶을 조금 더 알고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저마다 인생은 공평하게 한 번뿐이다.

한 번뿐인 삶이지만 중도장애인이 되었다는 건, 죽음 가까이에서 돌아왔다는 의미이다. 다시 얻은 삶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는 오롯이 자신만이 택할 수 있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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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칼럼니스트 별빛영화관에서는 좀 다르게 사는 사람들,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 우리가 몰랐던 영화 일때도 있고, 이름을 떨쳤지만 비장애인의 눈으로 읽혔던 영화들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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