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으로 장애계가 분노하고 있다. “선천성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와 같은 “□□은 ◯◯다”라는 명제는 대부분 고정관념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은 편견과 차별로 이어진다.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선천성 장애인과 후천성 장애인을 의지의 강약으로 구분했다는 점에서, 장애인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장애에 대한 편견을 발언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고정관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지고 있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더 큰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를 자신의 의지로 극복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장애 극복 신화”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오래전부터 장애는 치료받아야 할 질병, 정상화되어야 할 일탈, 그리고 극복되어야 할 고난으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를 자신의 의지로 극복해야 하며, 그렇게 자신의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은 성공한 장애인으로서 장애 극복 신화의 영웅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장애 극복 신화의 영웅에게는 박수를 보냈고 극복을 실패한 장애인은 노력을 안 하는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 가운데 장애인은 스스로의 의지(노력)로 장애를 극복하고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 했고, 사회는 이러한 장애인의 의지(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모든 할 일을 다 했다고 믿으며, 사회의 책임과 의무를 회피했다. 이렇게 장애 극복 신화는 만들어졌다.

장애 극복 신화는 장애인의 생존 투쟁의 신화이며, 사회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회피의 신화이다. 그리고 이 신화에서 장애인의 의지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열쇠가 된다. 따라서 이 장애 극복의 신화는 철저하게 비장애인 사회에서, 비장애인에 의해 만들어진 억압의 신화이다.

장애 극복 신화의 문제점은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이다. 과연 장애는 극복의 대상인가?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장애를 치료가 어려운 난치병이거나 헤쳐나가야 할 역경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손상 자체를 장애로 정의하는 전통적인 의료적 모델의 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회적 모델의 장애의 정의처럼 “장애가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지닌 개인의 활동과 참여를 제한하고 차별하는 사회의 억압”이라면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어야 한다.

그리고 해방의 대상은 장애인이 지닌 신체적·정신적 손상이 아니라 장애인의 활동과 참여를 제한하고 차별하는 사회의 억압이다.

필자가 장애 극복의 신화를 억압의 신화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회는 장애인을 억압하면서 오히려 그 억압을 극복하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애인에게 이중의 억압이 된다.

장애 극복 신화의 또 다른 문제점은 장애를 개인의 의지(노력)로 극복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장애를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고, 개인의 문제이므로 해결도 개인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도, 국가도 책임이 없고 오직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극복을 하면 개인의 노력의 결과이며, 실패를 하면 그 또한 개인의 책임이다. 그러나 사회적 모델의 관점처럼 장애가 개인의 손상 자체가 아니라 손상을 지닌 개인을 사회가 억압하는 것이라면, 그 책임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게 있다.

개인의 의지(노력)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장애인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따라서 장애인의 의지를 강조하는 생각의 밑바닥에는 장애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회피하고 개인의 책임으로 모든 것을 돌리려는 가치관이 깔려있다.

이해찬 대표의 발언의 위험성은 여기에 있다. 여전히 장애는 극복되어야 할 질병과 난관이며, 그 극복은 오로지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고, 국가와 사회의 책임은 없다는 것이 장애인의 의지의 강조에 깔려 있는 기본 철학이다.

물론 이해찬 대표가 이러한 철학을 가지고 그러한 발언을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해찬 대표의 발언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고정관념의 표출이며, 그 고정관념 밑바닥에는 장애 극복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의지가 필요한 것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장애인이 아니다.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장애인을 해방시키려는 사회의 의지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의지이다. 장애인의 의지를 묻는 사회에게 오히려 나는 묻고 싶다. 대한민국은, 우리 사회는 장애 해방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사회의 의지에 동참할 의지가 있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의지는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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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융호 칼럼니스트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총장,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서울시 명예부시장(장애)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사단법인 한국환경건축연구원에서 유니버설디자인과 장애물없는생활환경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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