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으로 돌아오는 길.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길 한가운데서 곤혹스러운 경험을 했더니 질주하기가 무섭다.

여전한 땡볕에 숨이 턱턱 막혔다. 이미 심적으로 쫄린 탓에 잔망스럽게 100여 미터 움직이고 쉬기를 반복했다.

하필 지갑도 챙기지 않아서 시원하게 목을 축일 수도 없다. 그렇게 갈증을 참으면서 천천히 이동했다.

장애가 생긴 후 피곤해하는 것 중에 또 하나는 배뇨 장애다. 나는 말 그대로 배뇨가 자유롭지 않다.

일명 긴박뇨라고 해서 뇨를 느끼면 바로 해결해야 한다. 노상 방뇨를 불사해야지 참는 게 안 된다.

그런데 하필 이렇게 불안불안한 휠체어에 올라탄 지금 갑자기 소변이 보고 싶어졌다.

역시 안 좋은 일은 몰아서 온다. 확실하다. 제길.

1분 1초가 급하다.

평소에는 여기가 눈이다 싶을만큼만 째진 탓에 많은 것을 허락하지 않던 눈이 이 순간엔 육백만불 사나이 저리가라 싶을만큼 많이 보인다.

ⓒ 정민권

큰 건물이다 싶은 곳으로 다짜고짜 들어 섰다. 다행이 안내 데스크에서 휠체어만 보고 쫒아내려는 경비 아저씨가 안 보인다.

게다가 화장실도 바로 시야에 들어 왔다. 가끔은 좋은 일도 겹쳐서 오기도 하나보다.

이런 젠장!

"건물 입주자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역시 좋은 일은 겹치는 법이 없다. 나만 그런가?

순간 당황해서 문을 열어 보았지만 굳게 닫혀 꼼짝도 안 한다.

입구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등 뒤로 팔 하나가 쑥 나온다.

"화장실 들어 가시려구요?"

누군가 자석 키로 문을 열어 준다. 다행이었다. 가끔 좋은 일은 시간 차를 두고 오기도 하나 보다. 허둥지둥 화장실로 내달리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다치고 얼마되지 않아 재활을 할때 어머니와 동네 산책길에 나섰다.

그때나 지금이나 배뇨 장애의 긴박함은 다르지 않다. 갑자기 배뇨를 느꼈다.

나지도 않는 땀이 비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긴박했다.

어머니는 급하게 여기저기 건물을 오르내리며 화장실을 찾는다.

한데 가는 곳마다 다 잠겨있었다.

어머니가 애가타서 “똥 퍼 갈까봐 잠궈 놨다”라고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이 났다. 결국 나는 산책을 시작하자마자 엉거주춤하게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 중에 하나가 어딜가나 무료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던데 나는 반대로 잠겨 있는 화장실에 놀라야 했다. 어쩜 그렇게 열려있던 곳이 한 곳도 없었는지.

요즘은 많은 곳이 개방형 화장실이라고 지자체의 소정의 지원을 받아 화장실을 개방하는 건물이 있다. 물론 이런 개방형 화장실이 장애인 편의가 모든 곳이 다 갖춰져 있을 것이라는 건 편견이다.

대부분은 장애인 편의시설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다는 절망스러움보다 어떻게든 이용해볼 수 있다는 점이 조금의 위안은 된다.

자기 화장실을 열어 놓거나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인심이 야박하네 마네 할 일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개방형 화장실이 제 기능을 못하는 현실에선 오늘 경험한 이 일에서 나는 야박함을 느꼈다.

잠겨 있는 화장실 앞에서 다시 한번 나라를 잃은 것같은 참담함을 느껴야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기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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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회복지사. 책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종종 장애인권이나 인식개선을 위한 강연도 한다. 미디어에 비친 장애에 대한 생각과 함께 장애당사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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