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단체사업의 일환으로 척수장애인을 위한 올바른 휠체어스킬을 공부하고 보급하기 위하여 6명의 단원이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1일까지 6박 7일간 캐나다 벤쿠버에 척수장애와 관련된 관계기관을 방문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8회에 나눠 연재하고자 한다. 일곱 번째는 'BC척수장애인협회'이다.

외국의 척수재활센터에 가면 센터 내에 척수장애인단체가 상주하여 병원 안의 척수환자들과 긴밀히 교감하고 사회복귀를 준비시키는 과정에 적극적인 개입을 하는 것을 부럽게 본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G.F. Strong 재활센터 안에 브리티시 컬럼비아(BC)주정부로부터 조건 없이 사무 공간을 대여 받아 직원이 상주하며 상담 및 각종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 장소도 눈에 띠지 않는 구석진 곳이 아니라 병원입구 로비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상주하고 있는 척수장애인 동료프로그램 코디네이터인 라이언(Ryan)씨와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다른 한명의 척수장애인 동료상담사가 이 재활센터에 입원중이거나 통원치료를 하는 척수장애인들과 라포를 형성하며 지역사회로 나가는 길목에서 길라잡이를 하고 있다.

라이언씨는 탱크로리를 운전하던 중 도로위의 곰을 피하려다 차가 전복되는 사고로 척수장애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도 초기에 척수장애인들이 겪는 유사한 굴곡을 경험하다가 다른 동료상담가의 도움으로 장애를 수용하게 되었고 지금은 또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고 멋쩍게 웃었다. 그는 사고 전에 가졌던 캠핑의 취미를 살려서 캐나다와 미국의 유명한 캠핑지를 다니는 고급스런 취미를 가진 열혈청년이다.

재활센터 내에 별도공간으로 마련된 사무실에서 동료프로그램 코디네이터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 오른쪽이 라이언씨이다. ⓒ이찬우

그는 동료상담가로서 심리적 지지는 물론 사회복지사와 비슷한 업무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병원에는 사회복지사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들은 병원 내 다양한 직원들(치료사, 사회복지사 등)과 협업을 하고 있고 또한 환자와 보호자 분들과 1:1 대화를 위주로 다양한 소통을 하면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병원내의 직원들과 갈등은 없느냐는 일행의 질문에 이해를 하지 못한 듯 여러 번 반문을 하였다. 그런 일은 없다고 단언을 하였다. 각자의 고유영역이 있고 그 영역을 침해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는 그들의 문화에서 오는 유전자(DNA)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들의 업무는 동료간 지원(peer support)은 기본이다. 직접 상담을 하기도 하지만 입원 중인 여성척수장애인이 같은 여성척수장애인과의 상담을 원할 경우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척수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의 궁금증은 얼마나 많겠는가? 다쳤을 때 어떻게 병원을 가는지, 운전하는 법, 집에 갔을 때 적응하기, 휠체어 구매, 육아 방법, 휠체어 접근 가능한 치과 정보 등 척수장애인들이 필요한 정보를 무한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뿐만 아니라 퇴원한 장애인들과도 긴밀한 교류를 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병원 밖에 있을 때의 관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당사자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국토면적이 넓어서인지 화상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가상동료상담도 진행하고 있었다.

이곳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가족들이 척수장애에 대해 잘 모르거나 감추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지원프로그램과 부모모임을 통해 가족과 특히 부모들이 척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도록 노력한다고 한다.

특히 개개인의 스토리텔링은 다른 척수환자들에게 많은 효과가 있다고 했다. 사고 경위와 사고 이후의 갈등들 그리고 장애를 수용하고 장애이전의 삶보다 발전하는 과정들이 장애인들에게는 교감과 동감, 동질성의 에너지를 형성한다고 한다. 이런 글들을 협회지나 홈페이지에 올리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병원에 상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은 병원관계자, 지역사회 관계자, 타 NGO 단체들과 좋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고, 협업하는 것이 사회비용 절약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이 잘 안 되는 한국의 현실이 떠올랐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척수장애인협회 홈페이지(http://sci-bc.ca) 켑쳐. ⓒ이찬우

또한 그가 속해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BC)척수협회는 회원 1만5천명의 메머드급 단체이다. 이들을 위한 사업은 매우 다채롭다. 가장 기본인 상담을 위해 전화상담, 인터넷에 Q&A 포스팅, 지역이 넓다보니 온라인 단체 채팅 등을 하고 있다. 다양한 개인 블로그도 운영을 한다.

SCI BC TV라는 미니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시청자가 자신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장벽을 제거하며 새로운 경험과 정보에 마음을 열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프로그램은 재활 비디오로 제작해서 유튜브에 척수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사고 전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는 ‘모임’ 지지(한국의 척수협회가 하고 있는 자조모임지원과 유사하다), 온라인 장터 사업(중고 휠체어, 중고 보조기기 등을 거래)도 운영한다. 척수장애인들 사회활동을 위해 필요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이를 위해 가족, 여자친구, 친구, 주민들의 모임을 주선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하는 간단한 모임에서부터 호텔을 빌려서 요트타기와 카약타기 등 큰 이벤트까지 다양한 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다.

척수장애인에게는 그림자와 같은 방광, 스트레스관리 등을 병원과 협업하여 진행하기도 하고 지역사회와 다층적인 파트너로 협업을 지속한다고 했다. 리소스센터를 운영하여 각종 자료들을 수집 통계분석하기도 한다. ‘TheSpin’이라는 잡지를 정기 발행한다.

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의 표지(홈페이지 캡쳐]. 다양한 정보들이 들어있다. ⓒ이찬우

주에서 지원하는 장애인 복지 중 척수장애인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분야는 주택개조 및 주택지원, 재정지원, 차량과 휠체어 등 장비지원이라고 귀뜸해주었다. 척수장애인들이 필요한 욕구들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 센터의 동료상담가들은 환자들에게 무언가를 강요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나 문이 열려 있다.”는 긍정적인 암시를 전달하고 또 기다리고 있으면 그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한 재미있는 방법들로 환자에게 접근하기 등을 늘 고민하는 이곳 동료상담가는 진정한 멘토이다.

척수장애인 당사자의 동료지지와 심리적 지지는 그 효과성이 있다는 것이 여러 논문과 단체들의 실행을 통해서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문제는 장애인동료들과 장애인단체들은 준비가 되어 있는데 병원 등 기관이 소극적인 것이 문제이다. 왜 국립재활원이나 권역별재활병원에는 동료상담가를 위한 장소제공을 하지 않는지 답답하다.

또 다른 방법은 장애인 당사자들을 병원의 사회복지사나 동료상담사로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것이다.

부산의 몇몇 병원에서는 척수장애인을 병원 직원으로 고용해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장애인건강권법의 전면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를 통해서 당사자들의 직업창출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 재활전문의료기관. 장애인검진기관 등에 적극적인 채용바람이 불기를 희망한다.

척수장애인의 재활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한 사람의 척수장애인을 사회로 복귀시키려면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선진국형 복지시스템이다.

특히 당사자동료상담가의 역할 확대를 통해 병원생활부터 동기부여가 되는 그 간단한 시스템을 이제는 시작할 때이다. 이제 제발 시작하자.

센터 로비에 마련된 척수협회 동료상담을 위한 사무실 앞에서 기념촬영. ⓒ이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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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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