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 다래, 가을하늘, 연두, 소피아, 옆집, 제비꽃, 오렌지 풍경.........

동화책 제목도 아니고,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인가? 요즘 핫한 카페 이름인가?

이 뜬금없는 단어들의 조합은 무슨 의미일까요?

요즘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뜨겁게 역설중인 ‘발달장애 국가책임제’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 속에서 함께 살 수 있는 권리’가 주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저 또한 스무 살이 된 자폐성장애가 있는 아들이 있다 보니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시간들에 대한 걱정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공동체’, ‘로컬’, ‘동네’, ‘지역사회’가 갖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일상이 바쁜 도시 속에서 동네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그물과 또 그 안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관계망에 어떤 원리가 작용되어야 지역사회 속에서 함께 살기가 가능해 질수 있을까, 법적 제도가 만들어진다고 순조로울까, 제도적 장치도 물론 필수조건이지만 지역사회를 해석하는 방법은 ‘사회학적’인 시각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관계성’이라는 사회학적인 시각으로, 서로 부딪치며 갈등하고 해결, 조정하며 관계그물을 성장시키고 키워나가는 도시민들의 생활 네트워크 양식을 단순 같은 지역에 사는 동네 사람이 아니라 ‘마을공동체’로서의 ‘관계성’이 촘촘하게 강화되어야 비로소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피아~ 오늘 같이 가요’

‘다래! 아이들 전시 준비 바쁘죠?’

‘연두~ 모자 뜨개질 멋져요’

‘타잔~ 가을하늘이 전화달래요’

동화책 제목 같기도, 영화 속 주인공 이름 같기도 했던 저 의문의 단어들의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열린 소통과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사람들...

정찬씨, 소피아, 다래, 연두, 타잔, 가을하늘. ⓒ김은정

버젓이 본명이 있는데, 별명을 부르며 대단히 각별하게 ‘관계그물’을 성장시키고 있는 저 ‘관계성’으로 다양한 마을 활동을 통해 이웃 간의 관계 회복과 결집력, 이웃 존중, 사람사랑에 기여하고 있는 ‘마을공동체와 그 사람들’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성미산 마을!

우리 모두 몇 번은 들어 본 적 있는 익숙한 동네 이름입니다.

성미산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육아를 비롯한 커뮤니티를 이룬 이 마을의 출발은 1994년 ‘공동육아’를 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로서는 대단히 획기적인 일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 아이와 이웃의 아이를 같이 돌보기 위해 십시일반 전세금을 모아 어린이집을 직접 만들고, 부모들이 운영에 참여도 하는 표현 그대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공동’ 프로젝트는 꾸준히 늘어나, 현재 성미산 마을 일원으로 불리는 커뮤니티는 40~50개에 이른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이 정도면 성미산 마을이라는 명칭은 지리적 구분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또다시 생겨나는 커뮤니티들의 모임 덩어리라고 생각해도 될 듯합니다.

공동육아를 목적으로 시작해서 여러 가지 굵직한 공동체 사업이 시도되고, 어린이집에 이어 대안학교도 만들어졌습니다. ‘사람간의 관계’를 우선으로 가르치는 교육의 모토가 알려지면서 타 지역에서 이 대안학교를 찾아 이사 올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아들 규재가 초등 입학을 앞두고 있었을 때, 성미산 마을의 대안학교 입학을 위해 이사를 할까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결국 집 근처 초등학교로 입학하게 되어 이사는 못했지만 늘 마음 한 곳은 성미산 마을이 궁금하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마을 축제에서 '운동' 공연중. ⓒ김은정

성미산 마을에서 자란 발달장애 청년들이 마을 안에서 이웃과 교류하며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거리를 통해 경제적 활동으로 이어지고 당사자가 마을 안에서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 조력하는 ‘장애청년허브’ 역할을 하는 커뮤니티를 구성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름 하여 [사부작]!

“사부작은 발달장애청년들이 이웃과 함께 놀고, 함께 일하는 마을을 꿈꿉니다”

“마음을 여는 만큼 커지는 마을, 사부작이 꿈꾸는 마을의 내일입니다”

“달라 보이지만 다를 것 없는 모두가 귀한 사람들입니다”

“성미산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마포구 성산동 255-13, 103)

아,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 멋진 사람들,

동네마다 노인정이 있듯이, 동네마다 발달장애청년허브가 생겨나길 고대한다는 이 멋진 사람들,

성미산 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청년 이정찬씨를 중심으로 가을하늘, 연두, 소피아, 다래, 타잔 다섯명의 마을 이웃들이 뜻을 모아 만든 [사부작]은 진정 시대의 개척자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사부작]은 시대의 개척자답게 마을 속에 녹아들어 감동의 어우러짐을 벌써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발달장애청년 이정찬씨가 자주 흥얼거리던 ‘운동’ 자작시에 음을 붙여 노래를 만든 멋진 아티스트 작곡가, 그 노래에 예쁜 춤을 안무해 준 센스쟁이 춤꾼, 그리고 노래와 춤을 열심히 연습해서 성미산 마을 축제 무대에서 찰떡 호흡 보여 준 [사부작]의 6인 멤버들과 무대 앞으로 몰려 나와 같이 춤추고 노래하는 마을 주민들...

'사부작'과 어우러져 춤추는 성미산 마을 사람들. ⓒ김은정

살 빠지게~ 살 빠지게~ 운동해요~ ♪♬

89키로 되면 불고기 파티해요~ ♬

저녁 먹고 한 바퀴 뺑글 돌아요~ ♪

우하하하, 정찬씨가 엄마와 반복적으로 주고받던 대화가 자작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온 동네 사람들과 노래와 춤으로 한 덩어리가 되고 있는 이 모습들...

정찬씨의 자작시로 만든 노래 '운동'. ⓒ김은정

성미산 마을 축제에서 목격한 유쾌하고도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듯 서울 한복판에서 흔치않을 것 같은 이 광경은 저에게는 신선한 울렁거림이었습니다.

게다가, 사부작의 ‘운동’ 공연에 떼창과 떼춤으로 호응해 주는 마을 사람들 틈에서 마이크를 잡고 “ 발달장애인들이 우리 마을에서 함께 이루고 살 수 있도록 사부작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합니다!” 외치는 사회자 아저씨를 보는 순간, 왜 내 가슴이 뜨거워지던지...

아마 [사부작]과 그 마을 사람들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싶은 저의 사심이 발동했었기 때문이겠지요.

정찬씨의 손글씨 '운동'. ⓒ김은정

도시 공동체의 모범답안이 되어 줄 [사부작]의 사부작,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멀리 멀리 퍼져나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응원이 모아지길 바랍니다.

우리가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적극적인 부모연대 활동은 반드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뜻을 모아 동네 속으로 들어가려는 의지와 지역사회 속에서 내 역할과 내 자리를 찾는, 행동하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도 피력합니다.

[사부작]과 성미산 마을 사람들이 어우러져 춤추며 노래하는, 그 마을 축제장을 뒤로 하고 나오며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아! 이 동네 뭐야~ 감동주고 그래~ 왜 내 가슴에 불을 땡기는겨~ 규재 초등 때 진작 이사 왔어야 했나보네. 지금이라도 규재 데리고 이리루 이사올끄나?’

정찬씨!

소피아!

다래!

연두!

타잔!

가을하늘!

어디, 그 동네 빈 방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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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칼럼니스트 발달장애화가 이규재의 어머니이고, 교육학자로 국제교육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본능적인 감각의 자유로움으로부터 표현되는 발달장애예술인의 미술이나 음악이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적 가치로 빛나고 있음을 여러 매체에 글로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며 장애인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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