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는 달랐다. 지난 20일 LG트윈스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진행된 잠실야구장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차분했다. 양 팀의 전매특허인 8회 육성 응원은 물론이거니와 응원단도 찾아볼 수 없었다. LG는 매주 일요일 홈경기에 서울 유니폼을 입어왔지만, 이날은 기존의 줄무늬 홈 유니폼을 입었다. 선수단은 왼팔에 근조(謹弔)가 적힌 검정 리본을 달았다.

이날 오전 별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유난히 야구를 사랑했다. 그는 1990년 LG트윈스 야구단의 창단과 함께 팀의 구단주가 되었고, 1990·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했다.

특히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94년 우승이 그룹 전체의 이름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설도 떠돈다. LG 트윈스의 우승을 크게 기뻐했던 구 회장이 이듬해 그룹사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기존 사명인 럭키금성을 LG로 바꿨다는 거다. 더불어 야구장 시설개선에도 앞장서온 그이기에 야구팬들의 추모는 당연한 일이다.

어언 20여년이 넘는 세월을 LG트윈스의 팬으로 살았던지라 이날의 분위기는 낯설었다. 소리 없는 응원은 경기의 흥을 돋우지 않을 거라는 관념은 보기 좋게 깨졌다. 본질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고 달리는 타자들과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지는 투수들 그리고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 공을 잡는 수비수들이 펼치는 드라마는 야구의 역동성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양 팀의 감독들이 펼친 지략대결도 일품이었다.

“때로는 사실이 진실의 무서운 적이 될 수 있다”고 이스라엘 소설가 아모스 오즈는 말했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사실들은 가공 방법에 따라 진실을 조작할 수 있다. 한 가지 진실을 언론사들마다 다른 논조로 해석하는 건 수 많은 사실들 중에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논거들만을 취사선택해 보도하기 때문이다.

폭행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증언이 엇갈리는 이유가 각자의 입장에서 발견한 사실이 달라서인 경우도 있다. 물론 한쪽의 일방적인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단편적인 사건들도 이럴진대 그 옛날 벌어진 사건들은 오죽하랴. 역사가의 관점이 역사를 바꾼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고대 유물마냥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텨온 관행들도 한 가지 사실로 빚어져온 편협한 진실이다. 기득권을 타파하기 어려운 건 그래서다. 쓰여진 역사는 정설이 되어 유령처럼 사회를 배회하고, 가설은 굳어진 진실의 벽을 뚫어야만 역사에 편입될 자격을 얻는다.

유아보호차량과 장애인콜택시의 색이 노랑인 건 우연이 아니다. 유아와 마찬가지로 장애인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회의 인식이 투영된 결과다. 정계도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정치인들은 장애인들을 찾아가 손을 잡아주고, 사진을 찍는다. 소외계층을 보듬는 정책을 펼 것을 다짐하며 장애인들의 삶에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이런 행위가 응원 없는 소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장애인 공천배제’에서 알 수 있다. 정치인은 입이 아닌 발을 보라는 격언처럼, 입으론 늘 요란하게 장애인들의 삶을 응원하던 사람들이 막상 정치참여 기회제공엔 뒷전이니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 표밭갈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사회 만들기란 진실을 덮어버린다.

소리 없는 응원을 빛나게 한 건 진심이었다. 팬들은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요란하진 않았지만, 관심어린 눈빛들을 통해 선수들은 그들이 엄청난 응원을 보내고 있음을 느꼈으리라. 이날 경기가 정치권에도 죽비로 작용하길 바란다. 응원 없는 소리엔 이제 질렸다. 소리는 없어도 되니 진심어린 응원을 보내주시길 소망한다. 행동이 수반되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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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용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중앙일보 대학생 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에 5년간 기명칼럼을 연재했다. 2013년 12월부터 1년 간 KBS <사랑의 가족> 리포터로, 2017년 5월부터 약6개월 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블로그 기자로 활동하며 장애 문제를 취재해 사회에 알리는 일을 했다. 장애 청년으로 살며 느끼는 일상의 소회와 장애 이슈에 대한 생각들을 칼럼에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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