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출장을 갈 때 가능하면 고속철도(KTX)를 탄다. 시간 단축도 있지만 자가운전을 하면서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과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잠을 잘 수도 있고 책을 읽거나 업무를 볼 수도 있다. 가끔은 객실 안에서 다른 장애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행운도 얻는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출장 후 서울로 가는 길에 각 역에서 판매하는 특산물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즐겨 사는 것이 부산역의 어묵과 대전역의 빵, 그리고 서울역의 빵 등이 있다.

가끔 한 꾸러미를 사들고 집에 가면 한 집안의 가장으로 느끼는 뿌듯함도 있다. 과거 필자의 아버지가 출장 다녀오시면서 사오던 과자봉지의 추억이 돋아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중증장애인들의 사회활동이 늘어나고 KTX를 이용하는 기회가 늘면서 필자와 같은 공감을 하는 이가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집안에서 선물을 기다리던 수동적이 상태에서 무엇 하나 사 들고 갈 수 있는 능동적인 삶이 되었다는 것은 커다란 삶의 변화이고 기쁨이기도 하다.

먹을 것이 지천이고 전화 한 통화면 시간대에 관계없이 배달을 해주는 참 편한 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직접 사는 작은 물건 하나의 가치는 그 의미를 더하게 된다.

최근 오랜만에 다녀온 대전역에서는 이런 즐거움이 사라졌다. 대전역하면 생각나는 ‘대전을 대표’한다는 빵집의 접근성을 보고 화가 나기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섰다.

아내에게 대전 출장을 갔다 올 때 맛있는 빵을 사 간다는 약속을 한지라 부지런히 매장 입구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계단으로 내려오세요.’라는 친절한(?) 매장 안내 배너와 계단 아래서 본 모습. ⓒ이찬우

2층에서 계단 아래로 매장이 보이길래 어딘가에 엘리베이터가 있겠지 하고 1, 2층을 몇 바퀴를 돌았고 하물며 대전역 KTX 회의실 건물 앞의 철로 방향까지도 가보았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맛있는 냄새는 나는데 찾을 길이 없어 마침 지나가는 미화원 아주머님께 엘리베이터를 여쭤보니 ‘휠체어로는 못 갈 텐데...’라며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다.

확인 결과 대전역 1층에서 2층 로비로 올라가는 사이 층이라 휠체어로는 도저히 갈 수가 없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매장의 입구에는 계단이 4개씩이나 또 있었다. 빵집 접근성이 빵점이다.

이 계단을 어떻게 내려갈까?. ⓒ이찬우

한 술 더 떠서 매장 입구에 또 다른 계단이 있다. ⓒ이찬우

광고 배너에 적혀 있는 본사의 콜센터에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를 한다.

매장과 어렵게 전화연결이 되어 문제점을 이야기하니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주문을 하면 가져다 드린다는 친절한(?) 대답과 ‘더 필요한 빵이 있냐?’라고 점원이 물어보지만 볼 수도 없는 빵을 어떻게 주문을 할 수 있겠는가? 골라먹는 재미도 완전히 사라졌다.

열차시간이 다 되어 물건만 받고 부랴부랴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지만 나의 생각은 계속 대전역 그 빵집이 보이는 내려가는 계단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직접 매장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인터넷상에 올라온 블로그를 보니 그 규모가 대단한데 이런 공중상업시설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은 채 임대한 대전역 관계자의 안이한 발상도 문제를 삼아야 한다. 대전역 상가 중에 접근이 불가능한 곳은 이곳뿐이다.

승객의 편의와 대합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상업시설들을 외부로 이전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전역 측이 매장 임대 계약을 하면서 이동약자들의 접근성을 생각지 않은 것은 치명적인 실수이고 오점이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구조상 어려움이 있어 매장 아래에 있는 점포의 일부분을 비워야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포기되어서도 시간을 끌어서도 안 되고 반드시 해결이 되어야 한다. 접근성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이 되어야 한다.

매장 관계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전철도공사 측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고 예산확보를 위해 노력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어느 세월이 될지 걱정이다. 예산을 핑계로 역사에서 이동약자들의 불편함을 간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설치 전이라도 매장 측에서는 접근성과 관련된 안내문을 설치하고 또한 긴급 연락망과 인력을 배치하여 휠체어 사용 장애인 등 접근이 어려운 이동약자들에 대한 서비스를 지원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국민빵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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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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