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에이블뉴스 애독자분들이 가끔 메일을 보내 주십니다.

칼럼 주제에 관한 이런저런 상담, 질문을 통해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도 하고, 이견도 같이 고민하기도 하면서 많은 분들의 관심과 소통과 공감에 감사하며, 몇몇 메일의 상담을 읽고 떠오르는 지난 시간들이 있어 칼럼 내용으로 올려볼까 합니다.

규재가 초등학교 2학년 즈음의 이야기입니다.

학교생활은 그럭저럭 반 친구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쉬는 시간이나 급식 시간 등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학교 환경에도 익숙해지고 옆 반으로 담임 선생님의 심부름 차례가 되면(그때 담임 선생님은 학급 아이들을 번갈아 다른 선생님께 심부름을 보내는 미션 수행을 교육 중이었는데), 심부름도 곧잘 다녀오기도 해서 학교 내에서 다른 반 친구들과 선생님들과도 잘 적응해 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시간표에 체육시간을 확인하고 집에서 학교 운동장으로 서둘러 나가, 구석에서 규재 눈을 피해 체육 수업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살짝 눈인사를 나누고 규재를 관찰하는 동안 무엇인가 이상한 점이 느껴졌습니다.

집에서도 늘 보는 규재의 모습인 듯한데, 멀리서 바라보는 규재에게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평상시 모습인데 아이들 속에 있으니 무엇인가 어색하고 거슬리는... 무엇이라고 딱! 표현할 수 없는...

운동장 구석에 서서 규재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고민에 고민을 하던 중, 수업 시간이 끝날 쯤 돼서 ‘앗!’ 느낌이 오는 듯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 눈을 피해 장난을 치더라도 눈길은 선생님을 주시하며 ‘시선 교대’를 하고 있었는데, 규재는 앞에서 선생님의 시범을 흘깃 보는 듯 마는 듯, 선생님의 지시 행동에 ‘시선 따르기’나 ‘시선 교대’가 안 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왔습니다.

떨어진 거리에서 보고 있으니 늘 가까이에서 못 느꼈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체육 시간의 염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규재가 보였던 행동들을 꼼꼼하게 되짚어 보았습니다. 생활 속에서 보여 왔던 규재의 산만한 시선이나 자기 관심 위주의 시선에만 집중하던 모습을 그저 자폐적 특성으로만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문득 규재가 ‘시선 교대’나 ‘시선 따르기’의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자폐성장애인들은 ‘응용해서 습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일일이 하나씩 학습에 의해 체득한다는 이론 아닌 이론을 다시 떠올리며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시선 따르기’ ‘시선 교대’라는 용어는 아동교육학의 성장 단계에서 다루는 개념적 단어들입니다.

첫돌에서 두 돌, 세 돌을 거치면서 아이들은 시선의 방향으로 다른 사람들과 ‘공동 주의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함께 주의 하기’ ‘상호 주의 하기’라고도 말합니다. ‘눈 마주치기’에 이은 상호 감정 교류 행동으로 발전된 형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폐성장애인들은 특성상 타인의 마음 상태를 추론하는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눈 마주치기’는 물론 ‘시선 따르기’나 ‘시선 교대’로 발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규재작품[파란꽃]; 잠시 그림을 보며 생각을 쉬어보세요. ⓒ김은정

쉽게 표현하자면 우리 자폐성장애인들은 ‘번갈아 보기’가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칠판을 보다가 책으로 시선을 옮기는 것, 상대방의 얘기를 경청하며 그 몸짓, 손짓에 시선을 옮겨 그 사람과 공감을 해야 하는 과정과 시간들은 오랜 시간 학습과정을 거쳐야 습득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학습이 자폐성장애인의 성장리듬에 꼭 필요하다는 것조차 우리는 무심코 지나치고 있는 듯합니다.

아동기의 사회성 훈련이나 공감 능력 향상이나 언어 발달 촉진에 필요한 학습 자극의 베이스는 이 ‘함께 주의 하기’, ‘상호 주의 하기’, ‘시선 따라가기’, ‘번갈아 보기’, ‘눈 마주치기’, ‘상대방의 얼굴을 주시하며 상대방의 제스처(몸짓, 손짓)에 시선 옮기기’가 어느 정도 체득이 되어야 다른 기술들의 학습에도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자폐성장애인은 기억력(암기력)이 좋다고 하지만 관찰해 보면 순가 순간을 정지된 시간처럼 사진을 찍어 기억하는 방법일 뿐 동영상 같은 시간의 흐름으로는 스토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 상대방과 공통의 주제로 ‘시선을 교대’하는 방법을 학습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

* 상대방에게 본인의 관심 사항을 ‘가리키며 보여주기’를 시도하지 않는다.

결국 출발선은 ‘시선이 짧아서...’라는 것에 소결론을 내리고, 일단 시선을 길게 유지할 수 있는 훈련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요즘은 워낙 감성이 발달한 세대지만, 예전엔 교생 실습을 나가는 교육학과 제자들에게 비책인 듯 알려주는 게임이나 퀴즈가 있었습니다.

실습 나가서 학생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고, ‘상호 주의 하기’를 시도함으로서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고전적인 올드한 게임놀이였는데, 그것을 규재식으로 변형한 ‘시선 오래 유지하기’학습으로 응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1. 규재가 좋아하는 도형 모양 중 ‘한붓그리기’가 가능한, 쉬운 모양인 하트를 선택해서 규재와 마주앉아 그리는 놀이를 제시했습니다.

2. 처음에는 엄마도 그리고, 규재도 그리면서 흥미를 유발합니다. 이때 연필을 떼지 않고 한 붓으로 그려야 하는 규칙을 알려주고 익숙해지도록 반복했습니다.(다 그린 도형을 색칠까지 실행하면 과제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선 그리기만 제시했습니다.)

3. 한붓그리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마주앉은 엄마가 그리는 하트 모양을 보고 똑같이 따라 그리는 놀이를 유도했습니다. 한번은 오른쪽에서 시작해서 그리고, 다음은 왼쪽부터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본인이 선호하는 방향으로만 그린다고 고집하는데 강화물을 이용해서 결국 엄마가 먼저 그리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똑같이 방향을 달리해서 그리게 되었습니다.

4. 좀 더 선이 복잡한 도형으로 바꾸어가면서 이젠 한붓그리기가 아니라 연필을 떼는 순서를 번갈아가며, 엄마가 마주앉아 그리는 과정을 관찰하도록 해서, 그 다음 규재가 똑같은 순서로 따라 그리도록 규칙을 심화시키며 시선을 유지하는 시간이 늘어나도록 놀이처럼 반복했습니다.

마주앉은 엄마가 매번 방향과 순번을 바꾸며 그리는 과정을 관찰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시선이 따라오는 속도도 빨라졌지만, 똑같이 실행할 수 있도록 학습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눈’을 통해 사물을 끝까지 보고, ‘눈’의 기능을 통해 이해 능력이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규재의 ‘시선 오래 유지하기’놀이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앗! 정해진 칼럼 분량이 꽉 찼습니다.

다음 단계인 ‘시선 교대하기’ ‘번갈아 보기’에 관한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해야 할 듯합니다.

규재의 성장 일기 중의 한 페이지가 많은 분들의 말길이 되길 바랍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김은정 칼럼니스트 발달장애화가 이규재의 어머니이고, 교육학자로 국제교육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본능적인 감각의 자유로움으로부터 표현되는 발달장애예술인의 미술이나 음악이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적 가치로 빛나고 있음을 여러 매체에 글로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며 장애인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