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재는 이십 살이니까 어른이지이~~~~”

“우리 규재 벌써 어른이네. 근데 규재야! 나이는 이십 살이 아니고 스!무!살! 이라고 말하는 거야”

요즘 규재는 부쩍 어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이유는 어른이 되어야 신용카드와 비밀번호를 만들 수 있고, 신용카드로 파워레인저 시리즈를 아빠 허락 없이 마음대로 결제하고, 비밀번호로 그 좋아하는 컴퓨터 격투게임에 로그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에 관심이 많은 규재가 컴퓨터 게임 사이트에 들어가고 싶다고 조를 때마다 난 ‘청소년은 안돼! 어른이 되어야 해! ’

무슨 ‘어른’은 천하무적 만능인 것처럼 지금까지 규재와의 일상생활의 타협을 정하는 기준은 “어른이 되면...”이었습니다.

아이쿠! 큰일입니다.

정말 규재가 ‘어른’이 되었습니다. 규재가 손꼽아 기다리던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아마존 강을 보러 가자고 할 때도 “어른 되면~”, 독도의 태극기를 보러 가자고 할 때도 “어른 되면~”, PC방에 가보자할 때도 “어른 되면~”, 우주선 타고 우주에서 지구를 보고 싶다고 우주선 예약하라고 조를 때도 “어른 되면~”.

당장 실행하기 어려운 일은 모두 ‘어른이 되면’으로 미뤘는데 요즘 엄마는 심각한 고민 중입니다. ‘그다음 구실은 무엇으로 해야 하나? 흠... 사!십!살! 되면~으로 바꿀까?’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설명해 줄 때 아무래도 규재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분명히 있고 규재식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복적 질문과 강박으로 본인도 많이 힘들어하기 때문에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설명해 주던 것이 ‘어른이 되면~’ 이었던 것인데...

정말 스무 살 ‘어른’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쿠! 큰일입니다.^^

어느새 초등, 중등,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른 운운하는 규재를 보니 지난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초등 입학을 앞두고 유예를 할까 말까부터 시작해서 통합을 할까? 특수학교를 갈까?

특수학급이 있는 학교마다 다니며 상담하고 고민하며 신입생이 몇 명인지, 특수교사의 임기가 얼마나 남았는지, 어느 학교 특수학급이 몇 개인지... 학생 수가 적은지 많은지... 하나부터 열까지 원거리 통학, 근거리 통학 기준도 없이 부모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하던 그 당시는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하던 시절입니다.

지금처럼 지역별로 특수교육지원센터를 통한 입학 절차가 아니었던 때라서 정확한 정보는 고사하고 ‘카더라통신’의 과장된 특수학급의 무서운 소문이 들릴 때마다 그 긴장감은 밤마다 불면증으로 이어졌습니다.

규재가 입학할 초등학교를 결정하고 그 학교 앞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입학 전에 학교 환경과 친해질 목적으로 동네 미용실이며 슈퍼마켓이며 문구점 등을 규재와 들락거리며 주민들과 규재가 서로 익숙한 존재가 될 수 있게 의도적인 단골 관계를 만들어 갔습니다.

학교 운동장으로 매일 저녁마다 규재를 데리고 나가서 자전거를 타게 하고, 나는 주민들과 수다를 빙자한 ‘자폐아들 알리기’에 집중하며 그 지역 주민들이 규재를 가감 없이 정확하게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동네에 이상한 아이가 이사 왔다... 이 학교 입학한다더라...” 소문은 예상대로 금방 퍼지고 또래 엄마들은 자기 아이들과 같이 입학할 규재를 곁눈으로 보기도 하고 슬쩍 다가와 규재의 위아래를 훑으며 과연 안전한 물건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듯 한참을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중엔 건강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도 있어서 장애에 대한 편견 없이, 도와줄 것 있으면 말해달라고 진심어린 응원을 해 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티스타 디자인상품이 된 1학년때 종합장낙서 '색동코끼리'. ⓒ김은정

드디어!!! 입학식 날!!!

첫 대면하는 통합학급의 담임 선생님과 같은 반이 된 친구들... 이미 동네에서 ‘규재구경’을 끝낸 낯익은 부모들...

자식의 첫 입학의 떨림은 나나 저 이들이나 매한가지 부모 마음이니 서두르지 말자는 생각에 식이 끝나고 규재를 앞세워 담임 선생님께 다가가 “안녕하세요? 특수학급 학생 이규재 엄마입니다. 상담 날을 알려주시면 찾아뵙겠습니다.” 이말 한마디 던져놓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다음 날 조금 여유 있게 등교해서, 여차 저차 지속적인 상담이 필요한 아이이고, 특수학급 선생님과도 연계가 필요한 상황인데 3월 한 달은 원반 적응기간으로 아직 특수교사와도 방향이 정해진 것이 없으니 당장 급한 사항부터 선생님께 상담 드리고 싶다고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엄마가 집에서 보는 규재와 학교에서의 규재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의 적응 모습을 보고 집에서 가정교육으로 연계시킬 부분을 파악하고 싶습니다. 특수학급에서 보조교사나 공익이 어떤 형태로 원반 지원을 할 것인가가 정해지기 전까지 엄마인 제가 교실 지원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복도에 서 있을까요? 규재 옆자리에 앉을까요? 교실 뒤편에 서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그 방법으로 하겠습니다.”

우선 일주일 정도 엄마가 복도에 서서 규재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창문 너머로 관찰해보고 그다음을 정하자고 얘기가 되어, 3월의 학교 복도는 매우! 대단히! 무척! 춥다는 것을 극한체험하게 되었고 지금 고질병이 된 수족냉증이 그때 생긴 것이라고 엄살떨어 봅니다.

‘웃기고 슬픈’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좌충우돌의 학교생활의 시작은 어느덧 3월 한 달이 끝나갔고 규재의 학급 적응은 그런대로 잘 진행되어 특수학급의 선생님들 지원 없이 원반에서 수업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규재는 특성상 일대일 개별 수업은 활발하게 참여도가 높은데, 단체 수업에 유난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칠판을 주시해야하는 선생님 수업에 집중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냥 멍~하니 우두커니 밀랍인형이 앉아있는 것처럼 40분 내내 초점 없는 눈빛으로 시간들을 때우고 있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규재에겐 너무 어려운 내용이야... 이해되지도 않는 얘기를 앉아서 들으려니 얼마나 힘들까... 일단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 학급에서 친구들과 이런저런 경험과 생활을 규재의 통합교육의 첫 목표로 삼았으니, 그 어려운 수업시간을 조금 더 규재에게 맞춰준다면...’

이 생각, 저 궁리, 이 방법, 저 고민 끝에, 평소 집에서 엄마와 놀던 종합장 낙서놀이를 학교 수업시간에 시도해 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종합장을 과목 수대로 가방에 챙기도록 훈련시키고 등굣길에 따라붙어 계속해서 반복 주입했습니다.

“국어 시간이 되면 교과서를 꺼내놓고 진도에 맞게 펴놓고 그다음에 너는 종합장을 꺼내서 무엇이든 생각나는 것을 쓰던지 그림을 그리는 거야...알겠지? 알겠어? 엄마가 뭐라고 말했지? 한번 말해 봐! 규재야...”

나는 매일 밤, 다음날 학교에 챙겨 갈 여섯 권의 무선 종합장에 미로찾기나 숨은그림찾기, 바퀴 없는 자동차, 나뭇잎 없는 나무 등을 그려 놓았고, 규재는 수업시간에 바퀴를 채워 그리거나 나뭇잎 무성한 나무를 완성하고 다음 페이지에 연달아 연상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선생님 수업을 따라 베끼기도 하면서 여섯 권의 종합장을 꽉꽉 채우며 수업시간을 잘 버텨주었습니다.

그렇게 수업시간의 종합장 낙서가 학습이 되었는지 강박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림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듯 시간이 지날수록 선이 예뻐지고 그림이 구체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수업 중에 귀에 들어오는 단어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로드맵 같은 연상 그림으로 채워진 종합장을 보며 대견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종합장의 그림 낙서 중 하나가 5년 뒤 오티스타 공모전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돼 디자인 상품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통합교육에 대한 깊은 이해와 특수학급 선생님의 가이드가 없었다면, 수업시간의 ‘딴짓’으로 문제시될 뻔한 종합장 낙서가 지금의 규재의 그림특기로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교사들의 장애통합교육에 관한 인식과 고찰이 더 깊어지고, 특수교사들의 전문성이 교육현장에서 적극적으로 경영되고, 우리 부모들이 가정연계교육으로 긴밀하게 협력하는 ‘삼박자 교육’이 정착되어 우리 아이들이 공교육을 통해 긍정적 에너지를 얻으며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인적자원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통합교육과 특수교육과 가정연계교육이 ‘따로 또 같이’, 아이들 마다의 맞춤 교육으로 버무려져 학교가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 된다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도 밝게 다가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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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칼럼니스트 발달장애화가 이규재의 어머니이고, 교육학자로 국제교육학회에서 활동 중이다. 본능적인 감각의 자유로움으로부터 표현되는 발달장애예술인의 미술이나 음악이 우리 모두를 위한 사회적 가치로 빛나고 있음을 여러 매체에 글로 소개하여,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며 장애인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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