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치열한 논쟁이 하나 있습니다. 영어 조기교육을 법적으로 금지하여 초등학교 3학년 이후부터 제대로 가르치자는 정부의 방침에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영어 조기교육은 개인적으로 반대 입장입니다. 한국어가 형성되기 이전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 때문이죠. 그러나 진짜로 조기교육을 해도 되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장애감수성’입니다.

여러분들은 많이 겪으셨을 것입니다. 학창시절에 배운 영어 다 까먹으신 분 있으신지요? 사실 저도 반쯤은 그렇습니다. 특히 시험만을 준비하면서 배운 영어 공부는 다 까먹으실 것이 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교육학적으로도 봐도 조기에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매우 무리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입증된 바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감수성은 다릅니다. 장애인은 매일 같이 만나야합니다. 만약 안 보인다면, 그냥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못 나오게 하는 사회 구조적 장벽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은 평생 ‘수양’을 해도 완전히 이르는 데는 실패를 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어차피 제가 강조하는 사실인 ‘장애인은 똑같이 다르다’는 생각에 비춰 봐도 그렇습니다.

어린이들이 영어를 배운다면 매우 제한적인 표현 위주로 교육을 받지만, 장애감수성에 대한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한 일부이기 때문에 장애 유형별로 배우고 또 다양한 삶을 사는 모습을 여러 가지로 가르칠 수 있어 배울 거리가 많습니다.

영어는 지식의 문제이지만, 장애감수성은 인권과 타인에 대한 존중 등으로 발전할 수 있기에 더욱 더 조기교육이 시급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또 다양한 삶의 양식을 가진 이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유아들은 아직 지적 호기심은 높지만, 이를 수용해나가는 과정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으로 누군가가 나서서 장애가 어쩌고저쩌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유아교육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방적인 ‘집합교육’ 방식에는 절대로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대안적인 교육 운동가들은 놀이 중심 교육 과정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일부 인정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유아교육학적으로도 올바른 이론입니다. 그렇지만 영어와 달리 장애감수성은 놀이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유아기에는 장애가, 특히 발달장애는 그렇게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요. 어린이들이 스스럼없이 한 자리에서 놀면서 배워나가는 것도 하나의 교육이라고 할 수 있고, 교육학적으로도 올바른 방법이니 장애감수성 교육에서 놀이를 통한 방법은 옳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아들이 자주 시청하는 방송프로그램이나 매체에서도 장애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방법은 역시 장애인당사자 캐릭터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세서미 스트리트’ 같은 경우에는 자폐인 캐릭터가 등장해서 화제가 된 적도 있었고, 그 이전에도 동화 하나를 각색하여 캐릭터 하나를 휠체어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게 경사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방송을 통한 유아교육이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이 방법은 조금 어렵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즘 유아교육 프로그램을 보는 유아는 적기 때문입니다.

유아 장애감수성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장애에 대해 ‘평등하게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인들은 학습과 교육, 체험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존재를 잘 알고 있지만, 유아들은 보이는 것이 전부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 유형의 특성을 다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특정 장애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장애유형에 대한 설명을 넘어서 ‘똑같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교육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유아교육 단계에서도 장애통합 교육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장애통합 어린이집/유치원도 점점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유아들이 또래 장애유아를 만나는 일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와중에 장애감수성이 없이 장애인을 만난다면? 엄청난 위기가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위 ‘동물원의 원숭이’ 같이 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유아 장애감수성 교육입니다.

유아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한국어 교육과 겹치기에 혼란스럽고 언어 발달 이론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제한적 표현으로 영어 실력이 는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유아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다양함을 아는 것입니다. 영어는 나중에 알아도 유창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양하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알아야합니다.

장애 감수성 교육으로 시작한 것은 훗날 타인에 대한 감수성 교육으로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세계 각지의 빈곤과 같은 사회 계급 차이, 성적 지향과 정체성의 다양함 등 다양한 타인의 특징과 정체성에 대한 감수성도 이런 식으로 기르다보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아들에게 굳이 지식을 주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타인을 존중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기교육을 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타인에 대한 존재를 먼저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첫 번째 교육이 될 것입니다.

어차피 영어는 정부가 제시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배워도 늦지 않지만, 장애감수성은 어릴 때 미리 형성하지 않았다면, 더 큰 피해로 돌아올 것입니다. 어찌 보면, 지금의 혐오 정서라는 것은 분명하게도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배우지 않은 우리들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결과론적인 비극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외쳐야합니다.

“영어 조기 교육에 앞서 장애 감수성 조기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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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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