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방송사의 오락프로그램에 수화언어(수어)가 ‘외계어(外界語)’로 소개되며 방영된 적이 있다.

방송프로그램에서 미국수어(ASL, American Sign Language)의 보조수단인 영어지문자가 등장했는데, 출연진들에게 영어지문자를 보게 한 후 이를 암기해 표현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 “발견된 암호를 20초 동안 본 후, 외계어를 해독하라.” 등의 자막을 내보냈다. 이 방송으로 수어가 외계어로 전락해린 것이다.

‘외계어’를 한자의 뜻은 ‘지구 밖의 생명체가 쓰는 언어’이다. 영화에서 SF영화의 소재로 등장하는 다른 행성에서 온 이들이 쓰는 언어라는 뜻이다. 그리고 정보통신 매체가 발달하면서 청소년들이 한국어의 어법을 무시하거나 기호 등을 섞어 은어처럼 쓰는 것을 ‘외계어’라 말하기도 한다. 어찌되었든 ‘외계어’는 우리와 언어적으로 공유하기 어려운 이들이 쓰는 언어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수어가 외계어로 둔갑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 제작진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수어, 그것도 미국수어의 영어지문자는 청인(聽人, 듣는 사람)들에게 생소하여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방송사의 관련 프로그램과 미국수어(ASL)를 방영한 화면 갈무리. ⓒtvN

인간은 미지의 영역에 대하여 호기심을 갖는다. 이러한 호기심은 대상에 대한 접근이나 유희 등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인간은 낮선 곳이나 낯선 대상에 두려움을 갖는다. 낮선 곳이나 대상에 대한 정보가 없어 자신에게 위해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낯선 대상이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 대부분은 회피하거나 도망을 친다. 또는 낯섦의 대상을 부정함으로써 낯선 대상과 마주한 현실을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농인이나 수어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도 낯섦으로 인한 두려움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일반적으로 종교적 영향이나 개인의 가치관, 사회적인 권력 관계 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설명에는 근거가 있고, 타당한 면이 많다. 그럼에도 농인이나 수어에 대한 차별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장애인 차별의 배경 이외에도 낯섦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농인은 차별의 대상이었다. 농인의 언어인 수어 언어로서 대접을 받지 못했고, 차별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농인에 대하여 인간적인 가치를 부여하지 않음은 물론, 중세 유럽에서는 재산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자격마저 박탈하였다. 수어가 교육에 도입이 된 이후에도 대다수는 청인들은 농인은 별개의 존재로 인식했다. 더 나아가 수어교육을 부정하고 금지하고 의도적으로 구화교육을 강화하였다.

농인과 수어에 대한 차별의 역사는 표면적으로 장애인을 차별하는 틀 속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인들이 갖는 농인과 수어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도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청인들은 농인의 정체성이나 수어의 존재를 지우려 구화교육을 강화해왔다. 인공와우 수술을 통하여 농인을 청인과 닮은 꼴로 만들고 있다.

수어공대위의 수어법 제정 운동 당시의 모습. ⓒ김철환

2015년 12월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었으니 벌써 2년이 다되어 간다. 문제는 지금도 수어를 외계어로 표현하는 방송프로그램이 방영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보고 박수치며 깔깔대는 시청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인들에게 수어는 여전히 기피의 대상이면서 유희의 대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청인들의 이러한 인식을 줄이고 농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언어로서 ‘수어’를 인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하려면 수어에 대한 제도의 정비, 서비스의 확대만이 아니라 청인들에 농인과 수어에 대한 인식개선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것 가운데 하나가 일반아동에 대한 수어교육의 도입이다. 그리고 공적 공간이나 공적 행사에서의 수어나 농인들의 노출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수어를 통한 공적 정보의 접근이 환경이 구축되어야한다. 더 나아가 수어를 통한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어야 하며, 농인들의 일상생활에 수어통역 서비스가 깊이 들어와야 한다.

얼마 전 정부에서 ‘한국수어 발전 기본계획(5개년)’을 내놓았다. 설정된 정책들이 농인과 수어의 관점에서 필요한 것은 맞다. 그럼에도 농인과 수어에 대한 낯섦을 지우는 정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언어로서 수어를 정착시키고, 전문인과 전문기관을 양성하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농인과 수어의 낯섦을 지울 수 있는 정부의 정책도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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