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Nation지역에 있는 국제적십자사 박물관 입구 전경 ⓒ이원무

유럽 여행이 후반부로 치닫을 무렵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했다. 8년 전에는 관광을 목적으로, 3년 전에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한국정부 국가보고서 심의 참가 관계로 방문했다.

올해에는 제네바 주변지역인 로잔(Lausanne) 올림픽 박물관 방문도 있었지만 인권과 관련 있는 유엔 유럽본부, 국가심의가 열린 빨레 윌송 등을 방문해 인권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대개 유엔 유럽본부 및 적십자 등의 인권기관들은 Nation 지역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아침에 간단히 끼니를 때운 후 15번 Nation행 트램을 타고 유엔 유럽본부에 가 기관 가이드투어를 했다. 이후 오후에는 국제적십자사 박물관을 방문했다.

박물관을 방문하며 여러 전시물들을 둘러보다 화면 속에서 지팡이를 쥐고 있는 한 남성이 차분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듣게 되었다. 그 남성이 얘기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뢰폭발로 인해 두 다리를 잃어, 5년 동안 집에 있었고 다른 사람과 소통이 단절된 상태였다. 이후 여러 직장에 지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당신 어떻게 직장을 찾냐?’는 식의 경멸하는 눈빛으로 그 남성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이런 시간들을 겪으며 존엄성을 잃어버림은 물론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고 그 남성은 고백한다. 고민한 끝에 결국 적십자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상담을 했다.

그런데 직원은 동정심을 보이지 않고 그 남성의 잠재력과 능력을 믿으며 직장을 주었다. 수년 동안 재활과정을 거쳤고 길었지만 재활의 노력은 보상을 받았다. 그 남성은 자신감을 찾았다.

그러면서 다음의 말로 끝을 맺는다. ‘두 다리를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내가 여러 과정을 겪으며 얻었던 존엄성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

현재 그 남성은 카불에 있는 국제적십자사 정형외과 센터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만약 적십자사 직원이 그 남성을 불쌍한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면 어땠을까? 그 남성은 자신을 불쌍하게 바라보며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함은 물론 직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직원에게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이요, 당당한 권리의 주체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두 다리를 잃은 남성이 삶의 자신감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사자도 재활 노력을 열심히 했기에 당당하게 자신의 경험담을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 장면을 보며 우리 사회를 잠깐 생각해보았다.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의식,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나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도 불쌍한 사람,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등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 권리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 보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려는 사회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한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 당사자도 자신의 권리를 배우며 권리와 책임,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현재 국제적십자사 정형외과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그 남성처럼 우리나라 장애인들도 자신의 권리를 찾고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이번 제네바 여행을 통해 다시금 느끼게 된다.

‘장애인은 시혜·동정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

제네바 여행에서 필자의 뇌리 속에 다시금 강하게 남은 한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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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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