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방학이면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은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현장실습으로 구슬땀을 쏟아냅니다.

올 여름, 폭염으로 외출을 자제하라는 안전처의 문자가 심심찮게 온 것을 보면 필시 여느 해 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린 듯하지만, 무더위조차 삼켜버릴 것 같았던 예비사회복지사들의 열정은 각자의 실습지에서 뭇 사람들에게 시원한 얼음냉수가 되어 주었다지요.

그렇게 160시간의 실습을 끝내고 각자의 실습지에서 예비사회복지사로서 경험하고 느낀 점 등을 10분 정도로 정리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회복지사가 아닌 요양보호사 실습을 하고 왔다는 이야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바뀐 것 같다는 이야기, 아이들과 정(情)이 많이 들었는데 헤어질 때 아무도 슬퍼해 주지 않아 당황했다는 이야기 등등.

듣다보면 발표의 핵심은 자기가 가장 빡세게 실습했다는 겁니다. 그걸 대놓고 말하기 뭐하니 작정하고 10여 분 동안 괜찮은 사진 몇 장과 미사여구, 수식어 등을 총동원해 지능적으로 청중의 뇌를 세뇌시키려고 하지요. 발표내용을 ‘속마음 번역기’로 번역해보면 대충 이렇습니다.

저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실습했는데요. → 내가 제일 힘들었다.

더운데 반찬이 쉴까봐 쉴 틈도 없이 날랐지요. → 나만큼 빡세진 않았을걸?

사실 다른 학우들에 비해 조금 비중 있는 업무를 맡았어요. → 너는 나한테 비하면 새 발의 피요, 네발의 사발이다.

그렇게 발표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학교나 사회복지 기관 등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나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자유롭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실습생들의 보험 적용 기준을 확대시켜 주세요.”

“실습 전에 충분한 사전교육이 필요할 것 같아요.”

“다양한 실습지를 개발해 주세요.”

“기관들이 실습생을 봉사자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등등.

그 중에서도 한 학우의 솔직한 말이 제 마음에 턱~ 하니 꽂혔습니다.

“솔직히 저는 실습을 다녀와도 사회복지사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기대와는 사뭇 다른 실습지의 환경이나 실습 내용에 대한 푸념 일 것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선배 사회복지사로서 동료가 될 그들에게 무언가 답변을 해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일종의 책임감이 밀려왔습니다.

(여러 교수님들의 격려와 실습에 대한 평가 후) 실습생들에게 정확히는 그 학우를 향해 이렇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16년 간 장애인이라는 한 분야에서만 일한 터라 다양한 경험이나 식견이 없습니다만 (경험에 비추어)선배 사회복지사로서 조심스레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드릴까 합니다. 제 생각에 사회복지사는 관장(灌腸)도 할 줄 알아야하고, 부서진 물건도 고칠 줄 알아야하며, 적절한 말싸움 실력과 못질, 망치질 정도는 기본으로 탑재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프로포절 작성 능력은 남의 마음을 움직여 자금을 끌어올 정도는 돼야하고, 문서작성이나 프레젠테이션,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 정도는 능숙하게 다루어야 하지요. 여기다 사진기술, 그래픽프로그램 활용능력까지 탑재한다면 금상첨화지요. 한마디로 사회복지사는 물과 같은 유연함을 가져 어디서든 적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탁월한 자질이 훌륭한 사회복지사를 만들진 않습니다. 순전히 제 경험입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회복지사는 다음의 세 가지 준비를 잘 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가난에 처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 그 첫째고, 정든 사람들과의 이별(헤어짐이든 죽음이든)을 잘 준비하는 것이 둘째며, 그 마지막은 삶과 일의 경계가 허물어져 어느 순간 업무 속의 클라이언트가 내 삶의 일부로 유입되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어때요? 사회복지사로 살아가기 힘들지요? 이렇게 살면 절대로 사회복지사 못할 것 같지요?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16년 간 이 세 가지를 늘 마음에 품고 살았는데도 저는 여전히 그 길을 가고 있고, 제 삶은 여전히 즐겁습니다. 뭐, 요즘엔 결혼하고 애를 셋이나 낳아 기르다보니 쪼매 짜치긴(쪼들리긴) 합니다.(웃음)

한 번 제가 당부한대로 마음먹어 보세요. 사회복지사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스펙터클(spectacle)하고 어메이징(amazing)하며, 흥분되는 모험들로 가득한지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복지사의 세계로 잘 들어오셨습니다.”

오~ 제가 말하고도 순간 감동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학생을 향한 당부의 말이 아닌 제 삶의 고백이자 앞으로도 사회복지사로 살아 갈 남은 제 삶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이었습니다.

저는 행복한 사회복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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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훈 칼럼리스트 (사)경남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거제시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근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후배 복지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장애인복지의 길에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오늘도 행복하게 까불짝대며 잰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발달)장애인들의 사회통합으로의 여정에 함께하며 진솔하게 일상을 그려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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