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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데프 보이스’로 알게 된 농문화와 농인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08-22 14:07:48
책을 한 권 읽었다. 제목은 데프 보이스(Deaf Voice).

한국말로 번역하면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 즉, 농인의 목소리라는 뜻이다. 제목에서도 얼핏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청각장애인이 사건에 휩쓸린 내용의 소설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마루야마 마사키는 경추 손상으로 중증 장애가 있는 아내와 20년 넘게 생활하며 장애가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었고 그들을 만나며 기존의 소설이나 영화에서 다루어진 장애인의 모습이 아닌 비장애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장애에 얽힌 갈등을 그려내고자 했다.

이 책은 픽션이지만 많은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농인사회와 문화 그리고 농인들의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부끄럽고 창피했다.

비장애인들에게 우리는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불리며 우리의 불편함이나 삶의 방식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편견과 선입견에 억울해한다. 그러나 장애인 당사자인 나는 나와 다른 신체적 불편함을 가진 장애인들의 아픔과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몰랐던 농인들의 삶과 어려움 그리고 문화와 가치관들을 알아가며, 나 또한 장애인이지만 그들에 대해서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무심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필자는 사죄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우리가 서로의 장애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야기에 앞서 이 책의 저자가 일본인이고 일본 농인사회를 바탕으로 픽션화한 만큼 필자가 알게 된 사실이 우리 한국농인사회의 현실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내용 중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나 오류가 있다면 댓글을 통해 조언해주시면 기꺼울 것 같다.

우리나라는 1977년 특수교육법의 제정으로 청각장애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다가 1989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청각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일반적으로 쓰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수화를 사용하는 문화에서는 장애라는 인식이 강하게 나타나는 청각장애인이라는 표현보다는 농인, 농아인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고 한다. 특히 선천적 실청자의 경우 이런 의식이 더 강하다고 한다.

1970년대 미국 농인들은 농인사회를 언어적 소수자, 문화적 집단으로 칭하는 데프 커뮤니티 운동을 일으켰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집단을 들리지 않는 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언어인 수화와 문화를 공유하는 것에 의해 형성된 사회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을 표현하는 데프(deaf)라는 단어의 첫 글자를 대문자 데프(Deaf)로 바꿈으로서 단순히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데프(Deaf) 즉, 농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이제까지 장애인이라는 병리적 시점에서 밖에 이야기 되지 않았던 농인을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집단으로서 그들의 언어는 수화화이고 청인들의 언어는 제 2언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화와 동시에 청인들의 언어와 문화도 수용한 농인을 두 가지 언어를 갖고 두 가지 문화를 아는 바이링구어(bilingual), 바이컬처럴(bicultural)한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는 이제까지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들보다 부족한 존재로 취급 받아온 농인에게 자긍심과 자신감을 되찾아 주는 이른바 민족독립선언으로서의 의식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이었고 동시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필자도 그들을 청각장애인이 아닌 농인으로 칭하고자 한다.

한편 이 소설에서 농인들이 사용하는 수화가 한가지 종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일본수화와 일본어대응수화가 언급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수화에 대해 알아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농아식 수화, 문장식 수화, 혼합식 수화가 사용되고 있었다.

이때 농아식 수화는 농인들이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수화로서 농인들 특유의 관용적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며 농아식 수화야말로 전형적인 농인들의 언어로 통하고 있었다.

한편 문장식 수화는 농아 학교에서 농아들의 문장력 향상을 위한 국어 문법에 충실한 개량식 수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어 문법에 취약한 농인들은 이 수화에 거부감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혼합식 수화는 말 그대로 농아식 수화와 문장식 수화를 섞어서 사용하는 것으로 농인들이 건청인 수화자와 소통할 때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중도 실청자나 난청자의 경우는 비교적 배우기 쉬운 문장식 수화를 많이 구사하는 반면 선천적 농인의 경우 농아식 수화를 구사하며 문장식 수화에는 서툰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수화가 하나의 언어로서 합법화되어 있다는 사실도 이 소설을 일고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2월 한국수화언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제정되었는데 수화언어를 줄여 수어라고 하기도 한다.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화를 한국어와 동등한 공용어로 인정한 법률이다. 이 법은 한국수화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언어권을 신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고 한다.

수화를 단순히 농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로만 알고 있었는데 한국어와 동등하게 공용어로 합법화되기 까지 농인사회에서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리고 농인들의 수화에 대한 자긍심이 얼마나 강한지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 소설을 통해 알게 된 코다라는 단어는 매우 생소하면서도 그 존재에 대해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코다는 미국에서 유래된 Children of deaf 의 약어로 농인 부모의 들리는 아이를 의미한다.

필자 역시 장애가 있는 엄마로서 장애가 없는 딸아이가 느끼고 살아갈 감정들을 이 소설의 주인공인 코다 아라이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소설 속의 아라이는 들리지 않는 이들 속에서 들을 수 있는 자신이 이질적이고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며 동질감을 찾아 농인사회의 반대편으로 간다. 그러나 결국 수화통역사가 되어 농인사회로 돌아오게 된다.

처음 코다라는 말을 접했을 때의 설렘, 농인 특유의 습관을 통해 느낀 편안함, 농인을 대하는 청인의 태도에 대한 분노, 농문화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호감 등 그는 이질감을 느껴 떠났지만 어쩌면 그는 반대편이 아닌 농문화 속에서 동질감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들리고 들리지 않고의 차이에서 벗어나 그들과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화통역사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자신이 그들과 같은 농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소설의 서평을 단 독립영화감독 이길보라씨 역시 코다였다. 아무리 불러도 들을 수 없는 부모라는 것을 알기에 그들은 그 누구보다 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고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부모를 대신해 듣고 전해야 했으며 부모를 욕하는 사람들의 말을 통역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어야 했던 경험을 코다들은 모두 경험하며 성장했다.

입말대신 수화로 옹알이를 하고 농문화를 배경으로 자란 그들은 청인이면서 농인이었던 것이다. 이길보라씨 역시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청인들을 우리라고 해야 하는지 엄마, 아빠와 같은 농인들을 우리라고 불러야할지 헷갈렸다고 한다.

청인들은 분간하여 들을 수 없는 오직 자신들만이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데프 보이스. 수화를 사용해도 데프 보이스로 말해도 청인들은 이해하거나 알아듣기는 커녕 오히려 회피하고 이상하게만 바라본다. 농문화와 청문화를 넘나들며 입말과 수화를 동시에 사용하는 그들은 그 경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코다들이 느꼈을 감정의 간극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간극만큼이 아니였을까?

이 소설은 장애인 당사자는 아니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과 함께하며 자란 코다의 시선으로 농인사회와 농문화를 이야기하며 청인이지만 농인으로 살아가는 코다의 내면을 주인공 아라이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알지만 몰랐던 것들, 이해하지만 공감하지 못했던 것들, 같다고 여겼지만 또 다른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농인들의 삶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 마음 한켠이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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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경미 (kkm75@kbuwe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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