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족은 아내와 딸, 아들 둘 합이 다섯입니다. 요즘 아내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딸, 딸, 딸 노래를 부르며 딸 하나만 더 있으면 딱! 좋아~ CF 광고를 읊조리지만 어림없습니다.

올해 네 살인 딸은 유일하게 저희 집에서 서서 오줌을 싸는 존재입니다. 가정의 통수권을 행사하는 아내의 명에 어쩔 수 없이 나이 마흔 셋에 앉아서 싸는 훈련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그것이 개·고양이가 배변훈련 하는 마냥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저야 지속적인 훈련 덕에 지퍼를 내리다가도 아차 싶어 돌아서서 바지를 내리지만, 딸은 보란 듯이 쪼르르 달려와서는 다리를 어깨너비 보다 조금 더 벌리고 약 10° 정도 구부린 후 얼굴이 벌게 질 때까지 힘주어 오줌을 쌉니다.

아~ 나 참. 옆에 서 있는 아빠는 전혀 의식 않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시뻘건 얼굴로 볼 일을 보는 딸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만, 먼저 딸을 키운 부모들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그거? 원래 그래. 네 살 때 앉아서 오줌 싸는 딸이 이상한거지 서서 싸는 건 정상이야. 그 나이 땐 다 그래~”

다행입니다. 요 나이 땐 다 그렇다는 말이 위로가 됩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장애인들과 함께 한 16년. 경력으로 인정해 주는 4년 3개월을 제외하고는 사회복지사로서의 대부분의 시간을 경력 제외의 현장에서 직업과 삶의 경계 없이 장애인들과 저의 삶이 공유되어 서로가 편하게 넘나드는 너나들이의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2002년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한 번도 손에서 일을 놓아 본 적이 없으나, 일 한 연수에 비해 턱없이 겸손한 경력은 대외활동에 있어 늘 저의 아킬레스건이었지요.

그러나 그 세월은 제게 버거스씨 병으로 수족을 절단해야 하는 끔찍한 고통 중에도 늘 싱거운 웃음으로 상대를 즐겁게 해 주었던 상도씨, 근육병이라는 슬픈 병마와 사투를 벌이면서도 참새마냥 재잘재잘 사람의 혼을 빼놓던 현수와 찬우, 정신장애로 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긴장을 놓지 못하였지만 늘 소박한 웃음이 좋았던 명대, 떠나버린 엄마를 그리워하며 거주시설에서 나와 독립한다고 큰 소리 치고는 사흘이 멀다 하고 밥값, 담뱃값을 갈취해 가던 경남이 등과의 소중한 추억들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또한 그 세월은 소중한 추억만큼이나 값진 이별도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별을 선물이라 말할 수 있는 건 그것이 장애인과 함께 하는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할 수 있는 시간들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상도씨가 마흔 넷, 현수가 열다섯, 찬우가 스물 셋, 경남이가 스물아홉, 명대가 서른 즈음.

어떤 이는 피기도 전에, 어떤 이는 한창 피어오를 때, 어떤 이는 열매 맺고 성숙되어 갈 즈음에 언지라도 주었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으련만 야속하게 그리움만 남기고 떠나가 버렸습니다.

사람의 생애주기를 보통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 장년기, 노년기로 구분을 하고, 장애인의 생애주기에 대한 접근 역시 보편적인 생애주기를 단계별로 나누어 각 단계에서 이루어야 할 발달과업의 성취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장애인의 생애주기를 바라보는 저의 관점은 조금 다릅니다. 이별이라는 선물을 통해 보편적인 생애주기적 접근이 모든 장애인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생애주기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한 발 앞서 준비하지 않으면 갑작스레 찾아 올 이별의 순간 앞에 또다시 사랑하는 누군가를 허무하게 내어주고 후회와 서글픔, 그리움으로 얼룩진 날들을 견뎌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수와 찬우와 같은 듀센형의 근육병은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할 확률이 아주 희박한 슬픈 질병입니다. 물론 지금은 의학이 많이 발달해 수술을 통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니 다행스럽습니다만, 보편적인 경우 청소년기 이후의 삶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운증후군의 경우 노화속도가 일반인에 비해 훨씬 빠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평균수명을 50세로 보면 사십 대부터는 일반적 생애주기의 노년기에 해당하니 그 접근에 있어서도 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버그스씨병이나 정신장애의 경우 평균수명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언제 어떤 상황이 닥쳐올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제 경우엔 그랬습니다. 전날까지 살갑던 사람이 간밤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올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평소와 다름없던 평범한 아침, 저를 보며 잠깐 눈인사를 하던 친구가 그 길로 있는 힘껏 달려 3층에서 뛰어내릴 줄, 칼바람이 불던 차가운 겨울 밤, 엄마를 그리워하던 녀석이 쓸쓸이 목을 맬 줄 누가 알았을까요?

그렇게 하나씩 둘씩 곁을 떠나갈 때마다 겹겹이 쌓이는 그리움을 주체할 수 없어 그저 야속한 사람들이라 치부해 버리다가도 있을 때 더 살갑게 대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사회복지사로서의 소명마저 흔들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지금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자립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 중 제일 연장자가 올해 서른다섯이지만, 저는 벌써부터 이들의 인생후반부를 위한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보통이 2, 30대인데 벌써 후반부라니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경험을 통해 선행학습을 한 저로서는 마음이 조급합니다.

서른을 넘기기 어렵든 오십이 평균 수명이든 현대의학으로 어쩔 수 없는 것들에 연연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 이 땅에서의 삶이 ‘천상병’ 시인의 말처럼 ‘행복한 소풍’과 같았다고 고백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장애인의 생애주기적 접근에 대한 저의 소고이고, 사회복지사로서의 저의 소명이라 여기고 살아갑니다.

언젠가 중증의 지체장애인들과 함께 제주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모두가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터라 꼭두새벽부터 거제에서 목포까지 그 먼 길을 달려 제주행 배를 타고 생애 첫 제주 구경을 했었지요.

“제주 여행도 했는데, 까짓것 다음엔 일본 갑시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지가 5년 전. 그 사이 두 명이 곁을 떠났습니다. 살아생전에 꼭 가자고 했던 일본여행이었는데, 약속을 지켜주지 못해 늘 마음에 걸립니다. 또 다른 누군가를 잃기 전 5년 전 그 약속만큼은 꼭 지켜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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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훈 칼럼리스트 (사)경남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거제시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근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후배 복지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장애인복지의 길에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오늘도 행복하게 까불짝대며 잰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발달)장애인들의 사회통합으로의 여정에 함께하며 진솔하게 일상을 그려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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